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통의>의 저자인 '이덕일' 앞에 붙는 수식어는 다음과 같다.
" 넓이와 깊이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역사학자", "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아우르는 파워라이터"," 굴절된 역사관을 정확한 근거와 사료를 바탕으로
뒤집어낸다", " 역사책을 찾는 독자라면 그를 피해갈 수 없다." 등이다.
그렇다. " 역사책을 찾는 독자라면 그를 피해갈 수 없다"는 말처럼 한국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은 그의 저서라면 한 두 권 이상을
읽었을 것이다. 그의 저서를 읽은 후에 갖게 되는 이덕일에 대한 생각은 "넓이와 깊이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역사학자"이다.

내가 그의 저서를 처음 읽은 것은 <조선 왕 독살사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책을 처음 읽을 때에는 왕실의
가십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읽었지만 역사적인 맥락을 통한 사료 검증이 바탕에 깔린 책이었다. 그래서 그의 저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여러
권을 읽다보니 그 책들 중에는 내용이 중복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주로 조선을 중심으로 쓴 책들이 많으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고금통의>는 좀 더 폭넓게 한국사 전반에 걸친 내용으로 책 제목처럼 "옛 것에 비추어 오늘의 해법을 구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의 하나는 '뿌리찾기'의 의미도 있겠지만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오늘날을 비추어 볼 수 있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어제의 역사는 오늘에도 그 뜻이 통한다'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의 역사도 옛일에 비추어 그 해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관통하는 의는 같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점의 해답을 역사 속에서 찾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의 고대사가 축소되어 씌여졌다는 점과 함께 중국의 동북공정의 진행에 따른 문제를 지적한다.
또한 우리의 역사는 일본의 식민사관에 씌여진 부분들이 많아서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고조선으로까지 올라가게 되는데,
일본의 고조선을 한반도 북부로 규정지었지만 역사를 치밀하게 살펴보면 고조선의 대륙 진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식민사관으로 이를
축소시켰고,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이를 축소하고 있다.
"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4권> 1997은 '최근 요동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성과의 문헌 고증에 의거할 때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는 현재의 요동 지역으로 보는 것이 옳으리라 생각된다. " (p.
103)
고조선의 역사 뿐만 아니라, 식민사학의 미망(迷妄) 속에 빠져 1892년에 '하야시
다이스케'가 쓴 <조선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사교과서를 하루빨리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요즘, 영화 <명량>으로 인하여 다시금 화제의 인물이 된 이순신, 그가 문신 집안 자제로서 무과를 선택한 이유를 알고 있는가?
그의 소신에 따른 선택이 조선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이 점은 자녀교육 문제와 함께 우리 시대에서 재조명해 보아야 할 내용이다.
외국에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황산벌 전투를 백제와 신라의 전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좀더 시각을 넓히면 황산벌의
영웅인 계백과 신라의 관창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격이 된다.
또한 계백, 김흠춘, 반굴 부자. 품일 관창 부자는 공을 위해서 사를 던진 인물들이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역사 속에서 자연 재해에 어떻게 대비했는가 하는 이야기, 그리고 정부 인사의 임용과정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행동,
관비아 척결에 대한 내용들이 이 시대에 요구되는 문제점이기에 이를 역사 속에서 찾아 본다.
난국을 타개한 참신한 인재를 등용한 임금으로는 선덕여왕, 태조, 태종, 세종 등을 예로 들었다.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도
조선의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의 승지의 사례를 든다.
승지들은 임금의 목구멍과 혀를 맡는다는 뜻의 후설지직(喉舌之職)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임금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는 대통령은 결코 민심이 떠나는 정권을 가지지 않는다.
" 정조처럼 당파를 초월하는 통합의 정치로 미래를 지향하는 대통령을 언제나 볼 수 있을
것인가? " (p. 249)
민생의 어려움을 아는 인재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종당과 사돈붙이'를 넘어서 인재를 찾는다면
인재를 못 찾을 이유가 없으리라.
"민초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찌 인재가 없겠는가" (p.
257)
작금의 정치는 같은 당 내에서도 여러 갈래의 계파가 존재하니, 소속 정당을 초월한 국정 운영을 원하는 것은 비단 저자만이 가지는 마음은
아닐 것이다.
또한 관비아 척결에 관한 내용은 <고려사 절요>, <경국대전>등에서 찾을 수 있다.
'전관예우'라는 말도 요즘 자주 듣게 되는 단어인데, 조선시대에 전임자를 제도적으로 우대한 것에서 유래한다. 세조 3년 7월에 봉조청을
설치해 관직이 있는 공신과 종친들에게 녹봉을 준 것이 그 시초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실제로는 일본 왕실 용어로 '대신의 예우와 전관 예우
하사에 관한 조항'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면 된다.
이런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법조계,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국민의 인신과 재산을 다루는 곳을 중심으로 남아 있으니 하루 빨리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
<고금 통의>에 실린 내용들은 교실 수업에서 학습하게 되는 역사 교과서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을 통해서 현재를 바라다 보았을 때에 현재 우리 사회가 부딪히고 있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거기에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관통하는 의는 같다" 바로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