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친구들과 '가장 가고 싶은 곳은?'이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당시만 해도 여행자유화가 시행되지 않은 때이기에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나는 몇 년에 한 번씩은 세계 속으로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터키를, 미국을, 가까운 홍콩이나 마카오를 갈 수 있게 되었다. 그건 경제적인 여유 라기 보다는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

여행은 바로 내가 삶을 충실히 살았기에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여행을 위해서 여행 관련 서적을 즐겨 읽는다.

 

<여행자의 독서 : 두번째 이야기 / 이희인 / 북노마드 ㅣ2013>

몇 년전에 우연히 읽게 된 <여행자의 독서>는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던 책이었다. 여행과 독서는 내가 항상 갈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 길을 떠났다 돌아오는 그 순간부터 또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 마음이나, 한 권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다른 책을 펼쳐 드는 마음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행이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일 수도 있고, 익숙한 곳에 대한 편안함과 추억을 되새겨 보는 일인 것처럼 독서도 새로운 책에 대한 기대감이기도 하고, 오래전에 읽었던 책에 대한 되새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여행과 독서가 함께 만날 수 있는 것이 여행가방 속에 챙겨가는 몇 권의 책을 읽는 일이 아닐까.

  

 

저자가 이미 <여행자의 독서> 첫번째 이야기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지난 십여 년간 세상 구석구석에서 겪은 인상깊은 여행들과 그와 연관된 책 (특히,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여행자의 독서> 저자의 말 중에서)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 ! (<여행자의 독서> p.6)

역시, <여행자의 독서 두번째 이야기>에서도 여행지와 그곳에 관한 책들이 소개된다.

(...) 그렇듯, 여행은 제게 기쁨보다는 슬픔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에 스며드는 시처럼, 가슴에 번지는 음악처럼. 진짜 여행은 유쾌하고 들뜬 것이라기 보다 슬퍼야 제맛이라는 듯이. (...) 슬픈 여행이야말로 정갈한 기쁨, 맑은 가르침이 숨겨 있다고 믿습니다. 그 슬픔에 언어를 부여하는 일이 아마도 이런 책일겁니다. (...) 제겐 길 위에서 틈틈이 읽는 책들 속에서 또다른 여행의 길이 있었습니다. (<여행자의 독서 두번째 이야기, 작가의 말 중에서 )

그렇다면, 내가 여행을 떠날 때에 오랜 시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여행가방에 챙겨가는 책들과 그 책읽기와는 다른 의미의 '여행자의 독서'가 아닐까....

그가 길 위에서 읽은 책들은 그가 찾아가는 여행지와 관련된 책(소설 등)들이다.

중국 강남의 여행길에서는 <루쉰 전집>, < 허삼관 매혈기>, < 아리랑>

일본 큐슈의 여행길에서는 < 남쪽으로 튀어>, < 원전사고>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의 여행길에서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프라하의 소녀시대>

보스니아, 세르비아의 여행길에서는 <드리나 강의 다리>,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타인의 고통>

파키스탄, 히말라야에서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킴>

잔지바르에서는 <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등을 읽는다.

여행지와 관련되어 소개된 책들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책들이고, 나 역시 읽었던 책들이 대다수이기에 여행중에 왜 그 책을 선택하였는가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책의 내용들의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읽지 않은 책들 중에도 관심이 가는 책들이 읽어서 독서 리스트에 올려놓게 된다.

내 경우에는 여행가방 속에 넣는 책은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나 얇은 소설을 주로 담아 가는데, 저자가 소개하는 책 중에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가치에 대한 탐구'라는 부제가 붙은 두께가 799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두께의 책이다. 이 책은 소설을 가장한 철학서이다. 그래서 한 권의 책 속에 두 권의 책이 존재한다. 하나의 측면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하는 기행문의 의미. 그리고 또 다른 측면은 여행중의 모터사이클 관리를 중심으로 관념에 대한 이야기, 즉 고대 희랍인의 시각과 그러한 시각이 갖는 의미에 관한 철학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에 따라서 철학적인 내용이 힘겹게 읽혀진다면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하는 부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읽어도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한 편의 소설적 구성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과 모터사이클관리술>에 나오는 저자의 여행길은 과거와 마주치는 장소이며, 이야기들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학적 의미의 묘사가 돋보이기도 하는 문장들과 철학적 의미의 사유의 계층 체계 속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탐구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책은 철학서이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 작가 자신의 말대로 이 책은 " 관념에 관한 한 권의 책과 사람들에 관한 또 한 권의 책" 이라는 "두 권의 책" (부록 751)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관념에 관한 한 권의 책이 철학서라면 " 사람에 관한 또 한 권의 책" 에 해당하는 것은 바로 소설 형식의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p.768)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역자의 글 중에서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여러 날 붙잡고 씨름을 하듯이 읽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의 뿌듯함은 <여행자의 독서>의 저자가 책에서 말하듯, " 나 이런 책 읽었어! 하고 오만을 떨어도 괜찮을 책" (p. 347)임에는 틀림없지만, 여행가방 속에 선뜻 넣어 갈 생각은 하지 못할 것 같은 책이다. 그러나 여행자가 왜 이 책을 파키스탄 히말라야 여행길에 읽었는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또한 나의 독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여행과 독서를 동시에 생각해 보게 된다.

