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기담집>은 '이채를 발하는 가장 하루키다운 이야기라고 평가받는 대표
소설집' 이라고 한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 본 사람들은 하루키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몽환적이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한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등장하기에 줄거리 위주로 읽는 독자들은 때론 당혹스럽기도 하다.
기담(奇談)이란 사전적 의미는 '이상하고 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말한다. 하루키는 자신의 신상에서 일어났던 몇 가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가니까 꾸며낸 이야기겠거니 생각한다고
말한다.
아마도 우리가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읽었던 기이한 이야기들 중의 일부는 하루키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였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우리도 아주 가끔은 신기할 정도의 일들을 당하는 경우가 있기는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정말?' 하면서 '믿기는 하지만 과연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구나' 하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
<도쿄기담집>은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다. 신기할 정도로 우연의 일치를 가져 오는 이야기들.
지금까지 하루키가 경험한 신기한 일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들, 물론, 경험담을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 5편의 단편소설로 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첫 번째 이야기인 <우연 여행자>는 신기할 정도로 우연의 일치를 반복하는 남녀 이야기이다. 자신의 이야기이면서 상대방의
이야기같은 이야기.
자신이 호모섹슈얼이란 사실을 알게 된 남자. 화요일 아침, 카페에서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바로 옆자리에서 똑같은 책을 읽고 있는 여자. 이런 우연이 여러 번 겹치게 되니....
" 우연이 나를 이끌어간 경험이죠. 엄청나게 신기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똑 부러지게 해명할 수는 없었어요. 어쨌거나 우연의 일치가 몇 차례 거듭되었고, 그끝에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이끌려간
것이었죠." (p. 16)
두 번째 이야기인 <하나레이 해변>은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아들이 하와이의 하나레이 해변에서 서핑 중에 상어습격으로 발이
잘려서 죽었다. 아들을 잃은 엄마는 해마다 아들이 죽은 날이면 그곳을 찾아 해변가에 앉아 있곤한다. 그런 일이 10년 넘게 계속되는데,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서퍼가 들려주는 이야기. 외다리 일본인 서퍼가 그녀의 곁에 있곤했다하니.... 기이하다기 보다는 섬뜩할 정도로 소름이 끼치기도 하는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인 <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는 아파트의 24층과 26층 계단 중간에서 흔적없이 사라진
남자의 이야기이다. 시어머니가 살고 있는 24층, 부부가 살고 있는 26층.
남편은 어머니집에 갔다가 아내에게 팬케이크를 먹고 싶으니 만들어 달라는 말을 남긴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엉뚱한 곳에서 20일만에 발견된
남편,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남편은 잠적되었던 순간에서 발견될 당시까지의 20일간의 기억이 소멸되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 현실 세계에 잘 돌아 오셨습니다. 불안신경증의 어머니와 아이스피크 같은 하이힐의
부인과 멜릴린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삼각형의 세계에" (p. 120)
그리고 이어지는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에서는 혼자 여행을 떠났다가 계곡에서 줍게 된 콩팥모양의 돌. 그 돌을 주운
준페이와 우연히 만난 기리에의 이야기.
" 이를테면 바람은 의지를 갖고 있어. 우리는 평소에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지.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을 저절로 깨닫게 돼. 바람은 단일한 의지를 갖고 당신을 감싸고 당신을 뒤흔들어. 바람은 당신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 바람뿐만이 아니야. 온갖 다양한 것들이. 돌도 그중 하나겠지? 그들은 우리를 아주 잘 알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다. 어느 순간이 찾아오고, 우리는 그것을 문득 깨달아, 우리는 그런 것들과 함께 살아나갈 수 밖에 없어. 그런 것들을 받아들여서 우리는
살아남고 그리고 점점 더 깊어져 가는 거야." (p. 145)
마지막 이야기는 <시나가와 원숭이>.
" 생각나지 않는 건 단 한가지, 자신의 이름뿐이었다." (p.
161)
구체적인 내용은 독자들이 읽으면서 느껴보기를....
아무튼, 책 속에서 인용한 글들을 잠깐 살펴보아도 '하루키다운' 이야기이고, '하루키만의 필력'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단편소설 제목들도 비교적 긴 편이고, 모호해서 한 편을 읽은 후에 다음 편으로 넘어갈 때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런 면에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각각 에피소드들은 단편 특유의 응축적 깊이와 날것 그대로의 거친 매력을 선보여, ‘가장
하루키다운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판사 리뷰 중에서)
역시 <도쿄기담집>은 이상하고 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가장 하루키다운 이야기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