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녕, 내 모든 것>의 작가인 '정이현'은 신문 연재소설이었던 <달콤한 나의 도시> (2006)로 잘 알려져 있다. 서른 살을 갓 넘은 직장 여성의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같아서 20~30대 여성들에게 큰 공감을 주었던 재기발랄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나는 <달콤한 나의 도시/정이현 ㅣ 문학과지성사 ㅣ2006>보다는 <너는 모른다/ 정이현 ㅣ문학동네 ;2009>가 작가가 더 세심하게 공들여 쓴 흔적이 묻어나는 소설이다. 

그래서 작가의 치밀한 구성과 문장력은 빠르게 작품 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전제적인 이야기의 구조는 '부모의 잘못된 결혼에 의한 자녀들의 문제, 화교문제, 장기밀매, 실종사건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 조차 나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관심이 없는 너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나는 너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족에 대한 생각 조차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을 꼬집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안녕, 내 모든 것>은 어쩌면 <너는 모른다>의 연장선 상에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그만큼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들의 가정도 원만하지 못한 문제투성이의 가정이기도 하고, 붕괴 직전의 가정, 아니 부모가 자식을 나몰라라 내 팽겨치고 자신의 행복만을 쫒아간 경우도 있다.

소설의 첫 문장은,

" 김일성이 죽었다. 1994년 7월 9일 정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김일성 주석이 7월 8일 새벽 2시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p. 12)로 시작한다.

정이현의 단편소설 중에 <삼풍 백화점>이 있는데, 삼풍 백화점의 붕괴사건이 너무도 충격적이었기에 당시의 TV 화면 중의 일부가 그대로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작가에게 1990년대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안녕, 내 모든 것>의 시대적 배경이 바로 이 싯점이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지존파가 연쇄 살인사건으로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대구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가 폭발하고,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1990년대 중반.

1990년대 중반, 열일곱 살 고교생인 세미, 지혜, 준모가 겪게 되는 이야기가 소설을 이루게 된다. 성장소설을 읽게 되면 나오는 그런 불편한 진실들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책의 상당 부분을 읽기까지는 그리 새롭다거나 깊이가 있다거나 하는 생각은 접어두고 읽어내려가게 된다.

속물스러운 군상들의 이야기는 물론 주인공의 부모를 비롯한 그들의 가족 구성원을 통해서 전달된다. 강남의 산다 하는 사람들의 겉다르고 속다른 삶의 모습이 세 명의 주인공의 뒷 배경이 된다.

세미의 부모는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하였다. 기업체를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세미의 엄마였기에. 세미 엄마는 다단계 사업으로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미국으로 날라 버린다. 세미 아버지는 세미를 할아버지 댁에 맡기고 새로운 여자와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지혜는 겉으로는 지적인 교수 부부의 딸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부모 역시 가정 불화로 싸움이 끝날 날이 없다. 

준모는 뚜렛 장애를 가지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 나오는 욕설, 초등학교 시절에 보이 스카웃 야영에서 당하게 되는 성추행으로 인하여 생긴 현상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재난이 끝날 줄 모르고 일어나던 1990년대 중반의 도시의 사건과 풍경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듯하다.

겉보기에는 행복한 듯한 강남의 중산층이 토해내는 각종 불썽사나운 풍속도가 지금이나 그때나 그리 다르지는 않은 듯이 느껴진다.

흔히 볼 수 있는 성장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기에 그리 새롭다는 생각이 없이 읽게 되는 중반까지의 이야기이지만, 소설 후반부에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해서  그들이 공유하게 되는 비밀이 이 소설을 돋보이게 한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들의 성장통을 종지부 찍는 의미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아픔이고 지울 수 없는 사건이었기에 그로 인하여 겪어야 했던 고통은 그리 쉽게 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힘겨운 날들도 먼훗날에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겠지만, 그 일만은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 고통으로 점철되는 기억일 수 있는데....

" 세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세미, 준모, 지혜. 맞서 싸울 절대악 조차 없는 속되고 불확실한 세계. 가만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그들의,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 틈. 내게 베푼 그들의 관용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이제 잠시 부풀어도 좋은 시간이다. " ( 작가의 말 중에서 )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열일곱 살은 어떤 기억들이 남아 있을까?

또한 우리들은 1990년대에 대한 어떤 기억이 남아 있을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