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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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신드롬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도 나타났다. 일본에서 출간 7일만에 100만부가 팔려 나갔으니...

어느해 보다도 지리한 장마가 계속되는 이 여름에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서점가를 뜨겁게 달구는 '정유정'의 <28>'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그리고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따돌리고 베스트 셀러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라면 습관적으로 읽게 되니 이 책 역시 벌써부터 책장에 꽂혀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며칠 전에야 읽게 되었다.

<1Q84>의 강한 흡인력에 이끌려 1권에서 3권이 출간될 때마다 기다렸다가 밤을 지새워가면서 읽었던 것에 비하면  이 책에 끌리는 정도가 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Q84>1권과 2권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상상력은 그만의 색채를 가진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거기에 어떤 독자들도 예감할 수 없는 결말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긴 여운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1Q84>3권에서는 1권과 2권에서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이야기들을 너무도 친절하게 풀어나가면서 이야기의 전개가 뒤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독자들은 끝나지 않은 듯한 <1Q84>의 이야기가 4권으로 이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너무 큰 기대를 했기 때문인지 <1Q84>3권은 나에게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채 끝나버린 하루키의 소설이다.

그후에 '무라카미 라디오 3부작' 중에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무라카미 하루키 ㅣ 2012ㅣ 비채>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무라카미 하루키 ㅣ 2013 ㅣ 비채>를 읽으면서 소소한 일상 속에서 하루키다운 사색과 위트를 느낄 수 있었다.

<1Q84>이후 3년만에 발표된 하루키의 장편소설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제목부터가 눈길을 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는 학창시절 5명의 친구들과 그룹을 이루었다. 그런데, 다자키 쓰쿠루를 제외한 2명의 여학생과 2명의 남학생의 이름에는 색깔이 들어 있었다. 아주 사소하고 우연한 공통점이다.

아카마쓰 게이 (赤松慶) -  아카 -미스터 레드

오우미 요시오 (靑海悅夫)- 아오 - 미스터 블루

시라네 우즈키 (白根柚木)- - 시로 -미스 화이트

구로노 에리 (黑?惠理) - 구로 - 미스 블랙

그러나 다자키 쓰쿠루의 이름 속에는 색깔이 들어 있지 않아서인지 미묘하게 그들로부터 소외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 인간에게는 제각기 자신의 색깔이 있어서 그게 몸의 윤곽을 따라 희미하게 빛나면서 떠올라. 후광처럼, 아니면 백라이터처럼. 내 눈에는 그 색깔이 뚜렷이 보여." (p. 108)

고등학교를 마치고 4명의 색깔을 가진 친구들은 고향인 나고야에 있는 대학을 갔지만, 쓰쿠루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고향에 간 쓰쿠루는 색깔을 가진 친구들로부터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앞으로 절대 전화하지 마라'는 절교 선언을 받게 된다. 존재를 부정당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동안 쓰쿠루는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어떤 이유로 자신이 친구들로부터 거부당했는가를 알지 못한 채로...

20살 여름을 경계로 쓰쿠루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대학 졸업후 그가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일인 역(역과 관련된 건축분야의 일)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36살이 되어서야 그의 여자친구의 권유로 잃어버린 과거(지난 날 자신이 친구들로부터 거부당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를 찾기 위해서 순례 여행을 떠나게 된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쿄에서 과거의 이야기가 숨어 있는 나고야로, 그리고 또 한 친구를 찾아서 핀란드의 호반 도시 헤멘린나로, 그리고 다시 도쿄로...

잃어버린 시간들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었을까?  진실이 아닌 줄 알면서 암묵적으로 그를 배척했던 친구들로 부터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쓰쿠루 자신만 상처를 안고 살았는 줄 알았지만, 그 친구들도 쓰쿠루처럼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장소를 찾아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 책의 이야기는 '색채'와 '순례'라는 소재를 통해서 상처를 간직하고 살기 보다는 그것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치유가 됨을 일깨워준다.

"난 이렇게 생각해. 사실이란 모래에 묻힌 도시 같은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래가 쌓여 점점 깊어지는 경우도 있고, 시간의 경과와 함께 모래가 날아가서 그 모습이 밝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  (p. 229)

순례라는 단어가 좀 거창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을 읽다보면 왜 순례라는 단어를 썼는가 하는 의문이 풀리게 된다. 쓰쿠루의 인생에 있어서 그만큼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상실에 대한 치유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쓰쿠루가 순례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던 아픈 상처들이 알알이 박혀서 빠져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쓰쿠루도, 그리고 그의 친구들도....

" 인생은 복잡한 악보 같다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16분 음표와 32분 음표, 기묘한 수많은 기호,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시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을 올바르게 해독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설령 올바르게 해독했다 하더라도, 또한 그것을 올바른 음으로 바꿔 냈다 하더라도 거기에 내포된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리란 보장도 없다. 사람의 행위는 왜 그렇게 복잡하게 엉켜야만 하는 것일까? " (p. 404)

이 소설 속에는 하루키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의식 세계가 몽환적으로 펼쳐진다. 인간의 의식 속에는 무의식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1Q84>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흘렀듯이,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로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는 리스트의 <순례의 해>가 작품 속에 흐른다.

리스트의 <순례의 해>를 들어 본 적이 없기에 그 음율이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가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음악들을 들어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하루키의 소설로 유명해지는 음악들이 있다.

상실의 시대의 <노르웨이의 숲>처럼.

누구든 무거운 짐은 싫어하죠. 그렇지만 어쩌다 보면 무거운 짐을 가득 끌어 안게 됩니다. 그게 인생이니까. 세 라 비 (C‘ est la vie)" 그리고 다시 즐겁게 웃었다.  (p. 294)

 

20살 청춘에 겪었던 알 수 없었던 사건때문에 16년이 지난 날까지 쓰쿠루의 등에 달라 붙어 있었던 짐. 그건 그때 그 순간인 과거 속의 네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 할 수 있을 때에만 내려 놓을 수 있었던 무거운 짐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덮으면서 나도 역시 과거 속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 본다.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구차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한낱 자존심때문에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지나쳐 온 그 날의 기억.

쓰쿠루의 등에 달라 붙었던 짐 보다는 한참 가벼운 짐이지만, 가끔은 그 의문을 풀지 않고 온 것에 대한 후회가 뒤따랐었다.

지금은 너무 멀어져 버렸기에 쓰쿠루처럼 순례여행을 떠날 순 없지만, 그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

그게 인생이니까. 세 라 비 C‘ est la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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