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이야기의 천재라고 불리는 일본의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공중그네>를 통해서이다. <공중그네>는 정신과 병원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엉뚱하고 기발한 이야기를 시니컬한 유머감각으로 풀어낸 소설이었다.
권위의식을 벗어던진 독특한 캐릭터의 이라부라는 의사와 엽기스러운 간호사 마유미가 펼치는 이야기가 코믹하게 그려졌다. '이라부' 2탄이 <인
더 풀>인데, 이 책은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오쿠다 히데오'하면 떠오르는 이 책들 보다는 <올림픽의
몸값>을 더 인상깊게 읽었다. <올림픽의 몸값>은 1권과 2권 각각 47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긴 장편이다. 시대적 배경이
1964년 10월 10일에 개최된 '도쿄 올림픽'이다. 이미 역사 속으로 흘러간 도쿄 올림픽 직전의 이야기를 꽤나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서 도쿄 올림픽에 관한
문헌, 영상, 관련자 인터뷰 등을 조사하였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읽으면 당시의 사회상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또한 이 소설은 '오쿠다 히데오'가 쓴 첫 번째 서스펜스 작품인데, 이 소설을
통해 올림픽을 둘러싼 당시의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소설에서 새로운 기법을 선보이는데, 그것은 소설의 주요 인물인 세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시점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이라는 세계적 행사를 바라보는 소설 속의 세사람의 시각을 두 가지 시점에서 쓴다는 것이 특이하다.
☆ 한가지 사건: 1964년 '도쿄
올림픽'
♡ 두가지 시제: 시마자키
구니오(과거시점)
스가 다다시 와 마사오
형사(현재시점)
♧세가지 시각 : 구니오, 스가 다다시, 마사오
만약, '오쿠다 히데오'의 단편이나 비교적 짧은
장편소설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올림픽의 몸값>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번에 '오쿠다 히데오'는 <침묵의
거리에서>를 출간하였다.
일본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지메 현상, 즉 집단
따돌림이 이 소설의 이야기의 중심축이 된다. 국내외 소설 중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 중에 많이 등장하는 집단 따돌림, 집단 괴롭힘. 이런
이야기는 읽으면서도, 다 읽고 난 후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이다.
비단 일본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잊을만하면 일어나는 청소년 사건이기도 하다.
1~2년 전에 일어난 대구 왕따 중학생 자살 사건을 보면, 친구처럼 함께 어울리는 아이들이 한 친구를 폭행하고 고문하고, 게임 아이템을 높이기
위해서 협박까지 하자 그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학생들이 바로 <침묵의 거리>에 나오는 학생들처럼 중학교 2학년,
14살 아이였다.
이 책의 뒷 표지글에는
" 첫 장의 예측이 무엇이건, 마지막 장에 배신당한다."
라는 글이 씌여있다. 그러나 1권을 다 읽을 때까지는 독자들의 예측이 그리 빗나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소설은
결코 어떤 예측을 하기 보다는 처음의 생각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의 이야기로 1권을 마친다.
그런 의미에서는 볼 때에, 이 소설의 1권에서는 추리소설의 묘미라고 할 수 있는
반전의 반전은 그리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에 중학생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왕따 문제, 그로 인하여 일어나는 사건을 다양한 시점에서
풀어나가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여름날 오후 7시경, 학교에는 기말고사를 출제하던 선생님들이 있었다. 아지마 선생님은 학교를 둘러 보던 중에 운동부실
지붕 또는 근처의 은행나무에서 떨어져 도랑에 머리를 박고 죽은 학생을 발견하게 된다. 운동부실 지붕 위에는 생긴지 얼마 안 되는 5쌍의 운동화
발자국이 찍혀 있다.
" 사건일까, 사고일까"
이 일을 수사하기 위한 경찰, 취재하기 위한 기자 그리고 검사가 다각적인 분석을
하게 된다.
