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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 누구나 생애 한 번은 그 길에 선다
윌리엄 폴 영 지음, 이진 옮김 / 세계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몇 년전에 '윌리엄 폴 영'이 쓴 <오두막>을 읽었다. 주인공인 맥은 가족 캠핑을 갔다가 딸을 유괴당한다. 딸의 시체를 찾지는 못했지만 숲 속 오두막에서 연쇄살인범에 의해서 딸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는 증거만을 찾게 된다. 맥은 딸이 사라진 후에 악몽과 같은 날들을 보낸다. 사건이 일어난 후 몇 년 후에 맥은 파파(하나님)으로부터 그 오두막으로 찾아 오라는 쪽지를 받고 그곳에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성부, 성자, 성령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딸을 잃은 후, 어두운 삶을 살아가야 했던 맥이 그 아픔의 장소인 오두막에서 새로운 삶의 원천을 찾을 수 있는 치유의 이야기가 가슴아프면서도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소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전세계 46개국에서 출간되어 약 1800만 부가 팔린 이 책을 써서 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했지만 출판사마다 출간을 해주지 않았던 작품이라고 한다.
<오두막>을 읽었을 당시의 감동이 아직도 살아 있기에 작가의 새로운 책인 <갈림길>은 아무런 망설임없이 읽게 된 소설이다.
그러나 <오두막>과 <갈림길>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 예수, 성령 등의 모습이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 오던 그런 이미지와는 다른 중년의 예수, 아메리칸 인디언 할머니가 성령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오두막>에서 덩치 큰 흑인 여성이 하나님으로, 중동에서 온 노동자가 예수로, 아시아 여성이 성령으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하나님, 예수님, 성령 등이 주인공에게 깨달음을 주고 마음 속의 아픔을 치유해 준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치유되지 못한 아픔을 간직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가 죽음의 직전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야기는 미치 앨봄의 <단 하루만 더>와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갈림길>의 주인공인 앤서니 스펜서 (토니: 애칭)는 성공한 사업가로 협상의 귀재, 뛰어난 전략가이다. 40대인 그는 자신이 세운 목표는 모두 이룬 돈과 재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춘 자이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조종하면서 자만심에 똘똘 뭉쳐 살아 온 삶이 토니의 삶이다.
오죽했으면 아내와 이혼을 한 후에 다시 그 아내와 재혼을 하고, 아내에게 복수를 하듯이 다시 이혼을 할 정도로 자기 자만에 빠진 인간이다. 그런 토니가 뇌종양으로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죽음의 세계에 들어가기 직전에 겪게 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죽음이란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토니가 죽음 직전에 수많은 갈림길에 서게 되고, 그때마다 잭, 예수, 아메리칸 인디언 할머니인 성령 등을 만나게 된다.
" 토니, 진실과 반하는 사실만을 믿고, 또 그 속에서 산다면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당신은 영원히 그곳에서 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제 진실을 말씀드리죠. 당신이 진실을 믿건 믿지 않건, 그 진실이 당신에게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당신이 지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건, 당신도 결코 단절되지 않았습니다. " (p. 67)
성령은 토니에게 '죽어가는 단 하나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면서 여행을 떠나도록 한다.
토니는 그동안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볼 때에 마음에 드는 것도 애정을 느꼈던 것도 단 하나 없는 , 산산히 부서진 폐허와 같은 상실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며,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자신감있게, 아니 자만심에 잠겨 있던 그의 삶은 병들고 불쌍한 인간쓰레기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게 되는 아픔, 동생과 관계, 그리고 그에게 가장 큰 상처를 안겨 주었던 아들 가브리엘의 죽음.
" 가브리엘, 다시 널 잃을 수 없어 ! 절대로 ! "
" 아빠, 날 잃은 게 아니야. 아빠가 잃은 건 아빠야. 내가 아니야." (p. 350)
우연히도 그가 혼수상태로 입원해 있는 오리건 보건대학 중환자실에서 다운증후군 캐비의 입맞춤을 받게 되면서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따뜻한 삶의 모습을 보게 되고, 자신의 가슴 속에 응어리처럼 남아있던 상처들을 치유하게 된다. 그리고, 원수처럼 지내던 가족들과도 화해하게 된다.
<갈림길>은 '육체의 죽음이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죽음이후에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토니의 삶을 통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인가'하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은 딸이 유괴되고 살해되면서 어두운 그림자와 같은 삶을 살아가던 맥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치유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면, <갈림길>은 현재는 잘 나가는 인물이지만 가슴 아픈 가족사로 인하여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토니에게 죽음 직전에 가치있는 삶이 무엇이며, 죽음이후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지는가를 일깨워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갈림길>보다는 <오두막>이 좀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된다. 딸잃은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도 강렬하게 표현되기도 하고, 딸이 살해당한 오두막에서 아버지의 절규가 담긴 마음들이 가슴에 못으로 박히는 듯한 내용들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해서 <갈림길>은 초반부에서 중반부로 들어갈 때까지는 그리 강한 메시지가 전달되지 못하다가 후반부에 감동이 몰려오는 것이다.
<오두막>이나 <갈림길>이나 구성은 그리 다르지 않기에 <오두막>을 읽은 독자들은 '윌리엄 폴 영'의 새 작품이 다소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