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포인트의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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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망설임없이 읽을 수 있다. 그건 그동안 읽었던 소설들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대부분의 소설은 200쪽 안팎의 짧은 이야기들이고, 작품 속의 배경을 아름답게 표현하기에 책을 읽으면서 어떤 풍경을 연상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작가는 잊을 만하면 한 작품을 선보이고, 또 잊을만하면 한 작품을 선보이기에 꾸준히 그의 작품을 읽게 된다.

2012년에 출간된 <막다른 골목의 추억>은 그녀의 소설 주인공들이 그렇듯이 마음 속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5편이 실려 있었다.

불행한 가정사, 성장기에 당한 치명적인 사건,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 그런 것들이 가슴 속에 남아 있어서 치유가 안된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연히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에 느끼게 되는 막막함. 그러나 그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길을 찾아 나갔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쓴 소설의 특징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저 담담하게 세상을 살아가지만 가슴 속에는 응어리가 남아 있고, 그 아픔은 천천히 치유되어 가는 모습을 잔잔한 터치로 다룬다.

<사우스포인트의 연인>도 출간소식과 함께 어느새 내 손안에 들어와 있는 책이었다. 큰 감동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너무도 익숙한 캐릭터와 이야기의 전개가 비슷비슷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또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읽게 되는 책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들이다.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라서 독립하여 자신의 일을 하는 딸의 이야기, 카페를 할 수도 있고, 작은 레스토랑를 할 수도 있고... 그리고 떠나간 사랑에 대한 못견딜만한 그리움은 아니지만 가끔은 생각나는 그런 그리움...

역시, <사우스포인트의 연인>도 그 틀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또다른 새로운 소설이다.

이 소설은 내가 읽지 않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인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후 15년만에 그 후일담을 쓴 소설이다. <하치의 마지막 연인>의 주인공들의 아들이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의 남자 주인공인 다마히코이다.

테트라는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고, 빚쟁이에 몰려서 엄마와 함께 야반도주를 한다. 그때 자신의 남자친구인 다마히코에게 한 장의 편지를 전하게 되고, 군마에 자리를 잡은 후에 서로 만남을 가진다.

그러나 다마히코 엄마의 개방적이고 글로벌한 성격탓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하와이에 모여 살게 되면서 그들은 이별을 한다.

다마히코 엄마와 테트라의 엄마는 모두 가정보다는 자신의 삶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아가는 자유분방한 성격이지만 그 기준은 완연하게 다르다.

다마히코의 엄마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남편이 곁에 있으면 그 강한 빛이 거슬려서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사람이고, 테트라의 엄마는 힘든 일이 있으면 즐거운 일로 기분을 돌려 버리는, 사람으로 주위 사람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이다.

테트라는 말만 가족이었지 문제투성이인 가정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들, 가정에서 얻을 수 없었던 사랑을 마히코와 그의 엄마, 기요 아저씨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

다마히코가 하와이로 간 후에도 자연스럽게 서로 연락이 끊기게 된다. 테트라는 주문제작을 하는 퀼트 아티스트로 일을 하는데, 어느날 우연히 자신이 다마히코에게 야반도주하면서 보냈던 글귀가 우클렐라의 가사로 쓰여져서 들려오는 것을 듣게 된다.

수소문끝에 우클렐라를 연주한 사람이 다마히코의 동생이라는 사실과 다마히코는 백혈병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의 동생이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이다.

다마히코의 동생을 통해서 하와이의 사우스포인트에서 그의 엄마 마오와 아빠인 하치의 사랑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테트라는 죽은 다마히코를 위한 퀼트 제작을 위해서 하와이에 가게 되고, 마오와 하치가 사랑을 이루었던 사우스포인트에서 다마히코와 그의 동생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되고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데...

사우스포인트는 하와이섬 남쪽 끝에 깎아 지른 듯한 절벽인데, 온갖 색깔이 존재하는 이 세상의 끝같은 장소이다. 그 곳에서 우연히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운명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확률이 아닐까.

마오와 하치가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던 곳인 이곳에서 그들의 아들이 첫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는 확률도 운명적인 만남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사랑은 숙명적으로 찾아 올 수도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다마히코가 아닌 유키히코의 엷은 그림자라면, 그 곁에 있는 테트라도 그 옛날의 테트라의 유령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첫사랑이란 만날 수 없을 때에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 나는 이곳에서 어디에소 없는 유럽으로 괴로움을 안은 채 살아가겠지,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이 섬이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게 하는 마술을 부릴 뿐이다. 그 결심은 파도처럼 밀려왓다. 밀려가면서 점점 커졌다. " (p. 212)

이 소설은 중간에 어떤 트릭이 있기는 하지만, 그 트릭이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더 명확하게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꽃을 좋아하나보다. 자신의 필명이 열대지방에서 피는 붉은 바나나 꽃을 좋아해서 '바나나'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는 레후아꽃이 나온다.

(자료검색 : daum 이미지 검색에서 - 바나나꽃)

(자료검색 : daum 이미지 검색에서 - 레후아꽃)

" 응, 레후아 꽃은 칼라우에아 언저리에서 보는 게 최고니까 보러 가자, 빨간색이 검은 지면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몰라, 빨간 새의 깃털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나 싶게 여기저기 피어 있어. " (p. p. 212~213)

최근 출간된 책 중에 <문학 속에 핀 꽃들/ 김민철 ㅣ 샘터사 ㅣ 2013>이 있는데,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꽃 이야기라고 한다. 이 책 속에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 속의 꽃을 찾아 넣어도 좋을 듯하다.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들, 그러나 그 속에는 사랑이 있고, 이별이 있고, 아픔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조용히 치유해 가는 주인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즐겨 읽는다.

이 소설은 <하치의 마지막 연인>의 후일담이기에 함께 읽어도 좋지만, 꼭 안 읽어도 이 책을 이해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리고 하와이를 그렸다는 점에서는 <환상의 하와이>와 함께 읽어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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