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趣向)의 사전적 정의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을
말한다. 영어로는 taste, liking, preference라고 한다. 이건 취향에 관한 단순한
정의인데, 취향은 "세심한 시각으로 발견한 자신의 지향을 오랜 시간 깎고 다듬고 버려내어
내재됨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아챌 수 있는 어떤 아우라" (책 속의 글 중에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유행만을 따라 가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거기에는 기업이 의도하는 고도의 숨겨진 마케팅 전략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취향을 유도하고 조작하는 것도 한 몫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취향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티스트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에서는 좀더 선명한 취향과 맥락있는 심미안을 지녔을 것으로 생각되는 디자이너관련 분야의 대학교수, 그래픽 디자이너, 안경 디자이너,
슈즈 디자이너, 건축가, 포토 그래퍼 등 11명의 크리에이터들이 소장하고 있는 그들의 취향을 엿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물론 그들이 아끼는 물건들, 수집하는 물건들은 그들의 직업과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을 통해서 그들의 취향이 어떻게 그들의
직업적과 연관성이 갖고 있는가는 엿 볼 수 있다.
"좋은 취향은 (...) 한 사람의 삶 안에서 같은 방향으로 수렴되는 기준 같은 것. 그
기준이 누적된 경험을 통해 더욱 명료해지면서 믿음직한 또 다른 취향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어 놓는 것. (...) " (p.
47)
11명의 인터뷰이 중에서 첫 번째 인물은 한국 최초의 디자인 멀티 공간 aA 디자인 뮤지엄 내의 aA 디자인 갤러리 대표인 '강승민'이다.
그가 선보이는 펠리컨 체어. 1940년대 제작된 덴마크 디자이너 '핀 율'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초록색 바탕의 페리컨의 부리 모양을 연상시키는 의자 모양에 노란색 쿠션. 좀처럼 다른 가구들과 어울리지 힘든 독특하고 튀는 의자이다. 이
의자를 중심으로 그녀의 예술에 관한 행보를 들려주는 인터뷰이. 살아 숨쉬는 듯한 의자를 보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어떤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삶과 일상을 창조하는 그녀의 세계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새빨간 애플 랩탑, 이런 레드를 '페라리 레드' 라고 한다. '페라리' 하면 레드가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색인 레드,
화려하고 강렬한 페라리 스포츠카의 컬러에서 착안한 페라리 레드의 랩탑.

개성이 넘치는 랩탑의 주인인 '박영하' 뉴욕 카림라시드사 그래픽 디자이너인 그는 취향이란 " 자신만의 영역을 표시하고 드러내는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의 방향"(p. 46)이라 말한다.
그는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의 존재를 보여준다.
'모자'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나는 영국 여왕이 생각난다. 여왕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 모자. 1930년~1940년대의
여배우들이 즐겨 쓰던 모자. 스포츠 모자가 아닌 잘 차려 입은 정장의 마지막 코디는 분위기 있는 모자였던 시대가 있었다. 부의 상징이기도 하고,
위엄의 상징이기도 한 모자.

그러나 우리에게 모자(정장 모자)는 그리 낯익은 물건은 아니다. 슈즈 디자이너의 빈티지 모자. 빈티지숍에서 모자를 자신의 취향에 맞는
모자를 고르는 슈즈 디자이너 '한정민'

오브제 디자이너인 '한성재'는 "나무, 가죽, 황동이예요, 저한테 취향이라는 건 재질
혹은 질감과 연결된 문제이지요. (...) 좀더 정확히는 과거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옛날 물건들의 소재가 그 세 가지로
수렴되더라고요. " (p. 141)
그가 내민 물건은 '해밀턴 회중시계'이다.
이 책에 나온 11명의 아티스트 범주에 속한 사람들의 물건들을 보면서 그들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다. 강렬함을 느낄 수 있는 물건,
빈티지한 물건...
그 물건들은 그들의 일상과 직업, 가치관 등을 그대로 말해준다. 그래서 '그의 물건을
보면 그가 보인다' 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우리가 같은 목적으로 고른 물건들에도 고른 사람의 취향이 담겨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 본질은 없어지고
유행따라서 이리 저리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 자신의 취향은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이 가장 좋하는 물건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에 자신의 취향을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은 어떤 것일까?
"선천적인 영역이 있지만 취향이란 습득되는 것이고, 계발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
(p. 233)
자신의 취향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창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의 물건을 통해서 그들의 삶의 숨결과 예술 세계의 안목을 들여다 보는 재미를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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