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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당신 - 알츠하이머와 함께한 어느 노부부의 아름다운 마무리
올리비아 에임스 호블리젤 지음, 김정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알츠하이머, 현대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병, 끔찍한 재앙이 찾아 왔다고 해야 하는 병.
누군든 이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병이 알츠하이머 병이다. 건강하다고, 학식이 많다고, 생각을 많이 한다고 안 걸리는 병 또한 아니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홉은 쾌활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미국인이다.
홉이 72살이 되던 어느날, 그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된다. 홉과 그의 아내인 올리비아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 앞에서 이걸 절망이 아닌 두 사람에게 찾아온 운명, 선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절망을 헤쳐나간다.
어떤 일이 그들에게 닥쳐 왔느냐 (그들의 의지로 할 수없는 일)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그들이 할 수 있는 일)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알츠하이머는 병의 특성상, 상황이 점점 나빠질 수 밖에 없기에 그 과정마다 그들이 어떻게 대처하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책 속에 실려 있다.
조금씩 잊혀진다는 것, 그건 삶의 마지막 장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죽음을 말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마음은 아프지만 그들은 그것까지도 삶이 주는 기회이자 경이로운 은총, 숨겨진 축복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이처럼 홉과 올리비아가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불교와 명상을 통해서 그들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 부부의 첫 번째 선불교 스승이 우리나라의 숭산 스님인데, 불교에서의 선문답을 통해서 '오직 모르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며, '내려놓기'의 의미도 간파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 홉과 올리비아가 약 6년간에 걸쳐서 알츠하이머에 대처하는 이야기가 섬세하고도 간결한 묘사와 성찰을 담은 글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시간이 경과하면서 홉이 느끼게 되는 무엇인가 일상 속에서 자꾸 빠져 나가는 듯한 것들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보살펴 주어야 하느냐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다.
"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리 자신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 (p.229)
책 속의 내용 중에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러 간 홉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동안 익숙하게 강의했던 주제였건만.
들고 있던 메모 조차도 어떤 뜻인지 알 수 없는 상형문자에 불과하니, 그 때의 암담함은 어떠하였겠는가.
다행히도 강의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명상의 동작들은 생각이 나서, 자신의 병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그 동작들을 가르쳤던 경험도 있다.
언어유희를 즐기는 홉은 그의 '단어창고'가 차츰 차츰 비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어떤 날은 잠시 전까지도 멀쩡했던 언어들이 갑자기 모두 사라져 버리고, 무의미한 음절의 나열로 변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 그 위기를 얼마 후에 넘기기는 하지만, 그의 지적 능력은 이렇게 사라져 가고, 이 과정은 그들에게 충격과 고통의 연속이 된다.
일상과 비일상, 감각과 무감각 사이를 오가면 쉴새없이 뒤바뀌는 현실에서 사는 것이 알츠하이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점점 그 강도가 강해지는 상실을 경험하면서 환자와 보호자가 느껴야 하는 상실감,
그래도 홉은 알츠하이머 단계 중에 중후반 무렵에 세상을 떠난다.
" 가장 힘들고 끔찍한 시기에는 교훈과 숨겨진 보물들이 있다. " ( 책 속의 글 중에서)

핵가족화가 된 우리의 가정에서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된다면, 보호자가 어떤 방법으로 환자를 돌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에 관련된 내용만 간추려서 정리해 놓았다.
알츠하이머 앞에서 그들의 명상 수승인 티티의 말처럼, " 그 병을 축복으로 여기세요" 하는 말을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죽음이란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어둠 속에서 절망 대신 알츠하이머를 두 사람에게 찾아온 운명으로 받아들인 홉과 올리비아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