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철학자>는 2005년에 '이다미디어'에서 출간한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의 개정판이다.
나는 아직 '에릭 호퍼'가 누구인지, 어떤 책을 썼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번에 '이다미디어'에서 '에릭 호퍼'의 아포리즘 모음집인
<영혼의 연금술>,<인간의 조건>을 펴내면서 <길 위의 철학자>도 새롭게 양장본으로 펴냈기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저자에 대한 지식이 없기에 3권의 책 중에서 '에릭 호퍼'의 자서전에 해당하는 <길 위의 철학자>를 읽기로 했다.
에릭 호퍼의 저서들은 대부분이 아포리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아포리즘 (aphorism) 이란 신조, 원리, 진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형식으로 나타내는 짧은 글을 말하는데, 금언, 격언, 경구, 잠언 등을 일컫는 말인데, 이런 형식은 거대 담론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형식이다.
그래서 에릭 호퍼의 글들은 에피소드 하나 하나에 사유와 진리가 담겨 있다.

에릭 호퍼(1902~1983)는 미국의 브롱크스에서 독일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5살 때에 엄마와 함께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이 후유증으로 7살에는 시력과 어린 시절의 기억의 대부분을 잃게
된다. 어머니는 그 사고로 에릭 호퍼가 7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마저 그가 18살 되던 해에 죽게 된다. 그때에 그에게 남은 돈은
300달러였는데, 그 돈을 가지고 로스앤젤레스로 간다.
이때부터 에릭 호퍼의 떠돌이 생활을 시작된다. 그런데, 그에게는 기적적인 일도 일어나는데, 7살 때에 잃었던 시력이 15살에
회복된다.
한 번 시력을 잃었기에 언제 또다시 시력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는 독서광이 되는데,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근처의 도서관에서
수학, 화학, 물리학, 지리학 등의 대학교재로 독학을 하면서 사색에 잠기게 된다.
에릭 호퍼는 정규 학교 수업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쌓은 지식과 깊은 사색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하게 되는데, 그의 사상의
바탕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과 사회에 대한 현실 인식이 들어 있다.
그는 일을 하고 싶으면 일용직 노동자로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싶으면 광적으로 독서를 하면서 한 평생을 살게 된다. 그래서 에릭 호퍼에게
붙어 다니는 수식어는 '떠돌이 노동자', '떠돌이 방랑자', '길 위의 철학자' 이다.
그는 서른 살 즈음에 자살을 시도하는데 이를 계기로,
" 나는 자살을 감행하지는 않았지만 그 일요일에 노동자는 죽고 방랑자로 태어났다. "
(p. 60)고 말한다.
그는 생전에 10권의 책을 썼고, 사후에는 한 권의 자서전이 출간된다. 그의 저술을 좌절한 이들에 대한 심리학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길 위의 철학자>는 에릭 호퍼의 자서전이다. 그래서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삶과 인생관, 철학관이 담겨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떠돌이 철학자의 깨달음이 담겨 있다.
"대중운동의 맹신자는 죄의식, 실패,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죄절한 자로, 미래의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 동긱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묻어 버리게 된다. 자신의 무의미한 생에 의미를 부여해 줄 것으로 여겨지는 운동에 열광적으로 투신하는
것이다. 호퍼의 저술들은 그런 좌절한 이들에 관한 심리학이다. " (p. 12)
이 책 속에는 27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그의 다른 저서들 처럼 이 책에 담긴 에피소드는 한 편, 한 편을 아포리즘으로 읽어도
괜찮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삶의 이야기, 깨달음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방랑자 호퍼도 사랑을 했던 헬렌이
있었지만, 더 이상의 관계의 발전이 두려워서 슬며시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를 물으면, 그 때를 기억하지만, 헬렌과의 이별은 그에게는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기억이고, 결코 완전한 회복이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런 행복이 아닌, 그가 느꼈던 참된 행복은 그의 첫 번째 책인 <맹신자들>의 출간을 꼽는다.
그는 노동자, 방랑자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지성을 갖춘 미국의 사회철학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 그에게 그가 일하던 농장 주인이 쿤제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한다.
" 왜 자네만 한 지성인이 인생을 허비하는가? 지금은 모르겠지만 자넨 무일푼의 어찌할 수 없는 노인이 되고 말 걸세, 안정된 노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어떻게 그냥 살아갈 수 있는가?"
그는 <맹신자들>의 출간 이후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인물이기에 그가 노동자와 방랑자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허비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삶에서 충분히 행복을 느꼈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철학을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치 작은 통 속에서 한 줄기 햇빛을 가리지 않는 것이 그의 소원이라고 알렉산더 대왕에게 당당하게 말했던 디오게네스의 진정한 행복처럼,
에릭 호퍼는 노동을 하고 방랑을 하면서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거기에서 느낀 것들을 책으로 쓰는 것에서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이 책 속에서 불만없는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 나는 행복한
사람, 인생은 아름다워" 라고 덧붙인다.

이 책의 부록으로는 '에릭 호퍼에 대하여'란 글이 있는데, 이건 72살이 된 에릭 호퍼를 인터뷰한 '셰일러 k 존슨'의 글이다.
이 책을 통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