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에 의해서 영화화된 <설국열차>는 누적 관객수 약 930만 명을 기록하면서 흥행에 성공하였다. 그 영화의 원작인
만화를 읽게 되었다.
큰 줄거리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읽게 된 <설국열차>는 책 속에 아무런 소개글이 없기에 읽는 도중에 약간의 당혹감을 가질 수
있었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 탈주자, 2. 선발대, 3. 횡단.
그런데, 1부와 2부, 3부의 화풍이 다르다. 탈주자가 날카로운 선으로 그려졌다면 선발대와 횡단은 그림은 목탄이나 파스텔로 그린듯 전체적인
그림의 분위기가 선이 아닌 손으로 문질른 듯한 느낌을 준다.
원래 2부와 3부는 컬러로 그려졌지만 이 책에서는 흑백으로 처리되었다.

(설국열차 1, 설국열차 2,3 - 2004년판)
물론, 내용도 1부에서는 설국열차가, 그리고 2부에는 설국열차의 선발대인 쇄빙열차가 운행된다. 그러니 그 열차에 타고 있는 주인공들이
다르지만 두 열차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장면들은 지구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일들이 자행된다.
우리에게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통해서 유명해진 만화이지만, 실은 이 작품은 1984년에 1권이 출간된다.
원작인 <설국열차>는 1970년대부터 자그 로브(시나리오)와 알렉시스(그림)으로 구상이 되었지만 1977년에 알렉시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장마르크 로셰트가 뒤를 이어 이 작품을 1984년에 출간한다.
그러니까 처음 출간된 <설국열차>는 자그 로브 (시나리오), 장마르크 로셰트 (그림)으로 완성되었다고 보면 된다. 그후 장마르크
로셰트가 1990년에 죽게되자 자그로브는 뱅자맹 르그랑 (그림)과 함께 1999년에 <설국열차2>를, 2000년에는
<설국열차3>를 내놓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에 <설국열차1>, <설국열차2,3>이 각각 출간된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계기로 이 두 권의 책이 합본되어 < 설국열차>로 재발행된다.
이런 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읽는 도중에 갑자기 바뀌는 화풍때문에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1부와 2부,3부의 그림의 비교)
또한 나는 영화 <설국열차>를 보지 않았기에 이 책의 내용인 설국열차와 쇄빙열차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한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면,
<설국열차>의 시대적 배경은 동서 냉전시대이다. " 어느날 오후, 갑자기 눈이
내렸다. 7월이었는데 얼음장 같은 바람이 모든 것을 휩쓸어갔다. 생명도. 문명도 몇 시간 만에 " ( 책
속에서)
군비경쟁 속에서 기후무기가 등장하면서 지구는 갑자기 영하 87도의 동토의 땅으로 변한다. 이 무시무시한 지구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추운 겨울에도 달릴 수 있도록 고안된 초호화 유람열차.
이 설국열차는 1001량을 달고 지구를 끝없이 달린다. 멈추면 안된다. 계속 달려야만 살 수 있다.
사람들은 재앙이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 멈추지 않고 달리는 열차에 올라탔다.

" (...) 1001량의 설국열차, 문명의 마지막 보루 (...) 열차는 이
세상을, 마지막 생존자들을 품에 안고 달린다. 백색 죽음에서 영원한 여행을 선고받은 자들을 " (p.
19)
열차 밖은 모든 생명이 사라졌다. 황폐한 얼음 천지의 세상.
1001량의 설국열차에는 황금칸, 식당칸, 식물칸, 육류칸 등. 이 열차 속에는 그들이 먹을 것을 공급해 주는 칸에서부터 부유하고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타고 있는 황금칸에 이르기까지 등급이 나뉘어져 있다.

열차 속에 존재하는 계급, 관리, 군인, 그리고 사제에 이르기까지 타고 있는 열차는 같으나, 그들이 가고자 하는 종착역은 같으나 열차칸에는
등급이 매겨져 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탄 꼬리칸. 그곳은 지옥칸이다.
" 지옥이 존재한다면 꼬리칸이 바로 지옥이야 ! 사방에 시체가 나뒹글고 시체 섞는 냄새가
진동하지. 아직 굶어 죽지 않는 자들은 시체라도 먹어야 해 ! " (p. 81)
꼬리칸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다음 칸으로 이동할 수가 없다. 그런 꼬리칸을 탈주한 프롤로프와 그를 구하려는 제3열차 원조기구 소속의 아들린
벨로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설국열차를 파헤치는 것이 1부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기 마련이겠지만 생명을 건 탈출 열차인 설국열차에서 벌어지는 만행은 더욱 치열하다.
설국열차의 속도가 느려지자 그들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꼬리칸을 떼어버리고 운행을 하자는 것....
" 어김없이 떠나야 할 여행. 모두의 목적지는 한 곳,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미
도착했으니 그 종착역의 이름은 영원이로다. " (p. 105)
2부에서는 이런 설국열차와 같은 열차가 또 하나 있다. 최첨단 기술과 초호화 설비를 갖춘 설국열차. 이 열차에서 첫 번째 정차훈련이
있었던 15년 후의 이야기가 픽그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 그래. 첫 번째 정차 훈련... 단순한 훈련이 아니었어. 제1설국열차를 포획했던거야.
내가 거기 있었다네. 멈춰선 두 열차 사이에서 기중기 운반 작업을 몇 시간에 걸쳐 진행했지. 그 당시의 선발대원들은 거의 다 그곳에 있었어 !
" (p. 179)

설국열차나 쇄빙열차나 모두 지금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권력을 휘두르고, 부유한 계층에 의해서
세상이 돌아간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는 비천한 파리 목숨이나 마찬가지인 세상...
" 하지만 쇄빙열차에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 (p.
119)
그러나 그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그런 구조적 모순들을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이곳에서 그들은 열차의
비밀을 찾아내고자 한다.
설국열차는 대서양 너머 들려오는 작은 음악 소리를 듣게 되고 그곳에는 희망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곳을 찾아간다.
그들이 들은 포레의 레퀴엠,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그들이 과연 태양의 빛을 어슴프레하게나마 보기는 본 것일까?
가장 마지막 페이지의 '역경(易經)'의 '지천태'의 괘를 설명한 글을 보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 평화... 세 번째 자리의 9가 의미하는 바는 이러하니,
언덕과 이어지지 않는 평원은 없고 돌아옴이 없는 나아감은 없으며
언제나 경계하며 사는 자는 책망 받을 일이 없으니
이 같은 진리를 유감스러워하지 말지어다.
아직 네게 있는 복을 마음껏 누릴지어다. " (p.
250)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도 이렇게 아비규환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주에는 각 한 쌍의 생명체만이 탈 수 있었으니,
인간의 군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오버랩 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에서도 우주범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떠난 마지막 지구인들,
그들에게서도 설국열차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이건, 어느 때인건 간에 이런 반목과 갈등과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설국열차>가 동서냉전시대를 겨냥한 작품임을 읽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 돌아라, 설국열차여. 돌아라, 쉬지말고. 돌아라, 회전목마처럼, 얼어붙은 우리의
지구에서 " (p. 182)
이 책은 많은 은유가 담겨 있는 책이기에 만화라고 가볍게 읽기 보다는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