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전에 조카가 " 이모 <앵무새 죽이기> 읽어봤어?"하고 물어봤다. 읽기는 읽었는데, 오래 전에 읽었기에 줄거리만 대충 생각이 났다. 조카는 친구에게 책선물을 하고 싶은데, 그 친구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앵무새 죽이기>라고 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꼭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넘쳐나는 신간서적들을 읽다보니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런데, '하퍼 리'의 <파수꾼>이 출간되면서 <앵무새 죽이기>와 함께 <파수꾼>을 읽기로 했다.

<앵무새 죽이기>에 붙어 다니는 수식어는 많지만 그중에 대표적인 내용은 <성경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있는 책>, <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 <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뭐 그런 찬사들 보다 가장 마음에 와닿는 책 소개글은 '버락 오바마'의 글이다.

" 용기와 신념의 이야기...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공유할 보편의 가치는 무엇인지 말해 주는 작품" (책 뒷표지 글 중에서)

그렇다. 인간은 정의로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비열한 행동을 서숨치 않는다. 요즘 매스컴을 떠들섞하게 했던 '갑질'논란도 결국에는 인간의 단면 중의 일부분에 해당된다.

사회적 약자 앞에서 한없이 커지는 인간, 자신과 다른 상황에 처해있다고 해서, 다른 모습이라고 해서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사회적 약자이기에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현시점에서 생각하더라도 마음 속에 걸리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우리가 외국인을 대할 때도 선진국 국민들에게는 우호적이지만, 얼굴색과 그들의 나라에 대한 편견 때문에 멈칫하고 무시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던가.

이 책의 저자인 '하퍼 리'는 1926년생이니 현재 90세이다. 그녀는 <파수꾼>이란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는데 출판사에서는 작품을 고쳐서 <앵무새 죽이기>로 출간을 하게 되고 그 때가 1960년, 그녀가 34세 때이다. 그리고 90세가 된 2015년 2번째 장편소설인 <파수꾼>이 출간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앵무새는 원래는 mocking bird로 미국 남부에 서식하는 지빠귀새인데, 새 울음소리를 잘 흉내내는 지빠귀새를 말한다. 그렇지만 그동안 이 책이 <앵무새 죽이기>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선보여졌기에 이번에도 책제목을 바꾸지는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앵무새 죽이기'란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먼저 살펴본다. 이 책에 나오는 '부 래들리', '톰 로빈슨' 그들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에 대한 편견 때문에 사회적 약자로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사람이다. 마치 앵무새가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하면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것처럼.

 

"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 (p. 174)

 

<앵무새 죽이기>의 배경은 1930년대 미국의 작은 마을 메이콤이다. 이 소설은 성장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주인공이자 소설의 화자인 스카웃은 고작 6살 정도로 초등학교 들어가기 이전부터 입학후 몇 년까지 (6살~ 9살 정도) 자신이 체험한 이야기를 어른이 되어서 회상하는 형식이다.그래서인지 초등학교 저학년의 학생의 생각이라기에는 좀 어른스러운 그런 내용들이 여기 저기에서 느껴진다.

1930 년대가 시대적 배경이라면 1929년의 세계적인 공황을 떠올리게 되고, 미국소설이라면 인종갈등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설 속의 메이콤이란 도시가 바로 흑백 갈등에 관한 사건이 많았던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주라는 점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점들이 나오게 되는 배경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마을에서 소외당한 인물인 래들리, 집 밖으로 나오지 않기에 그에 대한 흉흉한 소문과 흉가처럼 무시무시한 집에 대한 스카웃과 오빠 젬, 친구 딜의 호기심에 찬 관찰이 이 책의 전반부를 읽는 재미이다. 이 장면은 책이 아닌 드라마인지 영화인지를 통해서 봤던 기억이 나서 더 흥미있게 읽은 부분이다.

특히 래들리의 집에 서 있는 떡갈나무의 옹이진 구멍에 어떤 물건들이 담겨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읽으면서 스카웃 만큼이나 궁금해졌는데, 그 구멍이 막혀지니 래들리와의 소통이 단절되는 느낌이었다.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흑인인 톰 로빈슨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부분은 미국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인종갈등 문제여서 그 결말이 더욱 궁금했다.

미국 사회에서 만연한 인종갈등은 백인들의 무분별한 약자에 대한 편견이며, 만약에 백인들이 흑인의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살펴본다면 이런 인종차별은 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래들리가 한 말 중에,

"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래도 핀치 변호사가 톰을 위해서 기울이는 변론, 그리고 그 변론의 의미를 이해하는 오빠 젬,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는 하지 못하지만 어설프게나마 이해하는 스카웃이 있기에 미국의 앞날은 밝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앵무새 죽이기>를 다시 읽으면서 왜 조카의 친구가 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