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에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ㅣ푸른숲 ㅣ2005>를 읽고 사형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볼 때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주르르륵 흘리기도 했다.
'죄는 미우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고도 하지만, 어떤 범죄의 경우에는 그 사건의 잔인함이나 무자비함에 치를 떨게 하기도 한다. '절대로
용서를 해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들이 그 사건의 피해자 가족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음을 느끼게 된 적도
있다.
사형제도는 유지되어야 할까? 아니면 폐지되어도 될까?
피해자의 유족이 가해자를 심판할 수 있을까?
가해자들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기는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공허한 십자가>를 읽으면서 스쳐간다. 무겁게 느껴지는 주제...
히가시노 게이고는 또 새로운 작품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몽환화/ 히가시노
게이고 ㅣ 비채ㅣ 2014>를 읽은 지 몇 달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소설로 나오다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창작열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다작을 배출하고 있다.
흡인력 강한 추리소설들이 대부분이기에 그의 작품이 출간되면 무의식적으로 읽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 인생 30주년을 맞은 2014년에 출간된 소설이니 그만큼 공을 들여 쓰지 않았을까...
이 소설에는 나카하라에게 일어나는 2사건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 찾기가 밑그림으로 깔려 있다. 11년 전에 혼자 집을 지키던
8살 딸이 살해를 당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아내와 이혼을 하고, 다디넌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애견장례업을 하던 중에 아내가 길에서 칼에 찔려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나카하라에게 일어나는 딸의 살해사건 그리고 아내의 살해사건.
아내의 장례식에 갔다가 그동안 자신은 딸의 살해사건 이후에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았지만, 아내는 딸의 사건을 계기로 잡지사에 근무하면서
'사형제도 폐지'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였음을 알게 된다.
딸을 죽인 살인범은 강도살인죄로 수감되었던 전과자인데, 가석방 중에 살인을 저질렀으니, 그에게 사형이 적용되었다면, 이런 불행한 일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나 유족이 검찰처럼 구형 의견을 말하거나 피고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제도인 '피해자 참가 제도'에 대한 내용도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 우리는 듣고 싶네, 피고에게 사형을 구형한다는 말을. 가령 사형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법정에 사형이라는 말을 울려 퍼지게 하고 싶네, 그 마음을 이해하겠나?" (p. 181)
나카하라의 전부인이 살해당한 후에 그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꼭 필요한 제도이기는 하지만,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여론은 여전히 공존한다.
" 사형 폐지론자의 눈에는 범죄 피해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는 말은 이런 사건의 유족들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 유족은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해 범인의 사형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 상상해보기
바란다. 가족이 살해당한 사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 범인이 죽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유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손에 넣으면 가슴속에 쌓인 웅어리를 풀 수 있는가? 사형을 원하는 것은 그것 말고는
유족의 마음을 풀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형을 폐지한다면, 그렇다면 그 대신 유족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묻고 싶다. " (p.
188)
" 흔히 ' 죽음으로 속죄한다'는 말을 하는데,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범인의 죽음은
'속죄'도 '보상'도 아니다. 더구나 그곳을 지났다고 해서 앞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극복하고 어디로 가야 행복해질지는 여전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통과점마저 빼앗기면 유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형폐지란 바로 그런 것이다. " (p.
190)

아내는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사형폐지론을 비판하는 내용의 책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또한 도벽에 관한 내용을 담은 글도 쓰고 있었는데,
그녀의 죽음은 여기에서 단초를 찾게 된다.
그렇다면 사형을 집행받게 되는 사람들은 사형을 형벌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런
반성도 없이 유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이 다만 사형이 집행될 날만을 기다리는 것이 범인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형은 무력한 것이다.
만기 출소를 하는 범인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교도소에서 속죄를 하였을까? 그렇다면 재범을 저지르지 않겠지만, 교도소의 갱생시스템이나
사회의 편견은 그들을 다시 범죄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다.
" '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 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p. 212)
그렇다, 그들은 공허한 십자가에 묶여 있다가 다시 나오는 것일 뿐이다.
사형제도의 모순과 갈등을 다루던 이 소설은 나카하라가 전부인의 살해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남녀 중학생이 저지른 21년 전의
범죄로 옮아간다. 둘만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낳은 영아를 살해해서 수해에 묻어 버린 사건이다. 그 사건이 세상에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 범인이
나카하라의 전부인을 살해한 것이다.
<공허한 십자가>는 사회문제를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흥미롭게 파헤친다.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 속죄, 형벌, 청소년들에
의해서 발생되는 영아 살해사건, 묻혀졌던 살인사건에 대한 훗날의 형벌제도 등....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끝까지 읽어야 그 진실을 알아 낼 수 있는데, 이 책도 여기 저기로 튀어나가기 때문에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숨겨진
진실을 찾아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은,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 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다.
그 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