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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평점 :
지금까지 내가 읽은 강신주의 저서는 <철학의 시대>밖에 없다. 이 책의 부제는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이니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인지 부제만 보아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사에 관심이 있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고대 중국의 혼란스러움 속에서 많은 사상가들이 자신의 사상으로 중국을 다스리고자 하였으니,
그것이 중국 철학의 근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제자백가와 그들의 사상을 올바르게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저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철학자라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철학자 강신주의 이름 앞에는 '돌직구 철학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TV 등의 대중 매체를 통해서 그의 강연을
들었거나 '힐링 캠프'의 게스트로 나온 그를 본 대중들은 이제 낯익은 철학자로 강신주를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아니고, 2013년 이 책의 출간 당시부터 읽으려고 하던 책이었기에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비교적 천천히 읽으면서 책 속의 48가지의 감정들에 대해서, 그리고 각 감정들을 뒷받침해주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인간의 감정을 48가지로 분류하여 그 감정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려주는 철학자는 스피노자이다.
스피노자에 대해서는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 접한 철학자라는 것 이외에는 그 이후에 스피노자에 대한 책을 읽어 보지 못했기에 철학자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었다.
스피노자는 이성의 윤리학이 아닌 감정의 윤리학을 옹호했으며, 슬픔을 주는 관계를 제거하고 기쁨을 주는 관계를 지키라는 기쁨의 윤리학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48가지로 나누어 각각의 본질을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그 내용이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실려 있다.
우리의 내면 세계라고 할 수 있는 감정, 사랑, 절망, 분노, 질투, 슬픔....
분명 우리의 마음 속에 움크리고 있는 감정들인데, 이에 대해서 설명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스피노자는 너무도 명확하게 이런 감정을 정의한다.
사랑 - 사랑 (amor)란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탐욕 - 탐욕 (avaritia)이란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
멸시 - 멸시 (despectus)란 미움 때문에 어떤 사람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
미움 - 미움 ( odium)이란 외적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희망 - 희망 (spes)은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 (inconstans laetitia)이다.
- 스피노자 , <에티카>에서

이렇게 스피노자가 말하는 48가지 감정을 인간의 삶을 굴곡지게 하는 걸작을 보여주는 문학가들의 48 편의 작품들을 통해서 살펴본다. 즉,
스피노자의 감정과 문학작품을 연결하는 감정수업이다.
그리고 각 쳅터의 끝에는 '철학자의 어드바이스'가 실려 있는데, 이것이 바로 철학자 강신주의 목소리이다.
각 감정에 걸맞는 문학작품을 고른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문학작품의 선택은 독서가이자 편집자가 고른 작품을
강신주가 읽고 그 감정에 타당한 작품인지를 고려하여 읽고 그 중의 문장들을 발췌하여 설명하는 형식으로 이 책을 엮었다.
참고로, 이 글들은 <중앙선데이>의 <S 매거진>에 격주로 <강신주의 감정수업>으로 연재되었었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48권의 명작을 접할 수 있다. 그중에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내용은 책과 연결된 감정을 이해하기가 쉽다.
비루함의 감정에 <무무>, 탐욕의 감정에 < 위대한 갯츠비>, 박애의 감정에 <레 미제라블>, 절망의
감정에 <책 읽어주는 남자>, 호의의 감정에 <노르웨이의 숲>, 영광의 감정에 <노인과 바다>, 분노의 감정에
<죄와 벌>, 희망의 감정에 < 위대한 유산>, 복수심의 감정에 < 빙점>이 선택된 이유를 확실하게 이해할 수가
있다. 이렇게 읽었던 작품들이 나오면 각 감정과 이입시키기가 쉽고, 그 작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밖에 읽지 않았지만 궁금했던 작품들에 대해서도 강신주는 그 책 속에서 특별히 어떤 감정과 연결지어 읽어야 하는가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다.

책 속의 48 작품을 통해서 어떤 작품이든간에 어떤 특정한 감정이 작품 속에 파고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위대한 작품은 이렇게 어떤
감정에 모든 등장인물과 사건들을 포섭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깊이있는 독서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전 명작은 어느 정도 삶의 연륜이 쌓인 후에 읽어야 그 작품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독서 교육은 청소년들에게 미처 배경지식도 갖추지 못하고, 삶의 무게를 느끼지도 못하는데, 세계적인 문호들의 고전을 읽으라고
권장도서 목록에 담아 놓고,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는 숙제를 내주기도 한다. 그건 독서를 권장하기 보다는 어려운 고전에 눌려서 책을
기피하는 청소년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내 경우에도 학창시절 힘들게 읽었던 재미없던 고전이 지금은 세기적인 명작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 주곤하니까....

강신주와 함께 읽는 책 이야기, 그 속에는 스피노자의 48 가지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48 가지의 감정을 그 개념부터 정확하게
살펴보는 것은 '좋음' 그리고 '나쁨' 이라는 행동 기준을 더 단호하게 삶에 관철시킬 수 있게 해 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 책은 48 가지 감정의 명확한 정의를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출발하여 48 권의 명작 속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게 되고, 또한 그 책을 쓴
48 명의 작가를 알아 보는 의미까지 있어서 정말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