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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탐정들
정명섭.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평점 :
<조선의 명탐정들>이란 책을 펼치는 순간 떠오르는 TV 드라마가 있다. 1971년 가을부터 1974년까지 798회에 걸쳐서 방영된 <여보, 정선달>이다.
이때의 시대적 상황에서 국민들은 뭔가 속시원하게 한 방 날아오는 통쾌함을 맛보고 싶었을텐데, 그런 국민들의 정서를 잘 반영한 드라마이다. 드라마의 내용은 조선시대가 배경인데, 정선달은 전국 방방곡곡을 유랑한다. 구름따라 바람따라 이곳 저곳으로 다닌다. 날이 어두워져 주막집에 머물면서 그 지역의 민심을 살피기도 하는데, 어김없이 그곳에는 사건사고가 기다리고 있다. 살인사건을 비롯한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것을 데리고 다니던 하인과 함께 해결하는 내용이다. 고전해학극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드라마는 권력층의 비리 등을 파헤치기도 해서 시청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이 드라마의 내용은 야담야사, 어사 박문수, 오성과 한음 등의 이야기에서 차용하기도 했다. 암행어사의 신분이었던 정선달이 조선시대의 탐정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얼핏 생각하기에 '조선시대에 무슨 탐정이냐?' 하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이때에도 과학적 근거에 의해서 사건 수사를 하였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조선에도 시신의 부검이 이루어졌는데, 타살이 의심되는 시신은 3차례 검시를 받고, 그래도 의문이 있으면 다시 검시를 했다. 당시에도 법의학 서적이 있었는데, <무원론>에 각주를 덧붙인 <신주무원론>에 따라 검시를 하였다. 사체의 색과 형태, 사체의 모양 등을 관찰하여 검시소견을 내놓을 정도였으니, 주먹구구식의 수사는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 <흠흠신서>에는 조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들이 기록되어 있기도 한데, 그 내용을 보면 관찰력과 세심함으로 범인을 잡은 사례들이 있다.
이 책에는 13건의 강력 사건이 담겨 있는데, 그를 해결하는데 16명의 조선의 명탐정이 소개된다. 흥미로운 것은 세종, 연산군, 정조, 정약용 처럼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왕이나 학자들도 있다.
물론, 왕들은 직접 수사를 하기 보다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지혜를 빌려주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에 실린 사건들은 조선시대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런데 그 사건들을 파헤치고 해결한 사람들을 명탐정이라고 명명하면서 그들이 사건을 해결한 방법들과 유사한 외국 명탐정을 비교하여 실어 놓았으니, 조선 명탐정 대 외국 명탐정의 사건 해결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세종은 왜관 통도사 이춘발이 한밤중에 살해된 사건의 범인을 검거하는데, 그의 세심하고 치밀한 성격과 억울한 백성을 만들지 않으려는 생각에서 해결에 도움을 준다.

살해동기가 무엇일까, 살인자가 노리는 목적은?, 철저한 현장검증으로 증거를 찾아라 !!
세종의 탐정기질은 증거와 정보를 전해 들은 후 그것만으로 추출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서양의 명탐정 모스 경감과 유사하다. 이들은 '앉아서 범인을 체포한 명탐정'이다.
패륜아, 폭군이지만 그에게 또 하나의 타이틀을 붙인다며 명탐정, 연산군.

연산군 2년 초계군수 유인홍의첩이 남자 종과 간통을 하다 전처 소생의 딸에게 발각이 된다. 그래서 딸을 살해하게 되는데, 이 소식은 합천에서 한양에 있는 왕의 귀에 까지 들어오게 된다. 그건 유인홍이 딸의 의문의 죽음을 외면한 채 첩을 두둔하니, 그를 안타깝게 여긴 백성들의 입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이에 연산군은 유인홍을 한양으로 데려와 취조를 하도록 하는데, 왕이 직접 8가지 심문 내용을 만들어서 지시한다. 연산군이 명탐정인 것은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인데, 이와 비교되는 서양의 탐정은 아르센 뤼팽이다. 연산군과의 닮은꼴은 뤼팽의 앞에는 '괴도 신사' 또는 '괴도'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신사와 괴도의 양면성, 뤼팽은 부자들의 돈과 재물을 탈취하고, 무능한 경찰을 조롱하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통쾌감을 주었다.

조선 최고의 명탐정으로는 정약용을 꼽는다. 한때 형조 참의였던 다산 정약용은 몇 년동안 해결되지 않은 살인사건들을 한 번 쓱 보고 처리할 정도로 명탐정 기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이당시에 미제사건들이 많이 해결되었다. 거기에 도움을 준 것이 시신을 살펴본 의원의 검시 보고서인 <검시장식>이 큰 역할을 했다. 정약용은 <심리록>을 통해 정조때에 사형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한 조사기록을 남겼는데, 1775년 12월부터 1800년 6월까지 30개월 동안에 1112건의 살인사건 판결이 있음을 적어 놓았다.
그의 또다른 저서인 <흠흠신서>에는 정약용이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살인사건에 대한 조사기록과 판례 들을 적어 놓기도 했다.

이런 정약용을 코난도일의 소설 속에 나오는 셜록 홈즈와 비교한다. 셜록 홈즈은 '현장의 증거를 철저하게 조사해서 범인을 찾아내는 탐정이다.
" 이후 정조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정약용의 관직 생활은 끝나버리고 말았다. 1818년, 18년간의 기나긴 강진에서의 유배에서 풀려난 정약용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을 저술했다. 그리고 앞의 두 책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흠흠신서> 역시 이때 쓰게 된다.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살인사건에 대한 조사기록과 판례를 적은 것이다. 그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백성들이 없도록 지방관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기록들을 적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함께 적었다. 범죄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본 그의 이런 모습은 진실을 밝혀내는 탐정의 모습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 (p.p. 204~205)
정조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울산 태화강에서 건진 시신, 살아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 물에 빠뜨린 살인사건, '타살이냐?, 자살이냐?' , '타살이라면 누가 죽였을까?'

이 사건은 <흠흠신서>에 기록된 사건인데, 정조는 현장 검증도 직접 심문도 하지 않았지만, 오직 백성들의 억울함을 남겨두지 않겠다는 사명감으로 정약용의 도움을 받아 오빠가 누이를 죽었음을 알아낸다.
성군들이 명탐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 책에 실린 13건의 살인사건, 거기에는 16명의 직간접적인 명탐정의 활약이 있다. 살인사건들은 소설로 재구성이 되고,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 이 사건의 해결에 도움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들과 가장 유사한 서양의 명탐정의 사건 해결 방법 등이 소개된다.
이 책을 통해 조선의 사회상 중의 사건 사고 해결 방법과 능력을 알아 볼 수 있다는 것이 의미있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