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의 TV 프로그램이었던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을 통해서 소개된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도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책들은 읽었기에 시인 신경림은 우리 모두에게 낯익은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시인이다.
이번에 출간된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는 한국의 시인 신경림과 일본의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대시(對詩)가 담겨
있는 책이다.
소설에 있어서는 한국의 공지영과 일본의 츠지 히토나리가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같은 제목의 두 권의 소설을 쓴 경우가
있다. 한국 여자와 일본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공지영은 한국 여자의 시선으로, 츠지 히토나리는 일본 남자의 시선으로 그린 소설인데, 2권의
소설을 읽으면 1권의 소설을 읽을 때와는 또다른 서로의 감정을 엿 볼 수 있어서 하나의 사랑이야기가 완성되는 소설이다.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를 읽으려다가 얼핏 떠오른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그 소설과는 또다른 의미의
책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대시이지만 일본에서는 '연시'(連詩)라 하여 일본의 전통시 '연가'(連歌)를 현대시에 응용한 것으로 시인 몇 명이
모여서 돌아가면서 각기 몇 줄씩 시를 써서 한 편의 긴 시를 완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신경림과 다니카와 슌타로는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시를
지었기에 대시(對詩)라고 한다.
원래는 연시 또는 대시를 짓는 과정에서 시인들이 서로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전하여야 하지만 이들은 2014년 1월부터 6월에
걸쳐서 전자메일을 통해서 시를 주고 받았다.
신경림과 다니카와 슌타로는 가까운 듯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적을 가지고 있다. 연배는 비슷하기에 그들이 살아온
세월 동안에 느꼈을 삶의 연륜에서 쌓은 감정은 유사한 면이 많을 것이다.

신문에서 눈을 떼고 텔레비전 소리도 끄고
뜰에 있는 단풍나무의 어린잎을 바라봅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못하는 것을 외경(畏敬)하는 것과
사람의 손이 닿은 것을 무서워하는 것
외경심을 잃어버릴 때 공포가 생긴다 -
다니카와-
사람의 손이 닿지 못하는 것은 갈수록 많아지고
사람의 손이 닿은 것은 갈수록 두려워진다
세상에 아무것도 주지 못하면서
오래 서 있기만 하는
늙은 미루나무가 오늘따라 서럽다 -
신경림-
이 책 속에는 신경림과 다니카와 슌타로가 서로 나눈 대시가 먼저 소개된다. 먼저 다니카와의 시가, 그리고 신경림의 시가 소개되는데, 이
시들은 페이지마다 윗부분에 일본어로도 쓰여져 있다.

특히 이 기간 동안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기에 시 중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도 담겨져 있어서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아프게
한다.
숨 쉴 식(息)자는 스스로 자(自)와 마음 심(心)자
일본어 '이키(息, 숨)는 '이키루 (生きる,살다)'와 같은
음
소리내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숨이 막히는 괴로움을
상상력으로조차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괴로움
시 쓸 여지도
없다 - 다니카와-
밤새껏 물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눈을 뜨니 솜이불이 가시덤불처럼 따갑다
아랑곳없이 아침햇살이 눈부신 앞뜰에는
목련이 지고 작약이 피고
이렇게 봄은 가고 있는데 -
신경림-
대시에 이어서 신경림과 다니카와 슌타로는 서로의 대표작 중에서 좋아하는 시를 뽑아서 소개해준다.
또한 노 시인들은 도쿄와 파주에서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 이야기를 대담형식으로 담아 놓았다.

시를 통해서 알 수 없었던 신경림과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야기는 그들의 에세이를 통해서 접할 수 있다.
1935년생이 신경림의 유년시절은 일제 강점기였다. 그 시절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신경림의 유년시절의 이야기는 해방직후까지 그의 에세이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2011년 대지진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 지진이 일어난 근처를 여행하였던 신경림으로서는 그당시의 기억이 그 누구보다도
참담하게 느껴졌음을 이야기한다.
다니카와 슌타로은 1931년생으로 부친이 호세이 대학의 총장을 지낸 철학자였기에 부유한 생을 살았겠지만 시인의 기억 속에도
소이탄이 밤하늘에서 빛의 비처럼 내려오던 전쟁의 기억이 남아 있다.
두 시인의 서로 다른 환경, 어쩌면 가해국가와 피해국가의 국민으로서 같은 시대를 보냈기에 그들의 유년시절은 상반된 환경이었을 수도 있겠으나
시로 인하여 가까워졌고, 서로를 이해하고 국가간의 이해관계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우리가 서로 나라가 다르고 말이 다른 만큼 생각이나 정서가 같을 수야 없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지국상에 같은 시대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같은 시대에 같은 하늘의 같은 별을 보면서 꿈을 꾸고, 뜨는 해 지는
해를 함께 보면서 살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p. 148)

이 책을 통해서 신경림의 시세계도 알 수 있었고, 처음 접하는 일본 시인의 시도 읽을 수 있었다. 가장 의미있는 것은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시를 통해서는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