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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 박범신 작가가 '아침마당'에 나왔다. 작가의 최신작인 <소금>에 관한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들려 주었다. 논산으로 내려간 작가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인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ㅣ 은행나무 ㅣ 2012>를 읽으면서 영원히 '청년 작가'로 남을 것만 같았던 작가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조만간 새로운 소설로 독자들을 찾아오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은교>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의 갈망'이 인상적이었는데, <소금>에서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그려진다. 특히 중년 이상의 아버지들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어쩌면 시어머니에게 시달림을 받고,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자식들에게 따돌림 당하던 어머니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가정에서 소외당한 아버지들이 메우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리의 가정을 살펴보면 어머니의 위상은 전보다 훨씬 높아졌지만, 아버지의 존재는 가정 안에서 갈 곳이 없다. 책 속의 몇 몇 문장들은 너무도 리얼하게 오늘날의 아버지들을 대변해 준다.
"아버지에게도 푸르른 청춘이 있었을까"
"아버지의 소소한 일상조차 상상한 적이 없는 있어도 없는 듯한 아버지"
" '치사해 치사해' 독백하며 산 아버지."
" 껍데기만 남은 공룡의 모습"
심지어는
" 어머니는 일종의 자본가였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세 자매의 몸종이나 청지기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p. 97)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꼭 둘로 나눠야 한다면,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가출하기를 꿈꾸는 아버지로 나눌 수 있었다.”(p.150∼151)
작가의 말처럼 선명우는 '붙박이 유랑인'으로 밖에 살 수 없었기에 가출할 수 밖에 없었다. 막내딸의 생일날 아버지는 집에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 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버지를 10년 동안 찾아 다니던 시우와 이혼을 하고 고향에 내려온 시인의 만남으로부터 이 소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인은 선명우의 막내딸인 시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강경 옥녀봉 꼭대기 소금집의 김승민이 그녀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선명우가 김승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 그녀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학창시절 이야기, 첫사랑이야기, 아내와 결혼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아내와 세 딸을 위해서 살아왔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 소금은, 모든 맛을 다 갖고 있다네, 단만, 신맛, 쓴맛, 짠맛. 단 것, 신 것에 소금을 치면 더 고 더 시어져. 뿐인가, 염도가 적당할 때 거둔 소금은 부드러운 짬 낫이 나지만 32도가 넘으면 쓴 맛이 강해. 세상의 모든 소금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맛이 달라. 소금에 포함된 미네랄이나 아미노산 같은 것이 만들어 내는 조화야. 사람들은 단맛에서 일반적으로 위로와 사랑을 느껴, 가볍지, 그에 비해 신맛은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고, 짠맛은 뭐라고 할까. 옹골찬 균형이 떠올라. 내 느낌이 그러하든 거야. 쓴 맛은 그럼 뭐냐. 쓴맛은,어둠이라 할 수 있겠지. 내가 왜 이 겨울에 혼자서 나와 소금밭을 까뒤집고 있다고 생각하나?" (p. 133)
그렇다. 이 소설에는 소금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맛처럼, 아버지 인생의 맛인 짠맛, 신맛, 단맛, 쓴맛, 매운맛이 모두 담겨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의 초라한 모습을 생각했다면, 박범신의 <소금>을 통해서는 우리시대 아버지의 자화상을 읽을 수 있다.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가족들에 의해서 단물만을 빼앗기고 가정에서는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았가는 아버지들을 생각하게 해 준다.
그래도 아버지 선명우는 과감하게 가출하여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아버지의 가출 후에 붕괴되는 가정의 모습을 보면서 자본주의가 일군 가정의 최후를 보는 듯하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가정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리고 아내들도 남편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