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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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성석제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작가의 초창기의 작품은 읽지를 않았지만 문학지를 통해서는 수상작품이나 심사위원, 추천작가의 작품으로는 몇 편을 읽었었다.

그런데, 1996년에 출간되었다가 재간행된 <왕을 찾아서/ 성석제 ㅣ 문학동네ㅣ 2011>를 읽은 후에 작가의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몇 권의 장편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이번에 읽게 된 <투명인간>은 그 중에서 가장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읽는 도중에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도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부모 세대 또는 독자 자신이 살았던 가까운 과거이다. 대략 거슬러 올라가서 1950년대에서 현재까지의 우리의 현대사를 담고 있다.

'또뽑기', '불주사', ' 혼분식', '곡식이삭 주워오기',' 잔디시 훑어오기', '새마을 운동', '월남전', '구로공단', '우골탑',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등을 기억한다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이 살아 온 어떤 시점의 이야기임을 상기시키면서 빙그레 웃을 수도 있고, 쓴 웃음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마치 희미하고 윤곽도 잘 보이지 않는 활동사진 속의 한 장면을, 또는 컴코더로 찍어 놓은 동영상을 돌려 보면서 이 글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잊혀졌던 기억 속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이 소설 속에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독자들의 인생 중의 어떤 한 부분을 생각나게 하는 그런 세밀한 묘사를 읽으면서 '그땐 그랬지!!' 하는 혼잣말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시작은 마포대교. 걸어 본 적이 없기에 그 다리 곳곳에 씌여져 있다는 글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자살 방지를 위한 그 글들과 함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만수, 그러나 만수의 이야기인가 하고 읽다 보면 어느새 화자는 만수의 할머니가 되기도 하고, 엄마가 되기도 하고, 만수의 형인 백수가 되기도 하고....

이 소설의 화자는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의 한 명이 아닌 모두가 화자이다. 한, 두 페이지를 읽다보면 슬그머니 화자가 바뀌어 있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음 화자로 넘어가서 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수 할아버지는 큰 부잣집의 3대 독자였다. 박식한 선비 할아버지에 비하면 가세가 기운 탓인지 만수의 아버지는 무식하고 무기력한 농사꾼이다. 어머니는 화전민의 딸이었는데, 그들 사이에는 3남 3녀의 자녀가 있다.

가난한 시골에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장남은 그 집안을 살릴 수 있는 존재이니, '개천에서 용'이 나와야 그 집안을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똑똑한 장남을 위해서 나머지 형제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백수는 이런 장남이기에 서울 유학까지 가지만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막노동까지 하다가 월남전에 가게 되고, 고엽제 때문에 세상을 뜨게 된다.

둘째 아들 만수가 이 소설의 중심 인물인데, 태어날 때부터 머리만 유난히 크지 팔다리는 쇠꼬챙이 같으니.... 매사에 자신이 없고, 경재에 뒤처지고, 동생인 석수나 친구 등에게 이용만 당한다.

백수가 있을 때는 장남이기에 그 짊을 벗을 수 있었지만 그가 죽자 장남의 역할을 만수가 하게 된다. 공고출신으로 공장의 관리직 평사원이 되지만 동생들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접어야 할 정도로. 조카까지 자신의 아들로 키워야 할 정도로.

이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범한 서민이라고 하기에는 비루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가까운 과거 속의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아니 그들의 삶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잘났다고 세상을 주름잡는 사람들에 묻혀서 어느 한 구석에 찌그러져서 살고 있다. 세상은 그들의 삶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존재하기는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 띄이지도 않고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다.

"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의 누추하고 너절하고 지린내만 나고 아무 것도 아닌 내가 아닌 그것.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지만 나는 나대로 행복한 상태.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평소의 나는 괴롭고 짜증하고 화가 나고 외로운데 아무도 내가 그렇다는 걸 알아주지 않았다. 힘들었다. 견딜 수 없었다. 소리치고 울고 신음소리를 내고 나뒹굴어도 나쁜 내 상황을 어쩌지를 못했다. 이제는 더 못 참겠다. 정말 죽고만 싶다. 지진, 홍수, 천둥 벼락, 무너지는 건물, 꺼지는 다리, 폭발, 침몰, 추락, 화재, 사고, 뭐든 좋으니 내 생명을. 삶을 없던 걸로 해줬으면, 지우개로 싹 지워줬으면 하고 간절히 소리치며 신음하며 몸부림치며 울며 울며 울며 울며 바라고 있을 때. " (p.347)

 

" - 이렇게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고 식구들 건강하고 하루하루 나 무사히 일  끝나고 하면 그게 고맙고 행복한 거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도 가만히 참고 좀 기다리다 보면 훨씬 나아져요. 세상은 늘 변하거든. 인생의 답은 해피엔딩이 아니지만 말이죠, 난, 난..." (p. 367)

 

<투명인간>을 읽는내내 우리 사회는 시끌벅적했다. 세월호 사건을 비롯하여 여기에서 파생된 많은 문제점, 그리고 정치권의 인사청문, 여당의 당대표 선출, 재보선 공천....

가난하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고자 했던 어느 가정의 3대에 걸친 이야기는 이런 혼탁한 세태에서 더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물질만능, 권위주의, 학벌주의 등으로 치닫다 보니 과정 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욕망으로 가득찬 사회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편법이 난무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얼핏 보면 만수네 가족사인 것 처럼 생각 할 수 있지만 우리의 현대사를 되짚어 보게 해 준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들이 존재한다. 존재는 하지만 존재 가치가 없는 듯이 살아가는 투명인간.

" 나는 알았다. 그  또한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그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되었는지를. " (p.11)

성석제는 그의 소설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 세계를 심도있게 다룬다. 그런데 그 바탕에는 우리사회의 민낯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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