 

<안녕 다정한 사람 / 은희경, 이병률 등저 ㅣ 문학동네 ㅣ 2012>

여행에 관련된 책 중에는 <여행자의 독서>처럼 여행 중에 읽을 책들에 대한 글을 담은 책도 있지만 여러 저자들에 의해서 쓰여진 '여행이란 무엇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도 있다.

사람들에게 여행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은희경에게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이고.

이병률에게 여행은,

바람,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

백영옥에게 여행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도돌이표.

박칼린에게 여행은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라고 한다.

이처럼 여행은 사람들마다 같은 듯 하지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한여름에 부는 시원한 바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낯선 곳에서 느끼는 설레임이라고 해야 할까.

<안녕, 다정한 사람>은 각계 각층의 10명의 유명인들이 각각 서로 다른 10곳의 여행지로 떠나서 보고 느낀 것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끌림>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로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감성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던 시인 이병률이 9 명의 여행자와 동행을 하여 사진을 찍었으며, 그도 역시 핀란드의 '탈린'을 거쳐 북극선을 지나 '로바니에미'까지 여행을 하며 추운 겨울이면 생각나는 산타클로스 마을도 소개해 준다.

처음 이 책을 읽으려고 생각했을 때는 이런 프로젝트를 가지고 만들어진 책이 아니라, 유명인들의 삶 속에서 다녀온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를 열 개의 꼭지로 묶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건 자연스러운 여행 이야기일테니까.

은희경, 김훈, 백영옥은 그들의 작품 속에서 여행을 즐긴다는 것을 살며시 느끼게 해 주었던 사람들이다. 물론, 김훈의 경우에는 자전거 여행을 주로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김훈이 떠난 미크로네시아, 박칼린이 떠난 뉴칼레도니아는 여행자들에게도 낯설게 느껴지는 곳이기에 그 부분에는 좀 더 관심이 간다.

" 여행이란, 만약 배움과 탈피와 자유와 쉼이 있는거라면 난 나의 현재와 절대로 똑같은 상황을 보고 느끼고 싶진 않다. 그래서 멀리 가고 다른 지형을 찾고 다른 경험을 찾는 것이다." (p. 221)라고 박칼린은 말한다.   

셰프 박찬일에게 여행은 좋은 친구와 여행을 떠나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역시 셰프다운 여행을 하는가 보다. 그가 떠난 일본의 기차여행, 그리고 그곳에서 맛보게 되는 에키벤. 바로 기차에서 판매하는 벤또. 도시락이야기이다. 아마도 나는 그가 지중해의 푸르른 바다 빛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비슷한 음식이 담겨 있는 도시락 이야기를 들으니, 그것이 더 신선하게 생각된다.

학창시절 엄마가 싸주시던 정성어린 도시락에 대한 추억은 요즘 아이들에게 없으니, 그 역시 언젠가는 문화적 차이로 다가올 것이다.

 

" 여행은 낯선 세계로의 진입만이 아니다. 그리운 것들과의 재회의 시간이기고 하다. 이제는 이렇게 흘러가겠지,를 뒤집는 일은 인생에서 수시로 발생한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새로운 것이 발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다. 예기치 않게 뉴욕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발생하기도 하는 것처럼." (p. 293)

그렇다. 우린 여행이라고 하면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레임으로 잠 못 이루지만, 때론 떠나 왔던 곳으로의 돌아감도 여행인 것이다.

시간이 되면 꼭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는 곳 중에 부산이 있다. 여러 번 가기는 했지만, 들리지 못했던 그곳은 어릴 적에 방학때 몇 번 갔었던 옛집이다.

