하얀 눈이 덮힌 자작나무 숲, 두터운 외투를 입고 털모자를 쓴 사람의 모습이 추워 보인다기 보다는 포근해 보인다.
자작나무가 눈과 바람을 막아주는 듯해서....
'이호준의 아침편지'
'아침편지'하면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생각이 나는데, 고도원은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에 짧은 단상을 적어서 누군가에게 보내기
시작했는데, 이 편지가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아침에 읽는 편지는 아무래도 맑고 밝은 행복한 편지였기에 사람들의 감성에 와닿았을 것이다.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는 시인이자 여행자가 그리고 기록 사진가인 이호준이 쓴 세상사는 이야기가 담긴 따뜻한
산문집이다.
그의 산문집인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를 출간한 이후에 쓰다 말다 한 아침편지를 다시 써서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그는 기자, 논설위원, 편집위원 들을 역임했고, 역마살이 있는지 툭하면 여행을 떠난다.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의 뒷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10년 넘게 전국을 돌아 다니기도 했고, 나라밖의 여러 나라를 가기도 했다.
여행을 좋아해서인지 그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비치지 않는 사람사는 모습이, 풍경이 마음에 잔잔한 마음에 찡한 여운을 남긴다.
시인이 쓴 산문집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기도 하다. 감성적인 글들이 내 마음에 다가온다.
그래서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익으면 참 좋은 책이다.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글 속에 녹아있기도 하다. 그런데, 글 속에서 그리움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서글픔이 담겨 있기도 하고, 쓸쓸하고 초라한 뒷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때론 흐뭇하고 여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슬픈 눈을 가진 아빠와 어린 딸이 기차여행을 간다. 어린 딸은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아빠에게 묻곤 하지만, 그들이 가는 곳은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집. 어떤 이유에선가 아버지에게 손녀를 맡기기 위해서 가는 기차여행.
이 땅에 마지막으로 맷돌을 만드는 노인, 돌에 파묻혀 평생을 살아 온 노인, 때론 그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뿐이었으니....
" 손을 당겨 장갑을 벗겨보니 아니나 다를까, 산산한 삶의 흔적이 지도처럼 그려져
있었습니다. 세월로도 미처 지우지 못한 상처의 잔해들. 손에도 한 인생이 그려질 수 있구나. 모든게 탈색되고 슬픔만 무겁게 남았습니다. "
(p.p. 30~31)
이호준은 기차여행, 해외여행, 산행을 가기도 하지만 때론 인터뷰를 위한 여행을 간다. 인터뷰를 가면서 만나는 풍경, 사람... 그의 여행은
항상 혼자 떠나는 여행이기에 쓸쓸한 여행같지만 그 여행은 행복한 여행이다.
작년, 우리를 슬프게 했던, 분노하게 했던 세월호에 관한 글도 몇 편이 실려 있다. 그는 이 사건이 일어난 후에 단 한 줄의 시도 쓸 수가
없었고, 책 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날들을 보냈다.
거기에 후임병 구타 사망사건도 일어나니.... 그 사건은 폭력의 횡행, 배려의 실종을 말해주는 사건이니, 성찰과 반성을 하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은 어른들에게 많은 문제점이 있지 않을까.
그의 퇴직을 통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괜찮다, 괜찮다. 넌 최선을 다해 걸어온 거야.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그저
다리 하나 건넜을 뿐입니다. " (p. 194)
직장생활을 그만 두던 그날이 생각난다. 나도 이호준처럼 떠나는 것을 누군가에게 눈치채게 하고 싶지 않았던 그런 마음이었었는데....
그는 퇴직 이후에 바닷가에서 한동안을 지낸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가끔 그곳을 벗어나기는 하지만, 그에게 옛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했고,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이기도 한 마을인데....
문득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추억 중에는 신발에 얽힌 추억이 가슴을 쓸쓸하게 만든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 신발에 관한 슬픈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검정 고무신도 꿰매 신고 다녔던 그 시절의 아이들이 가장 부러웠던 것은 하얀 고무신, 중고등학생이라면 검정 천 운동화에 얽힌 사연들.
" 기억의 다락방에 숨어 있는 신발의 추억은 기쁨 보다는 슬픔입니다. " (p.
306)

저자는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 그늘 속에 빛나는 작은 생명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