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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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가 쓴 <파수꾼>은 출간되기 전부터 독자들의 관심을 받아 온 소설이다. 그건 전작인 <앵무새 죽이기>가 미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성경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있는 책> <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작품이며, 미국의 고등학교에서는 '미국의 역사와 인권 의식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작품'이라고까지 극찬을 받는 작품이다.

그건 아무래도 주인공인 진 루이즈의 아버지인 애티커스 핀치가 억울한 누명을 쓴 톰의 변론을 맡아서 보여준 활약  때문일 것이다.

양심과 정의의 상징인 애티커스, 그는 흑인들이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아니 문명화되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는 그당시에는 백인 변호사로서는 할 수 없었던 진정한 양심을 보여준 용기와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소설에 매료되었다.

읽고 난 후에 오래도록 기억되었던 <앵무새 죽이기>

2015년 여름, <파수꾼>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잔뜩 기대를 하고 이 책을 기다려 왔다. 그리고 오래전 읽었던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을 세트로 사서 한 권씩 읽어 나갔다.

그런데, <파수꾼>을 읽어나가는 동안에 느끼는 생각들은 그리 유쾌하지가 않다. 지금까지 알아 왔던 좋은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산산조각이 나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니 어쩌면 <앵무새 죽이기>에서 보여준 애티커스 핀치의 모습이 그동안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충분히 애티커스의 언행에서 이런 조짐이 보였건만 그걸 우리는 외면했고, <파수꾼>을 통해서 나타난 상황에 당혹스러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애티커스에 대한 과대 포장이 벗겨졌을 뿐이고, 그걸 독자들은 애티커스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져 본다.

<파수꾼>이 오랜 침묵 속에서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이 흥미롭다. 하퍼 리는 1936년생으로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그녀 역시 법학을 공부했으나 글쓰기가 자신의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서 친구인 트루먼 커코티(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을 씀)의 도움을 받아 소설을 쓴다. 그녀는 <파수꾼>이란 소설을 쓰게 되고, 이 소설을 출판사로 보내게 되는데, 출판사에서는 소설을 주인공을 어린이의 시각으로 바꾸어 쓰도록 제안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는 1930년대 미국의 작은 마을 메이콤을 배경으로 해서 화자인 스카웃(진 루이즈)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인 6살 어린이에서 9살 정도까지의 체험을 어른이 되어서 회상하는 형식을 빌려서 쓰게 되는데, 그 소설이 <앵무새 죽이기>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1960년에 출간되는데, 출간되자 마자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에 위압감을 느낀 하퍼 리는 몇 번의 글쓰기를 시도해 보지만 절필을 선언하고 인터뷰를 비롯한 모든 활동을 접고 은둔생활을 한다.

2014년 8월, 하퍼 리의 법무 대리인은 작가의 금고를 정리하던 중에 낡은 원고 뭉치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앵무새 죽이기>의 전작인 <파수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파수꾼>은 55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된다. (현재 작가 나이 : 90세)

정리하자면, <파수꾼>은 <앵무새 죽이기>의 전작이기도 하지만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 미국의 앨라배마 주의 메이콤이 배경이고, <파수꾼>은1950 년대가 시대적 배경이며, 성인이 된 (26세) 진 루이즈가 고향을 떠나 뉴욕에 살다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메이콤으로 잠시 돌아오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앵무새 죽이기>가 6살~9살 정도의 어린이의 관점에서 쓰여졌기에 그당시의 미국 남부의 흑백갈등, 즉 인종문제를 부드럽게 다루었다면, <파수꾼>은  인종문제에 관련하여 26살 성인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데, 인종, 편견에 관한 문제는 사람마다 각자 다양한 상황에서 온갖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20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 진 루이즈의 오빠인 젬은 죽었고, 아버지인 애티커스 핀치는 72세노인이 되었다. 새로운 등장인물로는 오빠의 죽마고우인 헨리 클린턴이 진 루이즈의 연인으로 나온다.

그밖에 진 루이즈가 혐오스럽게 생각하던 고모 알렉산드라는 여전하지만, 어느새 진 루이즈도 알게 모르게 고모의 비난 섞인 언행을 닮아 가고 있다.

또한 진 루이즈의 삼촌의 비중이 소설의 하반부에 두드러진다. 이건 아버지인 애티커스 핀치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독자들을 분노하게 한 것은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했던 애티커스 핀치의 돌변한 모습인데, 그는 NAACP 흑인 변호사, 흑인들의 시민권 운동을 폄화하고 인종주의적인 면모로 급 반전을 한 인물로 표현된다.

이런 애티커스의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에 대응하는 진 루이즈가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보다 더 정의로워 보인다. 어쨌든 이를 통해서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독자들에게

전달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진 루이즈가 너무 어려서 아버지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했으나 <파수꾼>에서는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다 보니 아버지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티커스 핀치는 <앵무새 죽이기>에서나 <파수꾼>에서나 평생을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살아온 인물이다. 또한 법의 원칙에 따라서 변론을 해 온 인물이다. 그러니 그를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정의와 신념의 변호사, <파수꾼>에서는 편견에 가득 찬 인종주의자라고 폄하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독자들의 편견일 수도 있지 않을까.

" 그녀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다. 따뜻하고 편안한 과거의 아주 작은 음성이었다. <여러분, 제가 이 세상에서 믿는 구호가 하나 있다면, 이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권을, 특권은 없습니다. >" (p. 154)

" 애티커스의 삶의 비결은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심히 복잡해 보이기까지 했다. 규범을 정하고, 그에 따라 살고자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애티커스는 호들갑 떨지 않고, 허세 부리지 않고, 인생의 의미 같은 것도 따지지 않고, 그저 성실히 자신의 인생을 살았다. 그에게 규범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신약성서의 윤리었으며, 이로써 돌아오는 보상은 그를 아는 사람들의 존경과 헌신이었다. 적들조차 애티커스를 좋아했는데, 이는 그가 그들을 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 163)

하퍼 리가 이 소설을 쓸 당시의 미국 앨라배마는 인권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그런 상황에서 작가가 느꼈을 많은 문제들.  흑인의 인권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미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이런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앵무새 죽이기>는 <앵무새 죽이기>대로, <파수꾼>은 <파수꾼>대로, 나름대로 읽으면서 가슴 속을 울리는 메아리가 있다. 이 두 소설은 미국 사회가 걸어 온 단면이기도 하고, 미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 <앵무새 죽이기>가 모든 사람들의 깊은 진심은 선하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희망적으로 막을 내리는 반면, <파수꾼>은 사람이란 좀처럼 변화하기 힘든 존재라는 체념이 깃든 결말로 끝을 맺는다.

세상의 모든 책은 자기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반면 인간의 삶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복잡해지고 거듭  꼬일 수 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지니고 있다. " (하퍼 리  버즈 북 vol 3, p. 230 중에서)

그래도 훈훈한 것은, 아빠에게 모진 말까지도 서슴치 않는 그런 딸이 아빠는 자랑스럽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딸이.....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아빠를, <파수꾼>에서는 딸을, 그러면, 두 권의 책을 통해서 독자들의 마음이 한층 성숙해질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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