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군상을 따스하고 유머러스하게 조명하면서 한 편으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치밀하게 들여다 보는 그는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표적인 일본의 코로스오버 작가로 꼽힌다." ( 작가 소개 글
중에서)
<침묵의 거리에서>의 작가 '오쿠다 히데오'에 대한 소개글이다.
<공중그네>와 <인 더 풀>을 통해서 작가의 유머러스한 면을 보았다면, <꿈의 도시>에서는 일본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갔고, <스무살, 도쿄>에서는 일본의 스무살 청춘을 만날 수도 있었다. 내가 읽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결말을 가져다 준 것은 <올림픽의 몸값>이었다.
'오쿠다 히데오'가 쓴 몇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은 그는 소설을 누구나 쉽고 간결하게 쓴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때론 유머가 담겨
있어서 읽으면서 내내 웃음이 번지는 작품도 있지만, 때론 사회적 문제점을 파헤치기에 읽은 후에 한참 생각을 가다듬어야 하는 작품들이
있다.
<침묵의 거리에서>는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침묵의 거리에서 1>은 사건 발생을 중심으로 나구라의 추락사가
사고일까, 사건일까 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수사과정과 법적 처리에 관한 문제가 다루어진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전체적인
면에서 볼 때에 1권은 반복되는 내용들이 다소 담겨 있다.
<침묵의 거리에서 2>는 나구라의 사망에 간접적인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들이 풀려 나오고,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각자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인 학년초인 4월경에서부터 7월 1일 사건 발생 당일의 이야기가 한 축이 된다. 그리고 다른 축은
나구라를 둘러싼 인물들이 사건 후에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첫 장의 예측이 무엇이건, 마지막 장에 배신당한다."
라는 책 뒷장의 글이 말해주듯, 나구라의 추락사는 겉으로 나타난 상황이 전부가 아님을 말해 준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는 진실이 숨겨져 있음을 마지막 장에서 확인하게 된다.
나구라의 죽음을 둘러싼 집단 따돌림은 한 학생을 괴롭히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 준다.
흔히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학생들은 그 유형이 있다. 나구라가 바로 그런 유형에 속한다.
나구라는 부유한 가정의 외아들이다. 형과 동생이 있을 뻔했지만 모두 잃게 된다. 그래서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사준다. 나구라는 데니스부에서 운동은 못하지만 가장 비싼 라켓과 운동복을 가지고 있다. 다른 학생들 보다 4~5 배 정도의 용돈을
받기에 테니스부에 있는 학생들에게 비싼 음료수를 항상 사줄 수 있다. 처음에는 사주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당연히 나구라가 음료수를 사 오도록
협박을 하게 된다.
나구라에게 왕따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6월에 간 캠핑에서 학교짱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데, 그를 구해주러 온 에이스케와
겐타에게 누명을 씌우고, 학교의 전통으로 내려오는 학생들만의 야간 운동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나구라는 운동부로 부터, 그리고 2학년 전체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나구라의 행동이다. 그는 학교짱인 이노우에에게 물건을 빼앗기고, 시비를 걸어서 물건을 빼앗아가고 매번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그를 쫄래 쫄래 따라 다니면서 참견을 하는 눈치 없는 짓을 한다.
이노우에가 레슬링이나 격투기를 가장하여 폭행을 하고, 기절놀이를 시키고, 그것을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를 따라 다닌다. 그의
행동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보다 힘이 약한 학생이나 여학생들에게 똑같은 행동이나 폭행을 한다는 것이 다른 왕따들과 다른 점이다.
나구라의 죽음을 계기로 작은 도시에 불어오는 후폭풍.
나구라의 엄마와 삼촌이 학교에 요구하는 조건들, 2학년생들에게 이 사건에 대한 글짓기를 시키고 그 내용을 읽겠다는 요구조건, 에이스케를
비롯한 상해죄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테니스 대회 불참할 것을 요구하는 것, 4명의 학생들이 매월 1일 나구라의 제에 참석하여 분향할 것 등.
나구라의 유족들은 나구라가 죽은 것에 대한 진실을 밝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나구라가 영영 잊혀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다.
또한 이 사건을 맡았던 검사나 경찰을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이 사건을 밝힐 수 있는 것은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기자는 사건 3주후에 사건에 관한 기사를 신문에 싣지만 그 역시 이 사건의 유족,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부모, 학교측 등의 입장차에
부딪히게 된다.
이렇게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입장차는 각기 다르다. 특히 유족과 가해자로 지목된 부모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아들이 가해자라는 생각에 힘들었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정말 자신의 아들이 가해자일까 하는 생각에 분노 마저 치밀게
된다.
그렇다면,
나구라는 왜 운동부 지붕에서 떨어졌을까?
나구라의 몸과 손에 붙어 있던 나뭇잎은 무엇을 의미할까?
학생들 사이에서 운동부 지붕에서 바로 곁에 있는 은행나무로 떨어져서 매달려 내려오는 행동은 담력 테스트이기고 했으니, 나구라가 자신의
담력을 테스트 해 본 것은 아닐까?
아니며, 누군가가 나구라에게 은행나무로 뛰어내리기를 협박한 것은 아닐까?
가해자라고 지목된 4명의 학생들은 정말 가해자일까?
3학년 일진의 비호를 받는 이노우에는 평소에도 나구라를 괴롭혔는데, 이 사건과는 무관한 것일까?
이런 모든 의문점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침묵 속에 잠겨 있는 학생들의 입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으리라....
아무도 말하려고 하지 않는 진실, 가려진 진실 속에 그 답이 있다.
<침묵의 거리에서1>의 리뷰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시게마츠 기요시'의 <십자가>에서도 왕따 중학생의 자살이
다루어진다. 그의 유서에 적힌 절친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주인공은 유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절친이었다는데, 왜 아들을 죽게 내버려 두었느냐'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그래서 주인공은 후지슌의 제사 때마다 그의 집에 가게 된다.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후지슌의제상에 참여하는 것은
그에게 괴로움으로 자리잡게 된다. 20년후에야 그의 아들의 말을 통해서 치유를 받게 되는 꽤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침묵의 거리에서>도 이런 생각이 든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상처로 남는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한 흔적이 남겨진
죽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인지도 확인이 되지 않은 자식의 친구들에게 행하는 유족의 행동은 지나친 점이 있다. 갓 13~14살 정도의 중학생들에게 큰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는 행동이다.
이들에게 나구라의 죽음이 자신의 행동에서 일어났건, 아니건간에 그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것인데, 매달 제사 때마다 와서 분향을
하라는 요구...
나구라의 죽음은 누구의 잘못일까?
나구라의 죽음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각자의 입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우리의 모습이자,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때문에 불안에 떨고, 분노하고, 상대방에게 울분을 푸는 행동.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그 속에서 힘겨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감있게 잘 써내려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