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9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해 겨울이 다가올즈음에 유난히도 구제역 관련 소식이 많이 들리던 때가 있었다. 뉴스를 보는 것이 힘들 정도로 깊게 파 놓은 구덩이 속으로 떼밀려서 들어가던 가축들의 모습을 차마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살아 있는 가축들에게 가해지는 죽음을 향한 행렬에 젊은 군인들까지 동원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그 일을 한 후에 느끼게 될 트라우마가 걱정되기도 했다.

구제역이나 조류 독감 등이 유행할 때마다 벌어지는 이런 일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에는 4편의 짧은 글들이 담겨 있는데, 그중의 3편은 이와같은 살처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상권'은 이미 읽은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를 쓴 작가이다. 아마도 국내 작가 중에는 가장 동물들의 생태를 잘 아는 생태 이야기꾼이 아닐까 생각된다.

작가 자신의 산과 강이 있는 마을에서 태어나서 늑대도 보고, 호랑이 발자국도 보고, 오리도 키우고, 닭도 키우면서 살았기에 동물들의 생태를 자세하게 알고 있고, 그런 것들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는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와는 또다른 동물들의 이야기이다.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에는 야생동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비해서,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는 농촌에서 사람들과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하는 소와 돼지, 닭 등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에 실린 4편의 이야기는 <삼겹살>, < 시인과 닭님>, <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젖>이다.

<삼겹살>은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오빠의 이야기이다. 오빠는 어려서부터 부모 말을 잘 듣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명문대학에 다니다가 군대에 가게 되는데, 부대 근처의 마을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여 대민지원을 나가게 된다. 소들을 죽여서 구덩이이 까지 끌고 가서 묻는 작업과 돼지들을 산채로 구덩이에 몰아 넣고 살처분을 하는 현장에서 끔찍한 광경을 보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어려서부터 그토록 좋아하던 삼겹살을 먹기만 하면 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오빠는 휴가를 나와 가족들과 삼겹살을 먹고, 그것 역시 토하게 된다. 이를 목격한 여동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새로운 결심을 부모에게 말씀드리겠다고 한다.

그것은 그동안 명문대학과 노력은 돈과 명예, 행복 등을 가져다 준다는 엄마의 생각에 순응하면서 살아 왔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이 후회하지 않는 일, 의미있는 일,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살겠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살처분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느해 겨울에 뉴스에서 보았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말 못하는 가축이라고 무참하게 살해(?) 당하는 그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미리 미리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일이 터지면 무마시키기에 급급하는 행정 당국의 안일한 처사도 문제이고, 그 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고 모든 가축을 죽이는 것도 문제이고, 이런 작업에 군인들을 동원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시인과 닭님>은 구제역이 아닌 조류독감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이 책의 작가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는 작가의 지인들의 실명까지 거론되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작가는 산골마을의 전원주택단지로 내려가서 살게 되는데, 마당에 잡초들이 뿌리를 내리게 되자, 그 해결 방법으로 닭을 키우기로 한다. 장에 나가서 닭 5마리를 사오고, 마당에 나무들을 이용하여 닭이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준다. 닭장이 아닌 닭들이 자연에서 뛰놀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란데 5마리의 닭은 모두 암탉이어서 수탉을 구하게 되는 이야기가 펼펴진다. 우여곡절 끝에 암탉 무리에서 지혜롭게 살아 갈 수 있는 수탉을 구하게 된다. 그런데 조류독감이 유행하게 되자 근처 전원주택 단지의 잘 사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압력을 가하게 되고, 이에 작가는 여주강변의 산기슭에 사는 시인에게 닭 5마리를 보내게 된다. 시인은 작가보다 더 자유롭게 닭들을 살도록 하는데, 4대강 사업이 한창이던 때여서 이곳의 파헤쳐진 곳들은 여름 장마에 쑥대밭으로 변하게 된다. 겨우 거처를 옮긴 시인은 자신의 닭들이 다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닭들은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집으로 돌아 오는 것이다.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조류 독감이 유행하자 말도 안되는 이유를 갖다 붙여서 작가를 압박하던 뭔가 좀 있는 자들의 행태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양계장에서 사료를 먹고 자란 닭들은 모두 조류 독감에 걸려서 살처분을 당했지만, 자연에서 풀을 뜯어 먹고, 지렁이를 잡아 먹으면서 자유롭게 자란 시인의 닭들은 끄떡없이 조류독감을 피해갔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린 항생제에 길들여진, 좁은 닭장과 돼지우리간, 외양간에서 몸도 가누기 힘들게 자란 것들을 잡아 먹고 사는 인간들이 아닌가....

