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고상돈이 생각난다. 그가 8,848 m의 에베레스트 산에
오른 것이 1977년인데, 그당시 그가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사진과 등정에 사용했던 물품들을 전시하는 것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라면 건더기 스프를 비롯하여 건조 식품들이 많지만, 그 때는 전시된 건조식품들이 신기했었다.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도 신기할 수 없었다.
그 이후에 친구가 대학 산악반에 들어가서 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그리고 설악산, 소백산, 서울 근교의 산을 몇 번 따라 간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산서에 대한 관심도 많아져서 여러 권을 읽게 되었다.
논어에는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라는 문장이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길 줄 알며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 라고 했다.
나는 이 문장을 생각할 때 마다, 나는 산을 좋아하니까 인자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읽게 된 <그곳에 산이 있었다>는 한국 등산계를 지켜온 산악인이기도 하고, 등산의 기초부터 등산에 관한 역사,
문화까지에 걸쳐 전인적 등산교육을 담당해 왔던 이용대가 산에 대한 도전, 열정,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삶의 편린들까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었어
흥미롭게 읽었다.
흔히,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 당신은 왜 산에 오르십니까?" 라고 물으면 " 산이 거기에 있어서 오른다"는 우문현답을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에 대한 답을 지적 호기심이라고 말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산에 오르는 것은 아닐테지만, 결국에는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에' 오르는 것이 아닐가.
요즘 평일에도 가까운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휴일에 지하철을 타면 울긋불긋 등산복을 읽은 등산객을 몇 명쯤은 만날 수
있다.
등산이란 개인적인 체험 영역이지만 그 체험을 상업화하여 돈과 맞바꾸는 상업주의로 변질되 가기도 한다. 단순히 자신이 오른 세계적인 등반
봉우리의 숫자나 이름을 수집하기 위한 정상 수집가들도 나오게 되고, 등산의류와 장비들이 고급화되면서 동네 근처 산을 오르면서도 고가의 아웃도어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곳에 산이 있었다>는 그런 세태를 꼬집기도 하면서 등산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산악인들이 꿈꾸는 것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것이리라. 그래서 등정주의를 고수하는 산악인들도 있지만, 그 보다는
등산의 목적을 등정에 두지 않고 등정에 이르는 과정에 두는 등로주의 산악인들도 있다.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등로주의가 불확실하지만 자기만의 산길을 찾아 오르는 진정한 의미의 산악인이라고 보기도 한다.
종종 일어나는 등정 시비는 등산의 과정 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두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2002년에는 '티롤
선언문'이 발표되면서 '등반 보고는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수행할 것'이란 내용이 들어가게 되었다.
아무리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2등이 더욱 빛난 사례로는 1911년에 남극점 선점을 놓고 세기의 승부를 겨룬 아문센과 스콧
중에서 스콧의 행동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사례라고 본다.
간발의 차이로 아문젠이 남극점을 정복하지만 그는 짐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썰매견을 식량으로 사용했다. 처음 떠날 때에 52 마리의
썰매견은 12마리만 남겨졌었다.
그러나 스콧은 16kg의 고생대 식물 화석을 싣고 대원들이 659km의 거리를 직접 썰매를 끌면서 걸어서 도달했던 것이다. 등반가라면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잘 적응하는 슬기로운 탐험가가 2등이라도 1등 보다 더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1장에는 등산의 역사, 2장은 산악단체의 기원, 등산학교의 기원, 그리고 3장은 국내외 알피니스트들에 관한 이야기, 4장은 저자
자신을 비롯한 산악인들의 등산기록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각 장이 끝나는 부분에는 저자 자신이 감명깊게 읽었던 산서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 중에 뜻밖의 이야기는 시조시인이자 사학자인 노산 이은상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한국 산악회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이다.

" 등산처럼 다양한 세계는 없다. 고산과 암벽, 빙벽만을 오르는 것이 등산은 아니다.
등산이 건강을 도모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수단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지만 등산은 단순히 산을 오르는 행위일 뿐만이 아니라 산을 탐구하는
행위이다. 자연환경, 생태, 문학, 역사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폭넓게 탐구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산에 오르자. " (p.
315)
특히 이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다가오는 부분은 산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산을 찾을 때에는 정상만을 바라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 발 밑의 작은 풀꽃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슴에 와닿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