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좋은 사람 마음산책 짧은 소설
정이현 지음, 백두리 그림 / 마음산책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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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작품을 처음 읽은 건 <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ㅣ 문학과지성사 ㅣ 2006 >이다. 도시적 삶의 이야기를 작가만의 날렵한 필치로 잘 표현한 작품으로 정이현을 대표하는 소설로 꼽힌다.

그러나 나는 < 달콤한 나의 도시 > 보다는 작가가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이 전부다" (작가의 글 중에서) 라고 말했던 < 너는 모른다 > 를 더 좋아한다.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을 읽다보면 첫 문장의 시간에 대한 묘사에서 부터 세밀한 표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나 조차도 모르는 나, 그런데, 복잡한 관계로 얽히고 설킨 '너'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나는 너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너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이야기를 남겨 주는 소설이 < 너는 모른다 >이다.

추리소설의 구성으로 쓰여진 < 너는 모른다/ 정이현 ㅣ 문학동네 ㅣ 2009 >는 단절된 가족간의 관계를 통해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치밀하게 파헤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에 깊은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 너는 모른다 >의 연장선 상에서 읽을만한 작품은 <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ㅣ 창비 ㅣ 2013 >이라고 생각된다.

 

     

성장기 3명의 주인공을 통해서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들의 성장통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먼훗날까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수 없는 어쩌면 평생 고통으로 점철되는 기억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열일곱 살 기억을 더듬어 볼 것이고, 1990년대를 살아 온 독자들이라면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 보게 된다.

정이현의 소설은 바로 이렇게 사회적 문제를 그만의 독특하고 까칠하고 감각적인 시각으로 풀어나간다.

이번에 정이현은 좀더 편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작품이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다.

 

" 본업을 대하는 냉정하고 엄숙한 태도에서 조금은 비켜나 자유로운 형식으로 자유롭게 썼다" (작가의 말 중에서)

그런 마음으로 쓴 책이 <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코 무디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어쩌면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어떤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열 한 편 들려준다. 작가만의 날렵한 시각으로 바라본 그 순간의 이야기를.

그런데, 열 한 편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단편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아주 짧은 이야기이다. 산문을 쓰던 써 내려간 글 같지만, 그 이야기 한 편 한 편은 읽으면서, 읽은 후에 마음이 아려오는 순간도 있고, 먹먹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순간들도 있다.

일상의 어떤 순간들이 과거의 연속이자 결과물이기도 하고, 그 순간은 미래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롯이 혼자인, 혼자가 되어 버린 그 순간의 이야기.

궁금한 마음으로 책 속의 열 한 편의 짧은 이야기를 단숨에 읽어 내려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몇 작품을 소개하면,

첫 번째 이야기인 '견디다' 대학 졸업식을 앞둔 여대생, 그녀에게 당면한 문제는 취직, 그러나 쉽지 않은 취업의 문턱. 가까스로 취직한  ○○교육은 교재를 팔기 위한 사기성 취직임을 깨닫게 되는데....

집안 사정도 그녀의 사정과 그리 다르지 않아, 어느날 아버지는 2천만원이란 돈 대신 늙은 개 한 마리를  데려온다. 빚쟁이들이 지나간 그 집에 남은 것은 늙은 개  한 마리  뿐이었기에. 그런데 늙은 개는 일주일이 되도록 변을 보지 않으니.... 묶여져 있는 상태로는 볼 일을 보지 않는 늙은 개.

그건 늙은 개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니...

그녀는 개를 가고 싶은 곳으로 보내려고 뒷산에 풀어주지만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알지 못한다. 마치 그녀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런 순간에  많이 부딪히게 된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야 할 순간. 내 자신이 가야할 곳을 찾아야 할 순간. 그러나 그 순간 속에서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던 그 순간을 지나 왔으리라.

