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김동영 지음 / 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턴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워진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소설들, 그중에서 내 취향에 맞는 소설을 골라 읽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때문이다.

SF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일 경우에는 이 분야의 소설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로맨스 소설도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서 골라 읽기는 하지만, 읽은 후에 깔끔한 느낌이 안 들기에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설을 선택할 때는 장르에 따라서, 작가에 따라서 호불호가 선명하게 나누어진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소설 보다는 읽고 난 후에 산뜻한 느낌이 드는 여행 에세이나 감성 에세이를 주로 읽게 된다.

그런 책을 주로 쓰는 작가 중에는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의 '이병률',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의 '변종모', <그리움이 번지는 곳 프라하, 체코>의 '백승선', <보통의 존재>의 '이석원', <너도 떠나 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의 '김동영'이 있다. 이들 작가의 책들은 빼놓지 않고 읽는 편인데, 사실 이런 책들은 읽으면서 분위기 있는 사진을 보는 재미도 있다. 가슴이 뻐근해 질 정도의 외로움과 슬픔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여행의 기쁨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런데, 얼마전에 <보통의 존재>의 '이석원'이 <실내인간>이라는 첫 소설집은 냈다. 소설가가 아닌 그가 4년에 걸쳐서 쓰고 다듬고, 쓴 소설이기에 관심이 가서 읽게 되었는데, 이야기의 주제는 좋았지만, 어딘지 어설픈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작중 인물인 용휘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주는,

" 인간이, 자신이 믿는대로 자신만의 탑을 높이높이 쌓아가다. 마침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게 되면, 그는 그 위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 (실내인간 p. 266)

우린 어떤 것들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속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을 수도 있기에.

 

내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을 꼭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 불변의 것은 아니며, 그건 어쩌면 그저 허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나만 위로할 것>의 작가인 '김동영'도 이번에 첫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그의 첫 번째 여행 에세이인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거야>는 출간 후에 그리 잘 팔리지는 않았던 책인데, 어느날 연예인이 그 책을 들고 TV에 나오면서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게 된 책이다.

미국의  대중음악과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서른 살을 맞아 훌쩍 미국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의 230일간의 여행의 에세이이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감성 에세이이다. 그런데 그 느낌이 참 좋다 !!

김동영은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고, 음악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기에 그의 책에는 항상 음악 이야기가 함께 한다. 물론, 그가 쓴 장편소설인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에도  소설 중간 중간에 음악이 흐른다.

(...) 하지만 나는 글을 쓰는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 무엇 때문에 이 길을 가려 하는지 아직까지 잘 모른다. 하지만, 손을 움직이면 마법처럼 써지는 글을 볼 때마다 내가 써 내려간 글들은 내가 가질 수 없는 도달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동경이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이유이며 원동력이다. ( 작가 소개글 중에서)

그래서 그는 첫 장편소설을 썼다. 물론 그의 감성적인 여행 에세이를 생각하고 이 소설책을 읽기 시작한 나에게는 좀 혼란스러울 정도로 이야기의 소재나 주제가 특별하다.

잔잔한 감성에 호소하는 청춘들을 위한 소설책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89살 노인의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도 현 시점이 아닌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줄기세포 이식수술로 노인같지 않은 노인들이 존재하는 시대, 성형수술로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시대.

이제 100 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가 도래하였는데, '백 년 보다 긴 인생'을 살아야 할 노인들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도, 삶의 낙도 없으니 그것이 오히려 힘겨울 뿐이다.

나라에서는 좀비처럼 죽지 않고 살아가는 노인들이 골칫거리이고, 불사의 시대에 국가는 일정 나이가 된 노인들의 자살을 방조하기까지 하니...

 

87세 정년을 맞은 노인이 89세의 나이로 죽기까지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 담아 놓았다.

 

" 인류는 신의 의지를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 그냥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시간만큼 사는 게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밀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힌 것이다. " (p. 106)

120 세까지도 살 수 있는 노인은 줄기세포 이식수술로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노인이 되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게 된다. 30대가 아니기에 20대 처럼 불안하지도 뭔가를 기대하거나 원하지도 않게 되었으니... 두 번의 이혼으로 부인을 떠났고, 아들과 딸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가족이면서도 남 보다 못한 자식이고... 자신의 죽음 앞에나 나타나겠지...

이 책을 읽으며서 가장 슬프게 다가오는 문장은,

" 넘치던 젊음은 이게 어디로 간 걸까?" (p. 160) 하는 노인의 속마음이다.

은퇴자의 마을로 떠날 준비를 하는 노인에게 살포시 찾아 온 카페 주인 J와의 꿈이 아닌 '꿈과 같은 현실 속의 사랑'

2번의 이혼으로 사랑을 두려워 하면 살았던 노인이 진정한 사랑을 아는데는 90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이다. 그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각인된 좋은 추억...

" 어쩌면 아는 것은 과거고, 의심하는 건 현재이며, 모르는 것은 미래인지도 모른다. 과거는 지독하건 좋건 간에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남기 마련이고, 현재는 그저 늘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 청춘이 아름다운 건, 무엇도 바꿔 놓을 수 없는 채로, 그저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흘러가고 지나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 183)

불사의 시대, 자살의 시대가 될 120세까지 살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아니 그리 소설 속의 이야기만을 아닌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가 될 이 시대가 된다면 과연 사람들은 지금 보다 더 오래 살 수 있기에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죽지 못하는 시대에 별 희망없이 살아가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 그들은 시간의 방대함과 그 안을 채우고 있는 헛된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혐오하는 일이 벅차 자살을 통해 영겁에 가까운 삶이라는 무거운 코트를 벗어 던졌을 것이다. (...)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살아 남은 자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슬픔이지만 죽은 자들에게는 미련도 남지 않는 긴 여행의 끝'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p. 234)

소설의 끝부분에 '안락사'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문제는 소설 중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시대가 자살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이 행복일지라도, 주어진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당사자가 그걸 원한다고 해도 그건 아니지 않을까....

많은 소설들이 과학의 발달이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족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 연장, 환경파괴, 첨단 무기 생산 등.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아마도 이 책은 '나이듦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연령층'이 읽는다면 훨씬 소설을 이해하기도 쉽고 공감을 갖게  될 것이다.

작가의 2권의 에세이를 통해서 작가는 깊이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고, 상당히 음악을 좋아하는 감성적인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이라는 주제를....

"꽃은 언젠가 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삶도 유한하기에 살아 있는 순간이 의미 있는 것. 저물어가는 붉은 노을이 아름다운 것처럼 모든 것은 끝이 있기에 소중하다는 그 당연한 진리를 우리는 잠시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완벽하게 영원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책 소개글 중에서)

책을 읽은 후에 이 소설에 대한 생각을 다듬으면서 책소개글을 읽다가 이 부분이 좋아서 여기에 적어 본다.

이석원의 첫 장편소설인 <실내인간>이나 김동영의 첫 장편소설인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는 이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단한 소설가들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꼭 쓰고 싶었던 글들을 소설로 엮어낸 이 두 작가의 소설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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