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 소녀의 사랑의 진실 찾기 수업이라는 주제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유학온 이레네에게 찾아 온 사랑의 아픔으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하여 영국의 기숙학교에
보내진 이레네는 이 학교의 킹카인 리암과 데이트를 한다.
리암에게 사랑을 느낀 이레네는 꽃 사진 선물 문자를 받게 된다. '나의 특별한 공주님을 위한 꽃다발'이란 짧은 글과 함께 보내진 장미.
이레네가 좋아하는 꽃은 해바라기지만, 장미꽃이면 어떻겠는가.
기쁨도 한껏 젖어 있던 이레네는 문자의 말미에 번호의 나열을 보게 된다. 무려 10개의 휴대전화 번호.
리암은 이레네를 비롯하여 10명의 여학생에게 이 문자를 보냈던 것이니....
여기에서 끝났으면 사랑의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날 수업시간에 이레네를 향해서 던져지는 종이쪽지들. 그건 이레네가
리암을 생각하면서 써 두었던 첫 사랑 고백의 시를 담은 편지였는데, 우연히 리암의 손에 들어가서 그의 친구들에게 모두 공개된 것이다.
창피함, 분노 등등의 감정으로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로 덤벅이 된 이레네는 교실을 뛰쳐나가서 학교 밖의 절벽까지 달려간다. 그의 뒤를
쫓아 온 휴그스 선생님은 이레네에게 특별한 숙제를 내준다.
1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매주 수요일에 만나서 그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다. '사랑의 문법' 수업이란 특별한
프로젝트이다.
휴그스 선생님은 매주 한 권의 소설을 정해주는데, 그 소설에서 이레네가 찾아야 하는 것은 '사랑'이다.
이레네의 첫 사랑은 아주 아픈 기억만을 남겼는데, 소녀는 책 속에서 사랑의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시대를 초월하여 명작으로 꼽히는 7권의 소설. 그 소설 속에 담긴 사랑은 다채롭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12살 하지메와 시마모토의 첫 사랑이야기이다. 이레네는 " 무라카미를 통해서 첫사랑의 중요성과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 (p.p. 40~41)다.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달리기를 하면서 달리기 대회를 준비한다. 11살 때 만난 친구인 마르셀로가 이레네의 달리기 트레이너를 자처하면서
그와의 우정을, 그리고 사랑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마르셀로는 앞서 말한 토착식물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어쩌다 주의깊게 관찰해 보면 그것만의 독특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p. 106)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시대에 뒤처진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레네는 이 작품을 통해서 " 우리가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들에
대해서 이야기" (p. 75)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 지금 사랑하고 있는 상대방보다 내가 열등하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그 사람의
세상에는 어울리지 못할 거라는 염려,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빚어지는 오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힘 말입니다. 우리가 현재의 순간 순간에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고, 일시적이고 덧없는 삶의 방식이 우리 주위에 만연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위대한 사랑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니 유효해야 합니다! " (p. 75)
이레네는 휴그스 선생님이 내주는 과제물인 소설을 읽기 위해서 그 책과 관련된 서적을 먼저 읽을 정도로 독서를 깊이있게 하는 문학소녀이다.
그래서 이레네가 작품을 이해하는 수준은 보통 학생 이상의 독서수준을 갖추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는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남자만을 바라보고 살다간 여인의 이야기로 비운의 사랑, 일방적인 사랑, 지독한 짝사랑 이야기이다.
휴그스 선생님은 자신이 정해준 소설을 읽고 만나는 날이면 그 소설과 연관된 어떤 장소나 음악, 행동을 통해서 그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준다.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에 대한 토론을 하는 날에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제 2번>을 틀어 놓고 잠시 사무실을
비우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하고 <안나 카레니나>를 읽은 후에는 기차 여행을 같이 한다. 그리고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관한 소설을 읽은 후에는 배를 타고 수업을 하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을 읽고 이레네는
과제물의 제목을 '사랑의 두 얼굴'이라 정한다. 브론스키와 안나의 사랑, 그리고 키티와 레빈의 사랑.
브론스키와 안나의 사랑이 절도를 잃은 정열적인 사랑, 방해되는 모든 걸 파괴해 버리는 사랑, 결과에 개의치 않는 사랑이라면, 키티와 레빈의
사랑은 결과에 개의치 않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비극적인 사랑을.
그리고 샬럿 브론테의 <제인에어>는 지금까지
읽었던 사랑에 관련된 소설들이 모두 자살이나 비극적인 결말로 끝났다면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 주는 사랑이야기이다.
물론, 제인의 사랑이 처음부터 행복했던 것은 아니고, 유부남을 사랑하고 그의 부인의 존재로 인하여 헤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로체스터에게 돌아오게 되는 해피엔딩의 소설이다.
지금까지 이레네는 사랑은 비극적인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 소설을 통해 행복한 사랑의 결말을 접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수업인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고 휴그스 선생님과 배를 타고 나갔다가 난파될 뻔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휴그스 선생님이 이레네에게 사랑의 진실을 찾아 주려는 소설읽기 수업을 하게 된 이유는 그에게도 아내를 잃은 아픈 사랑의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이처럼 특별한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 계시다면 학생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 책 속에 나오는 7편의 소설, 그런데, 그중의 4편 밖에 읽지를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데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읽었던
소설에 관한 내용은 관련지어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소설의 경우에는 소설 속의 내용에 몰입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가는
그런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해할 수 있게 소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소개해 준다.
또한, 이 책의 주인공인 이레네가 열여섯 살이지만 우리나라의 여학생과는 좀 다른 학교 생활을 함을 느낄 수 있다. 학교 공부만을 하는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과는 다른 학교 생활과 개방적인 이성교제가 우리와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이기에 문화적 차이도 느낄 수가 있다.
첫 사랑의 아픔으로 사랑을 아프고 슬픈 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 성장기 소녀에게 문학작품 속의 사랑이야기는 많은 사랑의 유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그런 소설을 깊이있게 읽을 수 있는 독서력이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그저 소설의 줄거리만을 대충 읽고 넘어가는 것이
아닌, 소설 속에 담긴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청소년들도 그런 독서를 할 수 있다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곁들여서 하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