아버지가 부산에서 잠깐 근무하시게 되어서 그곳에 터를 잡고 몇 년 사셨는데, 학교에 다니던 나는 방학마다 그곳에 갔었다.  집 근처의 기차길도 생각나고, 무화과 나무도 생각나고, 작은 구멍가게도 생각이 난다. 어느해 크리스마스에 재롱잔치를 하던 동생이 다니던 교회도 눈앞에 보이는 듯 선명하다.

찾아가면 갈 수 있을 것 같은 그곳을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그 마음도 여행으로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이란 비행기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어린날의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따사로운 햇볕이 비치는 바깥 풍경이 겨울답지 않게 포근해 보인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ㅣ 달 ㅣ 2012>

 

<안녕 다정한 사람>의 사진을 맡았던 이병률, 7년전인가 우연히 읽게 된 <끌림>을 통해서 이병률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감성적인 글과 분위기 있는 사진으로 엮어진 여행 에세이가 많이 나와 있지만, 그당시에 <끌림>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책은 낯선 여행지에서 쓴 글임에도 여행지의 정보는 없고, 그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분위기있는 사진들과 함께 실려 있었다.

외로움이 물씬 풍기는 듯도 하고, 가슴 속에 어떤 아픔이 숨겨져 있는 듯도 하지만, 책 장을 넘기면 넘길 수록 가슴이 따뜻해 지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마음 속의 느낌을 그대로 담은 듯한 사진들과 절제된 글.

그래서 <끌림>은 가끔씩 뒤적여 보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2010 년 <끌림>의 개정판이 나왔을 때, 내 손에는 또 그 책이 들려져 있었다.

저자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길 위에서 느낀 소소한 이야기들이건만 그 이야기들은 내 마음 속에 들어와 고운 무지개처럼 아롱거렸다.

<끌림>을 읽기 전까지는 이병률이 누구인지 알지를 못했다. 그가 시인인 것도, 방송작가인 것도....

그런데, 지금은 그의 이름을 들으면 '지금은 어느 곳을 헤매고 다닐까 ?'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글을 쓰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그의 글들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는 이병률이 <끌림>이후에 7년만에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그런데, <끌림>의 한 부분을 읽는 듯이 변함없는 글과 사진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세계의 어느 곳인가에서 느낀 단상들.

조금은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여행이 일상이다시피 되었고, 그 길 위에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 살다보면 그렇게 됩니다. 아무 것도 셈하지 않고, 무엇도 바라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기쁘게 받아 들이는 일, 살다보면 사랑도 그렇게 완성될겁니다. " ( 책 속에서, 이병률의 책 속에는 페이지 수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홍콩을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 이야기는 마음 속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홍콩에서 찍은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아들은 아버지가 홀로 여행했던 곳들을 찾아 그곳에서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나도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먼훗날, 아들이 이곳을 다시 찾게 되었을 때에 추억 속의 한 부분으로 지금을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래서 추억을 만들어 주자고.

저자가 홍콩에서 만난 그 여행자는 아버지와 함께 온 여행지는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아 다니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꼈을 것인가 짐작되는 것이다.

또 어떤 사연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저자는 마음에도 색깔이 있고, 그녀에게도 색깔이 있고, 슬픔에도 색깔이 있고, 당신에게도 색깔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색깔 뿐만아니라 슬픔에도 냄새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감각적인 사람이다.

분홍이 어떤 색인가를,

그리고 주황이 어떤 색인가를 말하기도 한다.

 여행을 좋아하기에, 마음을 사진에 담아내기에, 그 모든 것을 글로 표현할 수 있기에, 그의 마음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 내가 웃으면 세상도 나를 따라서 웃을 것이고, 내가 울면 세상도 나를 따라서 울게 될 거라는 생각에 건배를 했다. 창밖으로 달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책 속에서)

달이 환하게 웃고 있었으니, 그의 마음도 환하게 웃고 있었으리라...

 나는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예약판매로 구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따라온 <끌림> 미니북.

아주 작지만, <끌림>이 고스란히 그 속에 담겨 있다.

고이 고이 간직했다가 여행을 가게 되면 그때에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아니 '비가 온다 당신이 좋다', '눈이 온다 당신이 좋다', '무지개가 떴다 당신이 좋다'

이렇게 어떤 상황이 된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좋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같은 것이 여행이 아닐까. 

나는 꿈꾼다. 어디론가 떠날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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