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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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작품으로는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우울을 넘어 상처로 뒤범벅이 된 사람들이다. 소설의 상당 부분을 읽을 때까지도 어떤 내용이 전개될 것인지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불분명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소설의 내용이 이야기 위주라기 보다는 심리 묘사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였는데, 영아원에 있다가 마음 착한 부부에게 입양이 되지만 그들의 포기로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는 베란다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그사람' 이 구해준다. 그리고 어려울 일이 있을 때마다, 힘겨울 때마다 '나'를 붙잡아 주던 '그 사람'이 있다. '그사람'은 '나'를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사람이자, '나'를 교도관이 되게 한 힘이기도 하다.

'나'는 구치소에 들어온 살인범 '야마이'를 만나게 되고, 그는 18살이 몇 달 지났기에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 소설은 '나'와 '야마이'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나'의 자살한 보육원 친구 '마시타'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세상에 홀로 떨어진 보육원 아이들의 이야기는 부모들의 모책임한 행동이 그들의 자녀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얼마나 힘겹게 살아 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 준다.

이 소설은 '나'와 '야마이'의 이야기와 함께 '나'의 자살한 보육원 친구 '마시타'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이 소설은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이 얼마나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해주기도 한다. 그밖에도 '부모들의 행동과 역할' '범죄에 대한 인식' '소외된 계층에 대한 배려', '사형제도의 존폐여부' 등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준다. 이 소설은 별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작가가 세상을 향해서 그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하는가를 파악한다면 꽤 의미깊은 소설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읽게 된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왕국>은 사기 매춘으로 세상의 권력있는 자들을 무너뜨리는 유리카의 이야기이기에 전체적인 소설의 배경이 어둡고 칙칙하고 혐오스럽기도 하다.

앞에 소개했던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의 주인공들처럼 창녀인 유리카나 하세가와 등도 아동시설 출신이다. 누군가에게 입양되었다가 파양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는 어린 시절이 있는 자들이다.

유리카가 하는 일은 야다의 지시에 따라서 매춘을 가장하여 어떤 상대방을 만나게 되지만, 매춘이 목적이 아닌, 그녀가 만나는 사회적 유명인사들의 약점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서 사진과 동영상에 담아 사회적으로 파멸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성적인 수치심이 느껴질 수 있을 만한 증거를 담아 넌지시 야다에게 넘겨 주는 일이 그녀의 일이다.

유리카가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보육원에서 만난 언니인 에리가 죽은 후에 남겨진 아이인 쇼타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쇼타는 심장이식 수술을 해야 했기에 많은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속절없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후에도 유리카는 사기매춘을 하면서 세상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배신을 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게 된다.

세상의 운명을 가차없이 비웃게 만드는 유리카, 유리카에게 그런 일을 시키는 야다, 유리카를 '전설의 창녀'로 회자되도록 상황을 조작하려는 의도를 가진 기자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야다와 기자키의 틈바구니에서 둘 중에 어느 편에 붙는 것도 위험하다면 어느 편에도 붙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운 유리카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가 이 소설의 중반 이후의 궁금증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유리카가 하는 일이나 붉은 달의 등장 등은 다분히 두 소설을 모두 읽은 독자라면 연상되어지는 장면들이다.

달이 상징하는 이미지가 무엇인가는 명확하게 소설 속에서 찾아 낼 수 없었지만, 소설 전체에 널리 퍼져서 신비한 빛을 발휘하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로, '인류 최초의 직업이 매춘이었고, 그 다음이 소매치기였다'는 말을 듣고 그 두 가지를 결합한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그 첫 작품이 <쓰리>였고, 그 다음에 쓴 작품이 <왕국>이라고 한다. 두 소설은 각 장의 수가 같고, 페이지 수도 2페이지 밖에 차이가 안 난다고 한다. 먼저 쓴 <쓰리>의 자매편이 <왕국>이니, 그 작품을 같이 읽으면 좋다는 말을 덧붙인다.

두 작품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은 '기자키'인데, <쓰리>에서는 소매치기 '니시무라'의 운명을 거머쥔 인물로 신적인 쾌감을 맛보는 자이고, , <왕국>에서는 매춘 여성 유리카의 운명을 거머쥔 인물로 악을 상징하는 자이다. 어쩌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의 두 모습을 한 인물에서 느끼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지만, 아직 <쓰리>는 읽지 않았기에 더이상의 설명은 할 수가 없다.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게 언제쯤이었을까. 지금도 나는 그것을 갖고 싶은 것일까. 만일 그것이 내 손에 들어온다면 무엇을 할까" (p. 203)

<왕국>은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소설 중에 두 번째 읽게 된 작품이지만, 처음부터 몰입이 잘 되지 않아서 상당 부분의 이야기가 진행될 때까지 쉽게 읽히지 않은 소설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 소설을 "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누아르는 독자로 하여금 배신감이 들지 않게 하면서도 끝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가운데 감성소설에서 철학적 스릴러로 변형시킨다" 는 찬사를 보내지만, 내가 읽기에는 그 의미를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소설이다.

아무래도, 내가 즐겨 읽는 소설과는 취향이 좀 동떨어진 소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소설이 궁금하다면 <쓰리>와 함께 읽어 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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