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들이 떴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0
양호문 지음 / 비룡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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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은 중학교 성적에 의해서 인문계 고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로 나누어져 입학하여야 할 때일 것이다.

물론, 자신의 진로를 일찍 결정한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앞날의 멋진 목표를 향해서 한 발자국 먼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만, 이 책 속의 내용이나 일반적인 통념에 의해서 본다면 인문계에 진학할 성적이 안 되는 학생들이 마지못해 선택하게 되는 고등학교이기도 하다.

<꼴찌들이 떴다 !>는 춘천의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생인 호철, 재웅, 기준, 성민. 네 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성장소설이다.

청소년 문학상인 '제2회 블루픽션 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기대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다른 청소년 소설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소재가 신선하면서도 생동감을 갖는 소설로 만들어 준다.

흔히 청소년 소설은 학교 생활 부적응자, 왕따문제, 그리고 그런 원인을 가정에서 찾는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이 소설에서는 실업계 고등학생들의 현장실습이라는 과정과 경제적으로 낙후해가는 외딴 마을과의 연계가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계기를 갖게 해 준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앞둔 시점에,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는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들이 대다수이기에 학교 수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고, 현장실습을 나가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이다. 호철을 비롯한 4인방은 학교 성적은 바닥이요, 자격증 하나 없으니, 현장실습은 나가지도 못하고, 아침이면 늦게 피씨방에 들렀다가 점심이나 먹기 위해서 학교에 들렀다가 돌아오곤 한다.

그런 그들에게 원주에 있는 공장에서 월급 90만원의 현장실습 제의가 들어온다. 먼저 실습을 나간 학생들에 비해서 적은 월급이지만, 그들은 감지덕지 일을 하기로 한다.

그들은 원주에서 계약서를 쓰고, 산을 넘어 어떤 마을에 도착하게 되는데, 하는 일은 송전 철탑을 세우는 터 다지기 일을 하는 막노동일이다. 읽어보지도 않고 작성한 계약서가 덫이 되어 할 수 없이 일을 하지만 견딜 수 없어서 탈출을 하다가 잡히기도 하면서 우여곡절의 생활이 지속된다.

이 소설은 시작은 청소년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기력하고 목표도 없고 꿈도 없는 학생들의 일상이 그려지지만 그 부분을 지나면 청소년 소설의 틀에서 벗어나 사회라는 큰 틀 속에서 우리들이 접할 수 있는 문제점들이 속속 노출된다.

한전의 일을 하청받은 천마산업이 원주의 아파트 신축 공사장으로 몰려간 막노동자 대신에 학생들을 현장실습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을 시키고, 그들을 계약서 작성을 빌미로 그곳에서 일을 하게 하는 것이나,

고압선 철탑을 건설 할 때에 주민들이 노인계층이라고 정확한 정보나 사전 협의없이 막무가내로 공사를 하는 일, 그리고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을 깡패를 동원해서 억압하는 일 등은 사회적인 문제들이기도 하다.

산골마을에 더덕을 비롯한 농산물을 훔쳐가는 도둑들이 기승을 부리기도 하는데, 어느날 그들이 노래방을 가기 위해서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되는 일을 계기로 철부지, 말썽꾸러기 꼴찌들은 노인들만 사는 동네를 위해서 새로운 일을 생각해 내게 된다.

인터넷을 통한 동네 카페 만들기와 직거래 장터 싸이트 만들기와 노인들을 위한 컴퓨터 수업을 하게 된다.

아직 시작해 보지도 않은 청소년들,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소외되고 외톨이가 된 청소년들. 그래서 그들은 좌절하고, 어디엔가 숨어서 지내다 보니, 그런 청소년들끼리 모이게 된다. 그들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그들에게 감겨진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치다 보니 그들은 탈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내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부모와 선생님이 원하는 길로 가야만 하는 청소년들에게는 꿈이 있을 수도 없고, 목표가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꼴찌들을 위한 꼴찌클럽을 만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4명의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무엇일까?

그놈의 '엄마 친구 아들!'

" 야, 너희들 이 세상에서 제일 공포스럽고 짜증스러운 단어가 뭔 줄 아니?" (p. 237)

" 그래! 그지, 엄마 친구 아들 !" (p. 238)

공부에는 영 젬병인 청소년들이 두메 산골 다락방에 모였으니,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기막힌 인연.

호철, 재웅, 기준, 성민, 세연, 희진, 은향.

그들이 생각해 낸 "꼴찌 클럽 !"

누구 하나 골찌에게는 관심이 없다. 무시하고 깔보고,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똑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꼴찌는 더 많이 혼난다.

어느 학교, 어느 반, 어느 동네, 어느 곳에나 일등이 있듯이 꼴찌도 있다.

세연이는 백댄서의 꿈을 가지고 있고, 희진이는 코디의 꿈을 가지고 있고, 은향이는 여군 군악대의 꿈을 가지고 있다.

그들도 호철, 재웅, 기준, 성민이나 마찬가지로 꼴찌들이지만 그들은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청소년 소설이라면 해피엔딩의 결말이 있겠지만, 전형적인 소설의 틀을 갖춘 결말은 없다.

근처 미륵암에서 고시공부를 하는 육법대사, 7번 낙방을 했다지만 두메산골 노인들이나 꼴찌들이 보기에는 대단한 법률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심상치 않은 행보...

빠른 속도로 들판길을 달려 추동리로 오는 경찰차. 경찰차는 더덕 도둑을 잡았기 때문에 이 마을에 오는 것일까? 아니면, 육법대사에게 어떤 숨겨진 사연이 있을까?

소설은 거기에서 그냥 끝나 버린다.

이 소설은 구태여 꼴찌 청소년들의 대화를 정화해서 담아 놓지도 않는다. 그들의 말씨 그대로 담아 놓는다. 어떤 이야기를 미화시켜 쓰지도 않는다. 꼴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풀어 놓기에 가정에서 학교에서 소외당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사회의 잣대로 청소년들을 바라보지 말고, 청소년들의 잣대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도록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이젠, '엄마 친구 아들'이야기는 그만 하면 어떨까, '니 형은'. '니 동생은'과 같은 형제간의 비교도 하지 않으면 어떨까.

이 소설은 소재면에서 학생들이 산골마을로 현장실습을 나가서 막노동을 하게 된다는 설정도 신선하지만, 결말 부분에서 전형적인 소설의 틀을 벗어났다는 것도 신선하다.

들판에 핀 한 송이 들꽃도 제 모습이 있고, 피는 시기가 있건을,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없을 것인가, 자신의 목표를 향해 가는 날이 없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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