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랭 드 보통'의 이름 앞에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작가, 한국 독자를 좋아하는 작가를 들라면 '알랭 드 보통'과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읽게 된다.

'알랭 드 보통' 앞에 붙는 수식어 중에는 '철학적 사유', '철학적 접근'도 있다. 그는 일상적인 주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작품을 쓴다.

그의 작품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내가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작품 중에서 2~3번째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을 이렇게 어렵게 풀어나간 소설책이 있을까?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브리티시 항공 보잉기 안에서 1인칭 화자와 클로이(여)의 만남에서부터 헤어짐까지의 사랑의 과정을 그 어떤 작가도 생각해 낼 수 없는 특별한 시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는 비행기 탑승의 확률 계산으로 부터 시작한다. 보잉기의 내부 그림까지 곁들여 가면서 계산한 확률은 5840.82분의 1이란다. 이것이 두 남녀의 '낭만적 운명'에서 정해진 필연적 사건의 만남이 될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이후의 과정별 상황 전개의 심리적 분석, 어떤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 그때의 철학적 분석 등이 계속 이어진다. 모든 상황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마르크스, 자유정치, 공포정치까지 동원하여 설명이 이어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마음의 갈등을 느낄 정도로 ('이 책이 소설이 맞아?'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특별한 사랑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렇게 혹독한 통과의례를 거친 후에 읽게 된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작품들은 그의 독특한 글쓰기가 오히려 익숙함으로 다가왔다.<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는 작가가 르포라이터가 되어 현장에 직접 뛰어 들어서 일의 과정을 모두 체험해 본다.

발트해를 가로질러 펄프를 운반하거나, 참치를 잡거나, 다양한 비스킷을 개발하거나, 들판에서 떡갈나무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전선을 놓거나, 회계처리를 하거나, 탈취제 자동판매기를 발명하거나, 항공사를 위해 강도가 높아진 코일 튜브를 만드는 등의 일을 작가가 직접 그곳에 가서 체험하여 글을 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하루종일 따라 다니면서 인터뷰도 하고, 취재도 하고, 체험도 한다.

<공항에서의 일주일을>을 쓰기 위해서는 히드로 공항에 자리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일주일을 보낸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는 종교 전반과 세속적인 영역을 비교하기 위해서 기독교, 유대교, 불교를 다루고 있다.

이정도의 열정적이고 사유적인 글쓰기 스타일이라면 어떤 내용의 글을 쓰든지간에 그의 책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 저자는 철학자이자 미술사가인 '존 암스트롱'과 함께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라는 주제로 예술에 관한 책을 펴냈다. 이 책 속에는 회화, 건축, 디자인, 공예, 사진 등의 예술 작품 140 여 점이 담겨 있다.

 

그래서 얼핏 140 여점의 예술 작품을 설명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 보다는 책의 주제에 따라 내용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작품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 장치로 예술 작품이 소개된다고 보면 된다.

이 책의 소주제는 방법론, 사랑, 자연, 돈, 정치인데, 이들이 예술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는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으로 기억, 희망, 슬픔, 균형회복, 자기 이해, 성장, 감상을 든다.

" 삶이 고단할수록 우아한 꽃 그림은 우리를 더 깊이 감동시킨다. 눈물이 나온다면 이는 그 이미지가 얼마나 슬픈가에 반응해서가 아니다. 유리병 속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국화를 그린 사람은 그의 자화상이 말해주듯, 인생의 비극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 (p. 20)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관심이 가는 내용이 있는데, 그건 예술의 7가지 기능 중에 '균형회복'에 관한 내용에 한국의 백자 달 항아리가소개된다.

" (...) 이 항아리는 쓸모 있는 도구였다는 점 외에도, 겸손의 미덕에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항아리는표면에 작은 흠들을 남겨둔 채로 불완전한 유약을 머금어 변형된 색을 가득 품고, 이상적인 타원형에서 벗어난 윤곽을 지님으로써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다. 가마 속으로 뜻하지 않게 불순물이 들어가 표면 전체에 얼룩이 무작위로 퍼졌다. 이 항아리가 겸손한 이유는 그런 것들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여서다. 거기엔 자신을 과도하게 특별한 존대로 생각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지혜가 담겨 있다. 항아리는 궁색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의 존재에 만족할 뿐이다. " (p. 42)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되는 내용이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이다. 오늘날, 예술은 인생의 의미에 버금갈 정도로 높게 평가되어 있다. 나는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세계적인 미술관과 박물관 등에서 명성이 자자한 작품들을 많이 볼 기회가 있었다. 간혹은 그 작품들을 보면서 '스탕달 신드롬'을 느낀 적도 있다. 그러나, 유명한 예술작품들에 모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현대작품으로 갈수록 작품들을 보면서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에 느끼는 인간의 심리는 자신이 그런 작품을 이해도 하지 못한다는 무능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 작품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인간의 예술적 이해부족이나 수용능력의 부족 탓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이 곧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의 답과 같아 질 것이다.

" 이런 이미지 앞에서 초조해지는 까닭은 작품을 즐기기에 앞서 작품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고 느껴서다. " (p. 87)

이 문장에 공감을 느끼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에는 기술적 해석, 정치적 해석, 역사적 해석, 충격가치 해석, 치유적 해석이 있는데, 저자는 그중에서 치유적 해석에 그 비중을 둔다. 우리가 어떤 작품을 좋다라고 하는 이유는 그 작품이 우리의 영혼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자신의 성격을 알고, 자신이 무엇을 위안하고 되찾으려 하는지를 안다는 것이 유용하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치유적 존재로서의 예술을 생각한다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의 가치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관람자를 인도하고 위로하는 치유 존재여야 한다. 그렇다면,현대미술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점들이 많다. 우리가 예술을 즐기는 방식이나 시스템, 시장, 사회까지도 바뀌어야 한다.

 

예술작품이 비자금의 세탁 방법이나 뇌물로 이용되기도 하고,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자신들의 예술적 안목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까지 동원된다면 예술은 그 자체로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기존의 예술을 대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롭고 독특한 시각으로 예술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이 책을 통해서 전해준다.

'알랭 드 보통' 의 앞서 출간된 책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런 생각들이 이 책 속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그런 내용들은 기존의 예술관련 서적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내용들이기에 신선하게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