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오디세이 - 억새야 길을 묻는다
배성동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가 본 곳 중에 가장 오지는 평창에 있는 황병산이다. 오래전 대학에 다닐 때에 독일인 교수와 함께 답사를 갔던 곳인데, 가던 중에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어 다시 찾곤 했던 산이다.

당시에 그곳에는 화전민의 집터가 몇 군데 남아 있었다. 무심히 지나친다면 화전민의 집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겠지만, 교수님은 몇 번의 답사를 통해서 이곳을 찾아 냈고, 그 곳이 정말 화전민의 집터였음을 알려 주기 위해서 집터의 한 구석에 난 구멍에 불을 지펴 보여 주었다. 그러자 얼마 후에 반대편의 구멍을 통해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였는데, 그것이 바로 화전민이 불을 지피면 방안이 따뜻해지게 되는 온돌의 원리인 방고래를 보여 주신 것이었다.

가을날, 여기 저기 억새들이 춤추고 낙엽이 떨어지던 그곳은 엄청 추워서 파카를 뒤집어 쓰고 황병산을 오르던 그 때의 생각이 어렴풋하게 난다.

이번에 읽게 된 <영남알프스 오디세이> 속에 나오는 그 어떤 곳에서도 이런 화전민의 집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영남알프스 오디세이>는 여행자를 위한 여행 에세이는 아니다. 이 책의 저자가 20년 넘게 영남알프스 일대를 돌아디니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비교적 닿지 않은 옛길, 오래된 길, 오지 마을의 풍경을 담고, 그곳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어떤 곳의 풍취가 아름답다고 하면 떼를 지어서 몰려가 그곳의 자연을 훼손해 버리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곳이다. 너무 산이 깊어서 호랑이를 비롯한 산짐승들이 나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고, 숯을 굽던 숯가마터가 아직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떤 오지 마을에서 만난 노인네들은 그들이 이곳에 살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한다.

산짐승이 울어대는 새벽녘에 장에 내다 팔 물건을 머리에 이고, 등이 짊어지고 장이 열리는 마을까지 갔다가 별을 보면서 허기진 배로 이 산을 오르 내렸었던 기억을 들려준다.

너무 깊은 산이기에 빨치산들이 숨어 있던 곳이기도 해서, 전쟁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첩첩산중, 꼬불꼬불 옛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순박해서 웃는 얼굴이 그 어떤 사람보다 아름답기도 하다.

간월산에는 죽음의 계곡, 저승골이 있다. 이 곳에 들어가려는 저자를 말리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 들어가는 사람은 봤어도 나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소" 한다. 이곳은 옛날 고려장을 하던 곳이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굶주림에 어찌 할 수 없는 아들은 늙은 부모를 지게에 짊어지고 이곳에 갔다 버리면, 기력이 쇠한 노인네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었던 골짜기라고 한다.

영남알프스를 찾아 다니다 보면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고, 빨치산이 숨어 지내던 터도 보이기도 하고, 빨치산을 토벌하던 국군이 쏘아 대던 박격포로 손상이 된 큰 바위들도 눈에 띄는 곳이다.

오지마을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 내사 지긋지긋해서 생각도 하기 싫소, 당신에게는 오지마을이 단지 여행이지만, 살림하는 여자에게는 지옥 같은 곳이요. 짐승 우는 산골의 밤은 왜 그리 암흑천지인지 못 살아요. (...) 겨울에 빨래를 하려면 꽁꽁 얼은 웅덩이 얼음을 깨야지. 여름이면 청이끼 낀 개울에 뱀이 바글바글 놀지. 생지옥이 따로 없어요." (p p. 282~283)

억새가 너울 너울 춤추고, 깊은 산골에는 운치가 넘쳐 흐르는 한폭의 그림과 같은 오지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이 책은 영남알프스의 이곳 저곳을 소개해 준다. 그러면서 그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각종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이런 곳들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영남알프스의 여러 곳의 풍경과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는 배성동이 구름따라 바람따라 발길 닿는 대로 찾아다니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이 책 속에 담아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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