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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 시 - 120 True Stories & Innocent Lies
황경신 지음, 김원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황경신' 하면 <생각이 나서>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작가이지만, 그 책은 읽지 않았다. 그 책에는 '152 True Stories & Innocent Lies : 152 진실과 거짓말 !' 이 담긴 책이라고 한다.
작가의 다른 저서인 <눈을 감으면>을 얼마전에 읽었는데, 그 책은 좀 특이한 책이었다. 미술 작품 33 작품에 관한 이야기인데, 작품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작가의 작품 감상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미술작품을 보고 나서, 한참 후에 눈을 감고 있으면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 미술작품에 관한 해설이 담긴 책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읽어 내려가다가 이 책에 담긴 글들이 작가의 이야기인지,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을 쓴 글인지, 작품을 보고 떠오른 것들을 연상해서 짧은 소설을 쓴 것인지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눈을 감으면>은 황경신의 독특한 글쓰기를 느껴 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읽게 된 <밤 열한 시>도 작가의 감상이 물씬 풍기는 그런 에세이라는 생각을 하고 읽었지만, 나에게는 좀 가슴에 확 와 닿는 그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밤 열한 시>에는 '120 True Stories & Innocent Lies' 가 담겨 있다.

밤 열한 시,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 아닐까. 지친 사람들이 그들의 보금자리로 찾아 들어 오늘 하루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마감하기 직전의 시간, 내일은 어떤 날이 될 것인지 한 번은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

밤 열한 시 / 참 좋은 시간이야 / 오늘 해야 할 일을 할 만큼 했으니 / 마음을 좀 놓아볼까 하는 시간 / 오늘 해야할 일을 하나도 못 했으니 / 밤을 새워볼까도 하는 시간 //
밤 열한 시 / 어떻게 해야 하나 / 종일 뒤척거리던 생각들을 / 차곡차곡 접어 서랍 속에 넣어도 괜찮은 시간 /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던 마음도 / 한쪽으로 밀쳐두고 / 밤 속으로 숨어 들어갈 수 있는 시간 //
(.....)
밤 열한 시 / 하루가 다 지나고 / 또 다른 하루는 멀리 있는 시간 / 그리하여 / 가던 길을 멈추고 / 생각을 멈추고 / 사랑도 멈추고 / 모든 걸 멈출 수 있는 시간 //
참 좋은 시간이야 / 밤 열한 시 // ( 밤 열한 시 중에서)

<생각이 나서 >이후 3년 동안의 이야기를 책 속에 담아 놓았는데, 120 개의 이야기에는 날짜가 기록되어 있으니 작가 자신의 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런데, 황경신의 글 스타일이 그런 것인지, 그녀는 어떤 하루의 기록을 때론 시로, 때론 에세이로 채워 나간다.
"가끔 우연히 만나도 괜찮은 사람은/ 또 우연히 만날지도 모르지만 / 우연히 만나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 어제 안에 두고 온 무엇인가를 / 잊어도 좋은 건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
빛으로 색이 바래듯 / 시간으로 기억이 바랜다. / 그러니 먼 훗날 누눈가 내게 / 왜 잊었느냐고 묻는다면 / 아마 이렇게 대답해야 하리라 /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 " (어제 중에서)
" 자라나는 것은 아름답다 / 아름다운 것은 쓸쓸하다 / 쓸쓸하다는 건 무언가를 그리워 한다는 것이다//
그리움은 저 홀로 자란다 / 쓸쓸하게 무심하게 //" ( '쓸쓸하게 무심하게' 중에서)
" 꽃을 / 따는 /마음이 / 아니라 // 나무를 / 심는 / 마음이었으면 // 우리의 / 시간은 // " ('우리의 시간은' 중에서)
가을을 지나 겨울로, 겨울을 지나 봄으로, 봄을 지나 여름에 이르기 까지의 밤 열한 시의 이야기이다.

얼핏 생각하면 누구에게나 같을 듯한 것들이지만, 교차하는 듯한, 정반대인 듯한 그런 시간들, 아니 그런 삶들에 대해서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