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잔해를 줍다>는 2012년 9월 시사 주간지 타임에 오바마 대통령의 특집 기사가 실렸는데, 그때에 대통령의 책상 위에
이 책이 놓여 있었기에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이미 2011년에 '전미 도서상 (National Book Award)을 받은 작품인이며, 작가인 '제스민 워드'는
1977년생 흑인 여성작가로 이 책은 그녀가 쓴 2번째 장편소설이다.
특히, 이 책은 2005년 허리케인 카드리나가 닥쳐 왔을 때에 작가와 그녀의 가족들이 겪은 기억을 모티브로 썼다. 그당시에 제스민 워드는
허리케인을 피하기 위해서 일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피신하려다가 실패하게 되고, 인근 백인의 집에 머물기를 부탁했지만 거절을 당한다. 거기에서
'인간적인 비극'을 겪게 되었고, 허리케인이 지나간 후의 참담한 모습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후 2년 반 만에 카트리나에 관한 이야기와 변두리에 살고 있는 빈민 흑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바람의 잔해를 줍다>이다.
이 소설은 허리케인 카르리나가 다가오기 전의 10일간의 이야기와 폭풍이 불어 닥쳐서 허리케인과의 사투를 벌이는 당일의 이야기, 그리고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다음 날의 이야기로 12일간의 이야기가 씌여져 있다.
작가는 미시시피 출신인데, 이 소설의 배경도 미시시피 연안의 가상 마을인 부아 소바주이다. 허리케인이 자주 지나가는 이곳에 아빠와 4명의
자녀가 살고 있는 흑인 가정이 있다.
엄마는 막내 아들인 주니어를 낳자마자 죽었고, 그래서인지 아빠는 항상 술기운에 살아 가니, 이 가정은 가난에 찌들어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터전을 가꾸었던 곳이지만 그들도 역시 세상을 떠났다.
첫째 오빠인 랜들은 항상 농구공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농구광이고, 둘째 오빠인 스키타는 투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막내인 주니어는 아직
어려서 형과 누나에게 어리광만 부린다.
이 소설은 15살 소녀 에쉬가 화자이다. 소녀가 이 소설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그 축에는 스키타 오빠가
기르는 투견 차이나에 대한 이야기와 에쉬의 임신 이야기가 두 축을 이룬다.
투견을 낳게 하기 위해서 차이나를 교미시키는 이야기와 차이나의 새끼 낳기에 관한 이야기는 리얼하게 쓰여져 있다. 가족들 보다도 차이나에게
거는 스키타의 개를 향한 사랑. 그래서 태어나는 강아지를 손수 받아가면서 창고에서 밤을 새우는 스키타이지만 자신의 열정을 위해서는 새끼를 낳은지
며칠 안 되는 차이나를 투견 시합에 내보낸다.
격렬한 시합으로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는 차이나를 돌보는 것도 지극정성이다. 그러나, 이런 스키타의 행동은 어쩌면 개를 사랑하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아무런 내세울 것도 없는 스키타에게는 차이나가 근방에서 가장 싸움을 잘 하는 투견이라는 것이 그의 자존심이기도 하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새끼를 낳은 개가 갖게 되는 모성 본능까지도 외면한 채, 투견 시합에 내모는 이야기에서는 차라리 이 책을 건너 뛰어 읽어야 할 정도로
불편한 마음이 든다.
스키타의 이런 행동은 차이나를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기에 가능한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 허리케인 속에서 차이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이다가 차이나가 물에 떠내려가자 그를 찾아 헤매는 행동에서 확신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화자인 에쉬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차이나의 분만과정에서, 또는 일상 속에서 자주 떠올린다. 그만큼 엄마의 죽음은 에쉬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고, 그녀에게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에쉬는 12살 때부터 남자들과 관계를 갖게 된다. 누구라도 그녀를 원한다면 자신을 갖게 해준다. 성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그것에 대한
어떤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허리케인이 오기 며칠 전, 그녀는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5살 어린 나이에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사실에 그 해결 방법에 고심을 한다. 동네 오빠인 매니는 뱃 속의 아이의 아빠이지만 그에게 에쉬가 생각끝에 그
사실을 알리지만 돌아온 말은 황당하기만 하다. 이미 그는 새로운 여자 친구에 빠져 있으니...
에쉬의 마음은 허리케인이 서서히 엄습해 오는 것처럼 앞의 일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컴컴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가난한 살림에 허리케인에
대비할 준비 조차 제대로 못한 이들에게 카트리나는 무섭게 비바람을 치면서 다가온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 예상치 못했던 크고 작은 사건, 그것과 맞물려서 허리케인의 급습은 이들 가족에게 가족의 끈끈한 사랑을 찾아준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무엇인가도 알게 해 준다. 흥미로운 것은 가난하고 지적 수준도 갖추지 못한 에쉬가 읽는 책이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에쉬가 읽고 있는 이 책 속의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상황들과 잘 매치가 된다.
에쉬가 읽고 있는 장면은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신화이야기인데, 그것이 에쉬가 처한 상황과 거기에서 어떤 돌파구가 있을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초중반까지는 비루함이 잔뜩 묻어나는 에쉬 가족의 이야기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어린 에쉬의 임신이나 새끼
낳은 개의 투견 시합 등은 차라리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첫째 날' , '둘째 날'.... 이렇게 '열두째 날'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접어 들어 카트리나와 사투를
벌이면서 차이나와 그의 새끼까지 보듬고 이 상황을 헤쳐나가려는 가족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인다. 결국에 차이나와 새끼들은 물에 휩쓸려
가지만....
작가의 실제 경험이 모티브가 되었기에 묘사가 역동적이면서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가족간의 사랑과 삶에 대한 의지,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에 대한 빛이 엿 보이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