요즘의 세태와 아주 잘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는 '비밀의 화원'이다. SNS의 범람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군상들의 순간. 이야기 속의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아내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스마트 폰에 빠져 사는 아내는 뭔가 숨기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는 택시 안에 스마트 폰을 놓고 내리게 되고.... 택시기사는 남편에게 연락을 하게 되어 아내의 스마트 폰 속의 세계를 들여다 보게 된다. 페이스북 속에 존재하는 아내는 낯선 이름인 김나나. 멋진 라이프 스타일의 20대 여성이다. 해외여행의 즐거움을, 맛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범상하지 않은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그 속에 담아 놓고 있다. 그 일상을 보는 사람들의 찬사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면서.

모든 것이 오픈된 세상.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그 누구나 부러워할 수 있는 존재로 탈바꿈시켜 자신인양 가짜인생, 쇼윈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시하기'는 초등학교 시절의 왕따는 여전히 사회인이 되어서도 왕따일까 하는 의문을 풀어주는 이야기이다. 옛 추억과 기억에 가물거리는 친구를 만나게 되는 동창회. 그런데, 항상 동창회 후유증이 뒤따르는 것이 동창회를 참석하고 오는 날 느끼게 되는 마음이다. 학창시절과 엇갈리게 되는 상황이 가져오는 이야기이다. 이런 순간을 경험한 독자들이라면 공감될 수 있는 씁쓸한 순간이 아닐까.

" 시티투어 버스'는 연인과의 이별 후의 이야기. 하필 헤어진 날이 12월 31일이라면, 그 날은 두고 두고 마음에 남지 않을까. 이별을 경험했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1월 1일 시티투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면, 그들은 각자의 헤어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우연은 필연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 1월 1일, 오전 10시.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시작이었다. " (p. 91)

' 그 여름의 끝'은 어느날 날아온 청첩장. 그 청첩장을 보면서 18 년 전의 어느 여름날을 돌이켜 본다. 스무 살 시절, pc통신을 통해서 만났던 청첩장의 주인공인 Y와 J를.

" 우리들이 처음 만난 것은 18년 전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나의 여름이, 장난처럼  끝났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여름이었다. " (p. 157)

작가는 이 책 속의 순간들은 " 그들이 잠시 혼자였던 바로 그 순간" (책 속의 글 중에서)이라고 말한다. 오롯이 혼자, 아무도 없이 뚝 떨어진 혼자. 사실상 그런 혼자의 순간은 아니다. 가족도 있고, 부모도 있고, 친구도 있고, 직장동료도 있고, 남편도 있고, 연인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만 혼자인 것처럼, 아니 사실 마음은 혼자이기에 외롭고, 막막하고, 서글프고, 힘들고 어찌 해야 할 지 모르는 그 순간들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런 순간들이 있기에 우리는 나를 되돌아 볼 수 있고, 나 자신에 대해서 좀더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군중 속에서도 혼자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그 순간들. 그러나 그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역시 정이현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날렵하게 사람들의 일상을 잘 들여다 보고, 그들이 외롭던 그 순간을 잘 포착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정이현이 프랑스의 작가 '알랭 드 보통'과 함께 쓴 <사랑의 기초- 연인들>을 읽고는 좀 실망스러웠던 순간이 있었다. 그건 이전에 읽었던 다른 나라의 남녀 작가가 이와같은 기획으로 쓴 작품들과 같은 구성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가져다 준 잘못된 생각이 이 작품을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라는 생각을 나중에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그 작품을 읽지 않았기에 확실한 평은 할 수가 없다.

 

이번에 <말하자면 좋은 사람>을 접했을 때도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다. 열 한 편의  짧은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있엇다.

그러나 200자 원고지 20~30 매의 분량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정이현의 필치가 빛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잠시 혼자였던 바로 그 순간'

작가는 그 순간을 '둘이 되기 위한 준비의 시간, 둘의 시작' 이기도 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순간, 순간 그 순간이 오더라도 너무 쓸쓸해 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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