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어야 할 때에 마땅히 먹을 것이 없으면 찾게 되는 것이 라면이다. 간단하게 끓여서 먹을 수 있는 간편한 라면...
그런데, 라면도 요즘에는 레시피가 다양해져서 라면답지 않은 라면으로 한 끼 식사를 대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
내 기억 속의 최초의 라면은 닭고기 스프가 들어 있었던 라면이었는데, 집에서 엄마가 끓여주던 담백한 소면이나 칼국수에 길들여진 어린 내
입맛에는 느끼해서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을 읽으면서 지금은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라면이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건너오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쓴 저자인 '무라야마 도시오'는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고 공부하는 일본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일본의 라면 이야기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라면에 관한 내용도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있다.
1960년대에 라면이 한국과 일본을 이어주는 돈독한 관계였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일본과 한국에서 열정을 가지고 라면
사업에 혼신을 바친 두 사람의 이야기가 각 장마다 교차적으로 나온다. 일본의 묘조식품의 '오쿠이 기요스미', 한국의 삼양식품의 '전중윤'의 라면
이야기이다.
그런데 저자는 라면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니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서 일본과 한국의 사회상과 경제상황 등도 다루고 있어서
'라면의 문화사'이기도 하면서 '오쿠이 기요스미'와 '전중윤'의 평전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책이다.
라면으로 인연을 맺은 '오쿠이 기요스미'와 '전중윤'의 깊은 우정 이야기는 참으로 감명적이다.
역사를 거슬러서 1950년 무렵 오쿠이는 건면 생산을 하게 되는데, 현재의 면의 건조과정에 쓰이는 자동화 기계는 1940년 말에서
1950년 대 초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기에 여러 차례의 실패와 보완을 거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오쿠이는 결코 건면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 그렇게 비관할 일만은 아니야. 이번 실패는 반드시 다음 도전 때 성공을 가져다줄
열쇠가 될걸세 (...) 열 번 시도해서 한 번 성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해 (...)" (p. 46)
1954년에 오쿠이는 일본 최초의 '이행식 자동 건조장치'를 개발하게 된다.
1958년말에는 닛신 식품의 인스턴트 라면이 개발되어 대박 히트 상품이 되고, 오쿠이의 묘산 식품도 라면 개발에 나서고 시식회를 열지만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게 된다.

용기에 물을 붓고 3분 후에 뚜껑을 열면 맛있는 라면이 만들어지는데, 오쿠이는 즉석 라면 보다는 냄비에 라면을 끓여 먹는 라면을
시도한다. 여기에 스프는 따로 들어 있는 스프별첨 묘조라면을 만든다.
이렇게 일본에서 오쿠이는 건면 사업에서 라면사업으로 전환을 할 때에,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에는 총독부에서 보험업무를 맡았던 전중윤이 보험회사인 동방생명을, 이후에는 제일생명의 사장을 지내기도 하였는데,
어느날 남대문 시장에서 미군 부대의 잔반을 다시 끓여서 일명 꿀꿀이죽이라는 것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6.25 전쟁 후에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식생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국민의 식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 라면을 우리나라에 보급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본의 라면제조 기술을
배우러 묘산식품을 찾게 된다.
어렵게 성사된 오쿠이와의 면담으로 라면 제조 기술을 전수받고 기계를 수입하게 된다.
" 제 2항에는 갑 (묘조식품)은 을(삼양식품)에 대하여 한일 친선을 위해 인스턴트 라면
제조 기술을 무상 제공한다 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 ( p. 234)
전중윤이 한국에서 라면 사업을 하려는 것이 배고픈 한국 사람들의 한 끼를 해결해 주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안 오쿠이는 전중윤에게
급비사항인 스프 배합표까지 건네준다.
우리들은 라면이 일본에서 건너 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배경과 과정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라면에 얽힌 오쿠이와
전중윤의 열정, 우정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서 접해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전중윤은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 라면을 보급시키기 보다는 배고픈 한국인들의 한 끼를 해결해 주기 위한 생각이 더 깊었다는 점에
감동을 받았다.

지금은 라면 후발 업체들의 꾸준한 성장으로 삼양라면이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내려가 있지만 전중윤의 라면 사랑의 마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처음 삼양라면이 우리나라에 선 보일 때에 일본 라면의 중량인 70g 보다 많은 중량 100 g (한국인의 한 끼 식사량을 고려해서),
그리고 라면 가격 10원 (당시 커피 한 잔이 35원, 서민들을 위한 가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삼양라면은 1963년 9월 15일에 한국 최초의 라면을 생산한 후에 3년 동안 적자액이 자보금의 5배에 이르렀다. 물론, 처음에는
닭고기 스프의 느끼함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은 이유도 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라면에 얽힌 이야기인 라면의 탄생과 역사, 그리고 겉들여서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두 나라의 문화사를 이
책을 통해서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