죽은 아이는 중학교 2학년생인데, 그 지역에서 포목점을 하는 유복한 가정의
외동아들인데, 몸집이 왜소하고, 운동을 잘 하지 못하고, 유약하기 때문에 같은 테니스부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것을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통해서
알게 된다. 그리고 죽은 학생인 나구라 유이치의 등에 누군가에게 꼬집힌 흔적들에 의해서 괴롭힘을 꾸준히 당해 왔음을 알게 된다.
나구라와 함께 친하게 지내던 4명의 학생이 상해죄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고, 그
중의 2명의 만13살이기에 아동상담소로, 2명은 만 14살이기에 체포된다.
여기에서 잠깐 이와같이 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한 중학생에 관련된 소설
중에는 만 14살에 큰 의미를 둔 소설들이 여럿 있다.
일본 작가의 소설 중에서 중학생과 관련된 사건에 관한 소설을
살펴보면,
여류작가인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은 주인공인 유코 선생님의 4살
된 딸이 수영장에 추락하여 죽게 되는데, 그 사건의 가해자는 유코 선생님의 두 제자이다. 그들은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만 13살 중학생이라는
이유로 법의 심판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유코 선생 자신이 제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같은 상황을 대하는 각각의
인물의 심리 묘사가 세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게마츠 기요시'의 <십자가>는 왕따를 당하던 중학생의 자살을
다룬 작품인데, 중학교 2학년생인 후지슌은 유서에서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에게 글을 남긴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했던 여학생과 그가 절친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의 이름까지 적어
놓는다. 그러나, 이 두 학생은 자신들을 후지슌이 절친으로 생각했다는 것에 큰 부담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절친이었는데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네"
" 말 그대로 눈을 뻔히 뜨고 죽게
내버려뒀군" " (...) 내 말이 틀렸어? 너는 친구를 죽게 내버려 둔거야"
"절친인데... 왜 배신했어?" 라는
말을 들으면서 마음의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흔히 이런 이야기들이 자살한 왕따 소년에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이 소설은 그의 죽음 후에
남아 있어야 했던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를 약 20년 후까지 그려낸다.
<고백>의 가해자, 그리고 <십자가>의 주인공도 모두 13살,
14살이다.
이 나이가 가지는 의미가 <침묵의 거리에서>는 크게 작용을 한다. 갓 만 14살
생일을 며칠 지났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학생과 더 많이 나구라를 괴롭혔지만 만 13살이기에 체포되지 않고 아동 상담소로 가는 학생. 그들의 운명은
같은 사건에 연루되었어도 명확하게 명암이 엇갈리게 된다.
그러나 1부에서는 이들의 상해죄는 인정되지만, 나구라의 죽음과 연관지을 수 없기에 살인죄에
해당되지는 않고, 모두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바로 이 소설의
나구라는 그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지역에서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이기에 용돈도 많이 받고,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값비싼 물건들이고, 몸집은 작고, 운동 신경을 발달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용기가 없는 아이.
처음에는 작은 괴롭힘이었을테고, 거기에 익숙해지자, 점점 그 강도는 강해졌을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의 주변에는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보복이
두려워서 그냥 보고만 있다. 아니면 재미삼아 같이 따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지속적인 생활지도가 있어야
하고, 학생 개개인을 주의깊게 파악하여야 한다.
또한 가정에서도 자녀들의 행동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면 대화를 통해 자녀의 속 마음을 알아내야 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작품마다 그 특색이 많이 나타난다. 유머 감각이
두드러진 작품들도 있지만, 일본의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들도 있다.
그런데, <올림픽의 몸값>에서는 반전과 스릴이 읽는 재미를 주었는데,
<침묵의 거리에서>는 주제는 무겁지만 세밀한 구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구성이어서 처음에 읽기 시작할 때에 가졌던
생각들에서 그리 큰 변화를 엿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아직 2부가 남아 있으니, 기대를 해본다.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앞에서 예를 든 <고백>과
<십자가>를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