가축들에게도 그들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보금자리는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고양이와 다람쥐는 천적인데, 서로 사이좋게 살 수 있을까? 시골에 홀로 사는 어머니는 어느날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람쥐는 어머니의 집 보일러실 술독 안에 새끼를 낳고 살게 된다. 어머니는 집에서 키우는 개보다도 다람쥐에게 더 많은 정을 주게 되고, 다람쥐는 어머니에게서 먹이를 얻어 먹고 살게 된다. 야생성을 잃어버린 다람쥐는 먹이를 구하려는 생각을 버리게 되고, 어머니의 서울 나들이에 어미 다람쥐는 목숨을 잃고 새끼 다람쥐만 남게 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새끼를 낳은 고양기가 다람쥐까지 키우게 된다. 그러나 고양이와 다람쥐는 습성이 다르니, 다람쥐들이 생존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마지막 남은 수 다람쥐는 어느날 암 다람쥐를 만나 다람쥐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외롭게 살아가는 시골 노인네가 애지중지 키우게 되는 다람쥐, 그 다람쥐를 탐내는 사람들도 있다. 애완 다람쥐로 집에서 체바퀴를 돌면서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다.

다람쥐 체바퀴 도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재주를 부리는 그 모습이 귀엽기 보다는 야생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다람쥐의 신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작가는 <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에서 동물들이 야생성을 잃으면 자연에서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여러 번에 걸쳐서 작품 속에 담아 놓았다.

동물원의 재주 부리는 동물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다람쥐는 다람쥐 다워야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닐까.

<젖>

베트남 신부인 쩐 투윗의 이야기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한국에 온 쩐 투윗은 구제역 파동으로 살처분이 있던 날에 남편이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시어머니는 그런 쩐 투윗이 도망갈까봐 노심초사 구박을 한다. 살처분이 있던 날, 시어머니는 임신한 외뿔소를 창고에 숨겨 놓지만 살처분 직원들에게 발칵이 나는데, 말 못하는 동물의 행동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기이한 일이 생긴 것이다.

암소는 출산일이 남았었는데도 불구하고 창고에 숨겨졌을 때에 송아지를 낳아서 짚단 속에 숨겨 놓은 것이다. 송아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몰래 대피소에서 키우는 쩐 투윗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 .... 소, 닭, 돼지, 염소, 오리.... 오랜 세월 인간이란 같이 살아온 보살님들이여,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을 용서하소소. 인간의 무지와 탐욕이 이런 끔찍한 재앙을 불러 왔습니다. " (p. 147)

네 편의 소설은 우리 인간과 가장 친밀하게 지내왔던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때론 이런 동물들 때문에 웃을 수도 있었고, 울을 수도 있었던 인간들의 친구와 같은 동물들.

인간의 탐욕은 우리들에게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등의 재앙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재앙으로부터 우리들의 가족과도 같은 동물들을 지켜 줄 수 있었던가.

우린 그들을 죽이기에 급급한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읽는내내 마음이 아파온다. 그러나 닭은 닭님이라고 칭하는 시인과 같은 이가 있기에 그리 아프지만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땅에서 죽어간 수많은 동물들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그 동물들의 죽음에 조금은 위로가 되어 주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