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 데이즈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23년간의 삶 그리고 결혼생활이 단 5일간의 외출끝에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다~~

" 인생은 그랬다. 지금 세상의 중심에 있다가도 한순간에 휩쓸려 사라질 수도 있는 것, 바로 그런게 인생이었다." (p. 109)

우린 살아 오면서 인생의 고비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경우가 있다. 먼훗날 그때의 선택이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한 적이 숱하게 많을 것이다.

인생을 되짚어 볼 때에 후회되는 순간이 어찌 없겠는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또다른 선택이 나를 어떤 인생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반전의 묘미에 이끌려서 읽게 되는 책이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이다. 

2010년 6월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작가의 소설은 9작품 10권이다. <리빙 더 월드>와 <행복의 추구>를 제외한 7 작품의 소설을 읽다보니 이제는 작가의 소설이 너무 익숙해서 별 감흥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파이브 데이즈>를 읽기 시작했다.

역시 그의 소설은 흡입력이 강하다. 책을 펼치는 순간 몰입하게 된다. 

로라는 단 5일간의 외출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마침내 '진정한 나를 찾아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뭐~ 평범한, 흔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러나 '더글라스 케네디'의 탄탄한 구성, 치밀한 전개, 등장인물의 상황과 심리묘사가 작가의 다른 소설처럼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마음에 와닿는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남자 작가임에도 작품마다 여자 주인공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이 소설에서도 여주인공 로라의 심리 묘사가 잘 표현되어 있다.

로라는 결혼 23년차인 40대 초반의  병원 영상의학과 기사이다.  직장 동료들에게는 누구 보다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아 가는 듯하지만, 마음 속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동안 살아 오면서 느낀 절망과 실망,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상처까지...

대학 입학시에는 반액 장학금을 준다는 보드윅 대학 대신 전액 장학금을 주는 메인주립대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의대 졸업도 가능할 수 있었건만, 사랑의 후유증으로 지금의 위치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대학시절 만난 연인과의 사랑, 유산 그리고 연인의 사고사...

그 아픔이 가시기 전에 만난 지금의 남편인 댄과의 결혼 생활은 그저 밋밋한,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 될 그런 날들의 연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댄에게 찾아 온 회사의 정리해고로 인한 실직은 그들의 가정에 균열을 가져 오게 된다.

" 우리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인생에서 정말 바라는 게 뭔가요? 우리는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 사람들은 대답한다. 행복,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 두려움 없는 생활, 돈, 섹스, 자유, 가족의 안녕, 자아발견.. 모든 대답이 다 그럴싸하지만 원하는 바를 정말 손에 넣은 사람이 있을까? CT스캔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통해 나는 인생을 보았다. 그 눈 속에 들어 있는 공포와 희망, 죽음의 신에게 붙잡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분, 막다른 길에 다다르더라도 벗어날 방법이 있을거라 믿을 수 밖에 없는 심정...." (p. 97)

로라의 삶은 마치 스피큘레이트 암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암에 대한 내용이 이 소설의 첫 페이지에 나온다.

" 암의 모양은 흡사 민들레처럼 생겼다. 어떤 악성종양은 모서리가 날카로운 별 모양 싸구려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암은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민들레 모양에 가까웠다. 꽃잎은 떨어지고 바늘 같은 홀씨들이 드러난 사악한 모양의 꽃.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그 모습을 '스피큘레이트 스트럭처'라고 부른다." (p.7)

로라는 분명 지혜로운 아내이고, 두 아이 (대학생 아들, 고등학생 딸)의 좋은 엄마이다. 결혼 후 이렇다 할 여행도 한 번 가 보지 못했던 로라에게 방사능과 학술대회에 가는 기회가 주어진다.

학술대회가 열리는 보스턴에서의 72시간의 일탈. 로라는 호텔 체크인을 하는 과정에서 이곳에 들른 보험 세일즈맨인 코플랜드를 만난다.

로라와 코플랜드는 우연히 영화관에서 만나게 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특히 문학 이야기는 둘 사이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데...

그리고 로라는 미술학도인 아들과 치어리더인 딸의 이야기를, 코플랜드는 수학천재이지만 양극성 기분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병상련을 느낀다.

평소의 자신들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늘 꿈꾸던 모습으로 변신을 하는 둘의 모습은 이 소설에서 가장 멋진 부분이 아닐까...

그리고 그들은 일생에 단 한 번 밖에 없을 것 같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단 이틀간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예고할까~~~

이 책의 주제는 '우리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즉, 인생에 있어서의 선택이 과연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라'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자식이 때문에 그럭저럭 사는 삶, 꿈도 희망도 없는 그런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찾아라'이다.

그렇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자신의 삶을 찾아야 되겠지...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또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로라의 남편인 댄은 정리해고가 된 후에 직장을 구하다 18개월 동안 실직 상태에 놓이게 된다.  아버지의 술주정에 두려움을 갖고 살았지만 아버지는 댄에게만은 애정을 쏟았었다. 그러나 자라온 환경이 그러니 강한 남자가 되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살아왔다. 로라가 댄과 결혼을 한 것도 사랑의 마음 보다는 위안을 받기 위한 것이 더 많았다. 댄이 18개월의 실직끝에 얻은 직장은 전에 다니던 회사의 창고지기... 자존심이 팍~ 상할 일이지만, 그는 마지못해 그 직장에 다니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로라가 보스턴 학술대회에 간 후에 차고 정리 등을 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보스턴에서 돌아온 로라에게서 느껴지는 낯선 느낌들, 그리고 이혼 선언.

많은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로라의 새로운 삶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리라...

그런데 나는 '박범신'의 소설인 <소금>이 생각난다.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이 생각난다. 추레한 모습의 아버지들, 아내와 자식 앞에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아버지들.

<파이브 데이즈>에서의 로라의 아들과 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소설 속의 이 아이들에게도 힘든 상황이 닥쳐 왔는데, 그들이 찾는 것은 로라이고, 아버지는 자식을 이해 못하는 외톨이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파이브 데이즈>의 코플랜드가 더 공감이 간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로 인하여 문학의 뜻을 접고 원하지 않는 직업인 보험세일즈맨을 하게 되었으며, 결혼생활 역시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각자 평행선을 그으며 이어지는 결혼 생활, 그리고 아들 빌리로 인하여 파생되는 슬픔들 때문에 힘겹게 살아 왔다.

보스턴에서의 단 며칠의 일탈, 낯선 가죽 재킷을 입고, 유행하는 안경으로 바꿔 끼고, 사랑에 들떴던 코플랜드였지만, 그는 결국에는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코플랜드는 먼훗날 지금의 선택을 후회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코플랜드가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40대 초반의 로라가 찾은 새로운 인생, 자기 자신의 진정한 삶. 살아갈 날이 많은 로라에게 그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댄의 삶이 너무 초라하고 서글퍼 보인다.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부푼 꿈에 들떠 있던 코플랜드가 원래의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 것도 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을 읽으면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스쳐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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