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는 항상 내 곁에 몇 권의 시집이 있었다. 읽고 또 읽고 읽어도 또 읽게 되는 것이
바로 내 가슴에 잔잔하게 파고 드는 시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손편지를 주고 받던 시절에는 편지 속에 꼭 한 편의 시를 적어서 보내곤 했다.
친구에게, 연인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내가 이렇게 편지 속에 적어 보내는 시들은 내 나름대로 고심을 해서 적어 보내는 시들이었다.
받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시를 고르기도 하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시를 통해서 내 마음을 담아 보내기도 했다.
이런 편지를 받은 이들 중에는 내가 시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한 권의 시집을 선물로
보내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내가 보낸 편지의 답장에 나처럼 한 편의 시를 적어서 보내기도 했다.
우리에게 시는 외롭고 울적할 때에도,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윤동주의 서시, 김소월의 진달래꽃,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 릴케의 가을날,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등은 특히 좋아하던 시들이다.
시는 삶 속의 빈칸을 채우주기에 항상 가슴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순간을 읊조리다>는 " 여기에
실린 문장들은 언어를 조탁하는데 자신의 평생을 바친 시인들의 아름다운 파편이다." ( 책 속지 속의 글 중에서)라고
말하듯이 70 명의 시인들이 그들의 마음을 담아낸 시 들 중에서 짧게는 한 문장, 길게는 몇 문장을 선택하여 책 속에 담아
놓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 편의 시를 모두 읽는 것 보다도 더 가슴 속에 깊게 각인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압축된 시 속에서 더 압축된 한 문장, 또는 몇 문장이기에, 그것은 시인들의 아름다운 파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는 문장들, 그리고 그림들이 알알이 삶의 빈 칸을
채워준다.
" 살다가 보면 /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 ( 살다보면 ㅣ 이근배)
"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 ( 낙화, 첫사랑 ㅣ 김선우)
" 그가 가진 책들의 제목을 훑어보면 /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파도 ㅣ 김이듬)
"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네가 다시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기억하는가 ㅣ 최승자)
" 쓰러지지 않으면 내가 아니다 /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내가 아니다." (오뚝이 ㅣ 한명희)

아주 간결한 문장들이지만, 그 문장들을 들여다 보면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 준다. 시인들에 의해서 시로 승화되었던 문장들은 우리의 가슴에 작은 여울이 되어 퍼진다.
꼭 한 편의 시를 읽지 않아도, 한 줄의 문장, 또는 몇 줄의 문장을 통해서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응축된 아름다운 시인의 언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