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지도 - 12개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제리 브로턴 지음, 이창신 옮김, 김기봉 해제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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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에 가면 지도의 방이 있다. 화려한 금빛 천정에 긴 복도를 따라 지도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그 지도들은 교황이 지배하던 성당들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로 지도를 제작할 당시의 역사와 투영법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진다. 그 이외에도 대부분의 유명 박물관에 가면 지도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전시하고 있다. 그런 지도를 보면 인간은 오래전부터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래전에 제작된 지도를 보면서 지도를 만들게 된 경위, 누구를 위해서 만들었는지, 그 지도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져 있었는가를 살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 지도를 만들려는 욕구는 인간의 기초적이고 지속적인 본능이다. " (p. 27)

<욕망하는 지도>는 그런 의문들을 풀어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756쪽에 이르는 꽤 두꺼운 책이다. 지리학이나 역사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이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을 책이다. 책을 보는 순간 부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야지!'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12개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쉬어 갈 수도 있고, 프롤로그를 읽은 후에 주제 중에 관심이 가는 부분만 골라서 먼저 읽고 재미가 있으면 모두 읽어도 좋은 책이다.

<욕망하는 지도>는 12개의 욕망코드 (과학, 교류, 신앙, 제국, 발견, 경제, 관용, 돈, 국가, 지정학, 평등, 정보)로 지도의 역사와 지도에 담긴 세계관을 풀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의 학술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지도 속에 담긴 철학적, 문화적 의미를 찾아 그 세상을 어떻게 지도에 옮겨 놓았는가를 살펴본다.

즉, " 지도란 실체가 아닌 개념"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12개의 욕망코드를 설명하기 위애서 이 책에는 12개의 지도가 소개된다. 그 지도들은 세계사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제작된 지도들이고, 이 12개의 지도 제작은 지도를 어떻게,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대담한 결단이 필요했던 지도들이다. 이런 지도 제작에는 새로운 세계관의 창조가 있었고, 지도 제작을 촉발하는 특정한 사상과 쟁점이 담겨 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12개의 지도는 완성 당시에는 혹독한 비난을 받은 경우도 있고, 세인들에게 무시당하기도 한 지도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지도들이 오늘날에 와서 주목을 받는 것은 어떻게든 세계안에 있는 공간을 지도에 옮겨 보려는 탐색 과정이  높게 평가되는 것이다.

지도의 기원을 찾자면 기원전 700년에 바빌로니아 점토판에서 찾을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이며 쐐기문자로 쓰여져 있다. 이 점토판에는 지구 표면 뿐만 아니라 바빌로니아 우주론까지 표현된 포괄적 도해와 바빌로니아 신화까지 들어 있다.

" 바빌로니아 세계지도는 지구를 먼 우주에서 바라보는 꿈이 실현되기 약 3000년 전에 마치 신이 지상의 창조물을 바라보듯 세계를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선을 보여준다. " (p.26)

그러나 바빌로니아 점토판은 지도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고, 이 책의 12 지도는 아래와 같다.

1 과학_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서기 150년경
2 교류_ 알이드리시, 서기 1154년
3 신앙_ [헤리퍼드 마파문디], 1300년경
4 제국_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1402년
5 발견_ 마르틴 발트제뮐러의 세계지도, 1507년
6 경계_ 디오구 히베이루의 세계지도, 1529년
7 관용_ 헤르하르뒤스 메르카토르의 세계지도, 1569년
8 돈_ 요안 블라외의 《대아틀라스》, 1662년
9 국가_ 카시니 가문의 프랑스 지도, 1793년
10 지정학_ 해퍼드 매킨더의 [역사의 지리적 중추], 1904년
11 평등_ 페터스 도법, 1973년
12 정보_ 구글어스, 2012년

 

 

기원전 150년 제작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에서 현재의 구글어스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중요한 국면에 등장한 세계지도이고, 이 지도들에는 그 지도 제작 당시의 세계관이 담겨 있고, 지도를 통해서 역사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첫 번째 지도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을 통해서 살펴본 지도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직접 제작한 지도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A.D. 150 년 천문학자인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리학입문 = 지리학>이란 논문을 통해 지구는 둥글다는 생각과 구형지구를 평면에 투영하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경위선을 소개한다.

