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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배수아라는 작가 이름은 익히 들어 왔지만, 이제까지 그녀의 작품은 한 편도 읽지를 않았다. 익숙한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취향을 알기에 읽기가 편하지만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은 어느 정도 책읽기가 익숙해져야만 진도가 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그런 경향이 짙은 작품이다. 이제껏 작가의 작품 경향을 알지 못했기에 이 책의 몇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는 평이한 소설처럼 느껴졌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몽환적인 소설이다.
200 여 페이지에 달하는 그리 길지도 않은 한 편의 소설을 읽기에 지쳐서 작가를 검색해 보니, 그녀의 작품은 이 책처럼 그리 쉽게 읽히는 그런 이야기들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3년에 <소설과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데뷔를 하게 된 <천구백팔십팔년이 어두운 방>은 '포스트모선 소설의 새로운 전범을 선보였다'는 평을 받았고, 장편소설인 <서울의 낮은 언덕들>은 에세이형 소설이라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아야미, 여니, 부하킴, 극장장 등의 인물이 등장하고, 오디오 극장의 폐관, 독일어 선생이 아야미에게 한국을 찾아 오는 시인을 맞아 달라는 부탁, 부하킴이라는 약을 배달하는 사람의 이야기, 자기의 일자리도 구하지 못할 형편이면서 아야미의 직장을 걱정하는 극장장의 이야기 등이 소설 속에서 같은 이야기인 듯, 다른 이야기인 듯 반복되면서 펼쳐지기도 하고, 약간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펼쳐지기도 한다.
이 책은 모두 4장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데, 각 장마다의 이야기가 다른 장에서는 알 듯, 모를 듯한 아리송한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실체들에 대한 생각, 그리고 미쳐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이야기를 소설가 김사과의 '꿈, 기록'이란 글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 네 가지 장에 걸친 이야기는 그물처럼 온 사방에 연결되어 있어 이야기에 진입한 독자가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여니의 존재가 그러한데 그녀는 극장장이 아야미에게 소개시켜준 독일어 선생이자, 부하라는 남자가 약을 배달하는 고객이자, 밤마다 부하가 전화를 거는 이름 모를 상대이지 한편 오디오 공연장 낭손극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또한 그녀는 독일인 소설가 볼피가 만나기로 예정된 여자이자, 반복해서 걸려오는 전화에 아야미가 대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 반복되고 변형되는 여니에 대한 묘사는 마치 수수께끼처럼. 그러니가 덤벼들면 풀 수 있는 과제처럼 다가온다. 왜냐하면 각각의 단서들이 퍼즐의 조각가 같은 외양을 한 채 사방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퍼즐이 아니다. 퍼즐처럼 보이는 덫이다. 이 소설은 독자가 소설 속 이야기의 길을 따라 걷다가 마침내 작가가 설정한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이 이야기 속에, 다시 말해 길 위에 영원히 머물기를 원한다. " (p. 207 : 소설가 김사과의 글 중에서)
솔직히 이 소설은 읽은 후에도 내가 읽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꿈 속에서 헤매다가 일어났을 때에 꿈 속의 이야기 중의 어떤 부분은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지만, 그중의 일부분은 잘 생각이 안 나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꿈은 꿈 속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형성하지만, 꿈 밖에서는 아리송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알송 달송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과 같은 그런 이야기라고 표현해야 할까.
내 취향과는 맞지 않는 소설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으려는 마음이 선뜻 들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