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파산 - 2014년 제2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김의경 지음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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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 개인파산.

이런 단어는 불성실한 사람들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일까?

대학생들이 사회에 나오기도 전에 학자금 대출 등으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은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처럼 미처 청춘의 꿈을 피워 보기도 전에 신용불량, 개인파산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청춘파산>은 제2회 한국경제 청년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작가의 일부분 개인적인 체험이 담긴 소설이다.

작가는 어떤 부분이 자신의 체험인지를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게 되면 어떤 이유에서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인 백인주는 어머니로 인하여 사채 빚을 떠 안게 된다. 가정주부였던 엄마가 남대문 패션 상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예 패션 상가에서 사업을 시작한다. 주변 상인들에게 일본 보따리 장사의 상품을 대량 구입하여 소개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일인데, 사업을 하루가 다르게 번창한다.

그래서 남대문 상가에서 동대문 상가까지 여러 곳에 점포를 가지고 있게 되고, 나중에는 건물을 사서 임대료를 받는 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엄마가 받은 가계수표와 당좌수표가 부도가 나면서 가지고 있던 부동산은 경매로 넘어가고, 그도 여의치 않게 되자 결국에는 교도소까지 갔다 오게 된다. 그리고 또 다시 이 사업을 하다가 이번에는 사채업자에게 빚을 지면서 가족들의 삶은 블랙홀에 빠지게 된다.

빚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데, 엄마의 부탁으로 사채업자에게 딸인 백인주가 빚을 진 것으로 서류가 작성되면서 그녀는 모든 생업에서 사채업자의 협박과 추적, 위협을 당하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학교로 찾아오던 사채업자는 10여 년이 지난 시점까지 그녀를 괴롭힌다.

처음에는 정규직 직장에 다니게 되지만 빚쟁이의 끈질긴 추적에 이사를 가는 것과 동시에 직장을 옮겨 다녀야 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때 그때 찾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에 의존하여 살고 있다.

그녀가 한 아르바이트는 이 책에 소개되는 업종만도 수 십 가지가 된다. 고시원 총무, 레스트랑 서빙, 호텔 식당 설겆이, 백화점 판매점원, 내레이터 모델, 카페 홍보 알바, 방송국 방청 , 좌담회 아르바이트, 텝스 스태프, 사탕 포장....

이런 아르바이트에 대한 묘사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까지 세밀하게 쓰여져 있다. 하루에 3개의 아르바이트를 구했다가 3번 잘린 적도 있다.

" 나는 그냥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마지막 직장은 면책을 받고 얻은 가장 안정적인 일자리였지만 나는 그저 기계적으로 일할 뿐 일을 통해 행복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1년이 지나자 무언가 텅 빈 것처럼 가슴이 허전했다. 그 순간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다시 프리터가 되면 되지 않은가? " (p. 221)

백인주는 신용불량자에서 개인파산까지 되었지만 사채업자의 빚 독촉에 숨어 살다가 들키면 또다시 도망을 가야 하는 숨막히는 생활 속에서 아르바이트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 소설은 그녀가 상가수첩을 돌리는 일을 하는 10일 간의 기록 속에 지나간 날들에 대한 회상을 담아 놓았다.

봉고차를 타고 조를 편성하여 며칠 간에 걸쳐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면서 상가수첩을 빠진 집 없이 돌리는 상가수첩 아르바이트.

이 책의 목차는 그녀가 상가수첩을 돌리기 위해서 찾아가는 10곳의 동네이름으로 되어 있다.

사당동, 신림동, 청담동, 신당동, 장충동, 대림동, 노량진동, 평생학습관, 연희동, 신대방동, 개포동.

이 동네들은 인주가 상가수첩을 돌리는 열흘간의 일정의 동네들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빚쟁이를 피해서 숨어 살던 동네이기도 하니 그 동네를 돌면서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사랑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개인파산과 함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숨막히게 살아야 했던 십여 년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들에서의 그녀의 삶의 편린을 찾아 본다.  지금은 어딘가로 떠나 버린, 아닌 그들이 떠난 것이 아닌 그들로 부터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인주. 각 동네의 이름에 얽힌 유래도 이 소설을 읽다가 새삼 깨닫게 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특히 작가는 소설 속에 '승계집행문 부여 신청서', 법원 결정문', 채권압류 및 집행취소 신청서' 등의 법원에 제출하거나 법원에서 그녀에게 온 결정문 등을 서식 그대로 담아 놓아서 법에 대해서 무지한 독자들도 개인파산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소설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의 삶이 담겨 있는데, 그것도 빚 독촉에 시달리는 청춘의 이야기여서 더 가슴에 아프게 다가온다.

" 헛된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것이 싫어 도망치려 했다. 기다리며 너덜너덜해지는 것이 싫어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짐을 푸는 호성의 뒷모습을 보니 한 번 더 너덜너덜해지더라도 갈데까지 가 보자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빚쟁이에게  쫒기는 것처럼 사랑도 늘 쫓고 쫓기면 해 왔다. 도망치는 것으로 빚을 떨쳐 낼 수 없었던 것처럼 도망친다고 사랑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 (p.p. 362~363)

어느 책에선가 우리나라 대하소설을 주로 쓰는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 속에 자신의 이야기, 즉 자신의 경험을 아직은 담지 않는다는 글을 쓴 것을 보았다.

그건 자신의 이야기는 가장 잘 쓸 수 있는 소설의 이야기이기에 이런 글을 먼저 쓰면 나중에 소설을 쓰기가 그리 쉽지 않다고 하는 글이었다.

<청춘파산>은 주제나 소재,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그만큼 필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인데, 작가가 앞으로 다음 작을 쓰기에는 새로운 체험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해서 어느 정도의 걱정이 된다.

그만큼 <청춘파산>은 이 시대의 청춘들의 이야기 중에서도 꼭 되짚어 보아야 할 사회 문제를 담았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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