이 책은 없어졌다가 13세기에 필경사에 의해서 쓰여진 사본이 발견되는데, 여기에 지도가 등장한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는 투영법은 소개했지만 그가 지도를 만들었다는 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리학>의 내용만으로도 지도제작에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 (...) <지리학>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8,000 여 곳의 위도와 경도를 싣고, 지리학에서 천문학의 역할을 설명하고, 지구와 여러 지역의 지도를 만드는데 필요한 수학을 상세히 안내하고, 서양 지리학 전통에 오랫동안 자리잡을 지리학의 정의를 규정했다. <지리학>은 한마디로 고대 세계가 고안한 지도 제작 도구 일체였다. " (p. 50)

<지리학>의 8권에는 오이쿠메네를 26개 지역지도로 나누는 법을 소개하는데, 유럽은 10개, 아프리카는 4개, 아시아는 12개로 나눈다.

고대 그리스의 지도제작이 우주 생성론과 기하학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헬레니즘 시대에는 좀더 과학적 방법을 접목한다.

위의 12개의 지도 중에 한국인의 눈에 들어오는 지도가 있다. 1402년에 조선에서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강리도>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란  통합된 땅 그리고 역대 국가와 도시를 표시한 지도란 뜻인데, 이 지도는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이며, 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럽을 표시한 지도이고, 조선을 표현한 최초의 지도이다.

이 지도는 15세기말 조선왕조의 불안함이 담겨 있다. 지도에 실린 지명은 이 시기에 조선이 실행한 몇 가지 민생과 행정 정책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의 전라도 해군기지인 수영(水營)이 조선의 남서쪽 해안에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지도가 제작될 당시에는 이 지도에 나타난 세계의 지도 보다 더 최신의 지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4세기초 원나라 지도에 등장한 세계지도를 그대로 반영하였다.

그 이유를 이 지도에서 12개 코드 중의 제국이란 코드로 찾아 본다.

 "오늘날 서양인의 눈에 <강리도>는 모순적이다. <강리도>는 언뜻 보기에 <과학의 진기함>에 실린 여러 지도나 <헤리퍼드 마파문드>에 견줄 만한 세계지도 같다. (...) 서로 다른 세계관의 지도를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일관되고 기능적이다. <강리도>는 세계 최강의 고대 제국에 지도제작으로 대응한 것이며, 조선이 자국의 자연 지형과 정치 지형을 동시에 인식해 만든 지도다, 중국과 조선은 경험을 활용해 지도를 만들었고, 그렇게 탄생한 지도는 단지 지리적 정확성이 전부가 아니었다. " (p. 218)

<강리도>를 보면서 우리가 느꼈던 부정확성은 그리 큰 문제가 안된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이 지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그당시의 중국과 조선의 관계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20세기 후반 미국항공우주국에서 지구를 최초로 우주에서 보라면 모습은 또 하나의 획기적인 지도의 역사 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지도인 구글어스 12번째 코드인 정보로 풀어본다. 지구 표면에서 1만 1000 km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지구, 구글은 방대한 지리정보를 인터넷에 무료로 풀어 놓았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원하기만 한다면 컴퓨터가 만든 가상공간 안에서 자기만의 가상 지도를 만들고 구글의 지리자료를 자신의 용도에 맞게 꾸밀 수 있다.

 

<욕망하는 지도>에 소개된 12개의 지도는 모두 세계를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을 극복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지도는 사람들이 정보를 공간적으로 처리하면서 자신을 더 넓은 세상과의 관계로 생각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제작되었음을 상기시켜 준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적어 본다.

" 한마디로 정확한 세계지도 따위는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도 없이는 절대 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하나의 지도로 세계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도 없다. " (p.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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