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평점 :
2013년은 김연수가 등단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93년에 <작가세계>를 통해 시를 발표했고, 1994년에는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소설을 쓰는 이외에도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를 비롯한 번역도 하였다.
시인, 소설가, 번역작업까지를 하는 그는 그동안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김연수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원더보이/ 김연수 ㅣ 문학동네 ㅣ2012>이다. 이 소설은 열다섯 살 정훈이가 열 일곱 정훈이로 성장하여 가는 과정에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청춘성장소설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찬란하게 빛나는 글들이 그 상황에 적확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처음 접하는 작가의 소설이기에 물흐르듯 읽혀지기 보다는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읽어내려가야 했다.
"우주에 그토록 별이 많다면, 우리의 밤은 왜 이다지도 어두울까요? " (원더보이 중에서 p. 305)
이 소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우리의 밤은 그렇게 어둡지 않으리라는 여운을 마음 속에 남겼던 책이다.
그래도, 나에게 김연수는 '확' 끌리는 작가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서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ㅣ자음과모음 ㅣ 2012>와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 / 김연수ㅣ 마음의숲 ㅣ2012>를 읽으면서 작가에게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다.
아마도, 김연수에게 2013년은 등단 20주년이라는 의미있는 해이기도 하지만,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절판을 선언하여야 하는 힘겨운 해일 수도 있다.
작가를 도서 판매량으로 평가하려는 세태와 출판사가 그 일에 관련이 되어 빚어진 일이기에 작가를 아끼는 독자들에게는 마음이 아픈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이해해 나가는 작은 발걸음이 그의 소설집인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머물게 되었다.
이 책 속에는 2008년 가을~2013년 여름까지 발표한 단편소설이 11편 담겨 있다. 그러니, 나에게는 좀더 작가의 작품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셈이다.
<원더보이>에서 흘러간 시간 속의 이야기인 비디오 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나 유리겔라의 마술이 있듯이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 속에도 '여러 의미의 역사에 대해서 고민해 온 작가의 번민이 느껴지는' (문학 평론가 허윤진의 글 중에서)그런 요소들이 담겨 있다.
소설집의 장점이라면 한 권의 책 속에서 다양한 주인공의 각기 다른 삶을 엿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평론가는 '여러 의미의 역사'를 언급했는데, 김연수의 작품 속에서는 주인공 마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어떤 사건이나, 만남, 역사적 사실 들이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의미있는 것이 타인에게는 별다른 의미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처럼.
그래서 삶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단편인 <벚꽃 새해>는 헤어진 연인이 선물한 시계를 돌려달라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던 아유타야의 폐사지인 왓 마하탓을 떠올리면서...
버마군의 침략으로 불상들의 목이 잘려 나가고, 그 불상의 머리 중의 하나가 보리수의 뿌리를 감싸안았고, 세월이 흐른 지금은 불상의 머리가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뿌리와 하나가 되어 있다. 이 소설 속에는 유독 오래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흘러간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오래된 시간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는 것일까.
" 그게 그렇더라구,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체로 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남의 것이야. 내 건 하나도 없어" (p.p. 29~30)
표제작인 '사월의 미, 칠월의 솔'는 미국에 살았던 팸 이모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모가 사랑했던 유부남 감독과의 짧은 사랑이야기 그리고 그 뒷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서귀포 함석집에 내리던 빗소리. 그것을 묘사한 문장이 눈길을 끈다.
" 함석지붕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 (p. 81)
이런 젊은 날의 조각들, 아니 삶의 조각들. 그 조각들은 우리에게 먼훗날 어떤 빛깔로, 어떤 소리로 들리게 될까.
함석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숨어서 한 사랑이지만, 빗소리만큼 아름다운 음율이었으리라.
11편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김연수 작가의 작품에 익숙해진다. 아직은 그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지 잘 알 수 없는 부분들도 많이 있다.
책 뒷부분에 문학평론가 '허윤진'의 해설을 읽었지만, 그 내용이 더 어려워서 오히려 작품 해석이 힘들다.
그냥 소설은 내가 받아 들일 수 있는 만큼만 받아 들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