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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신경숙 짧은 소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평점 :
달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길러 갈 때 치마끈에 달랑달랑 채워 줬으면' 하고 부르던 어린날의 추억도 있고, 추운 겨울밤에 아무도 안 다니는 골목길을 무서움에 떨면서 지나 올 때에 나를 따라 오면서 길을 비춰주던 보름달에 대한 추억도 있다.
그리고 <해님 달님> 동화 속에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그런데, 이렇게 달은 아름다운 이야기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름달이 밝은 밤에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불길한 일이 일어나는 그런 이야기도 생각나게 해준다.
동화 속의 달은 아름다운 이야기도 들려주고, 슬픈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래서 나는 달은 우리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상으로만 생각했지, 달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폭넓은 계층의 독자를 가지고 있는 소설가인 '신경숙'은 이야기꾼답게 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초승달에게, 반달에게, 보름달에게 그리고 그믐달에게....
작가는 '천천히 바람 속을 걷다가 우연히 만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들을 그리움이라고 이름짓는 스물여섯 개의 보석 같은 짧은 소설' (출판사 리뷰 중에서)로 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평소 신경숙의 소설을 읽으면 마음 속 깊이 사무치는 사랑과 이별, 그리움 등을 만날 수 있어서 한 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한동안을 가슴앓이를 해야 했는데,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이 책 속의 이야기는 너무도 짧은 이야기들이기에 단숨에 읽으면서 사소한 이야기처럼 경쾌하게 읽고 지나치려고 하다가, 가슴에 또 다가와 앉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 중의 '겨울나기'는 어쩌면 내가 겪었던 이야기와 흡사해서 공감이 간다. 굶주리는 고양이를 위해서 고양이 사료와 물을 갖다 놓으면서 생기는 일인데, 사료를 고양이가 다니는 길에 놓고는 '사료를 먹었을까? ', '아직 안 먹었구나 ! ' 하다가 어느날 사료가 반쯤 줄어든 것을 보고 흐뭇해 하고, 다음날은 전부 먹어서, 그 다음엔 더 많이 주고, 또 먹어서 더더많이 주는데....
사료를 먹은 것은 고양이가 아닌, 새들이고, 새들은 새떼로 몰려오게 되고, 그결에 고양이는 새를 피해 어디론가 숨어 버리게 되니...

" 타자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은 뜻밖에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해. 겨우 접시에 사료를 부어 놓은 일이라 해도 말이야 " (p. 20)
" 그들에겐 그들의 세계가 있었을 거야. 이 겨울을 나는 방법이 그들 나름대로 있었을 거야. 그들의 세계에 내가 개입하면서 생긴 이 싸움을 그치게 하는 길은 내놓았던 세 개의 접시을 들여 놓는 일 밖에는 없더군." (p. 23)
또 다른 이야기로는,
딸이 평소에 엄마 집에 있는 나비장을 좋아한다고 했기에 그 나비장을 베보자기에 싸서 지하철에 싣고 당산역에 사는 딸네집에 가는 노파의 이야기인데, 이 노파는 지하철에서 만난 다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자식에게 폐를 끼치고 싶어 하지 않는 노파의 마음과 그런 마음으로 살지 말자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요즘을 살아가는 중노년층의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
이 이야기를 읽는 자식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궁금해진다.
4행짜리 시(詩)인 ' 브레히트'의 <나의 어머니>
"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p. 97)

객지에서 생활하던 딸은 시골집에 갔다가 올 때는 항상 오후 11시 57분 상행선을 타고 서울로 왔다. 그때마다 엄마는 항상 기차역까지 배웅을 왔는데, 30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딸은 '어머니가 과연 그 시간에 십리길을 걸어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과 후회.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엄마에 대해서는 생각마저도 인색하지 않았을까?
역시, 신경숙은 아주 짧은 이야기 속에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런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숙은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 이 스물 여섯 편의 이야기들이 달빛처럼 스며들어 당신을 반짝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 (작가의 말 중에서, p. 210)
신경숙의 단편소설, 장편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 속의 26 편의 짧은 소설들도 가슴깊이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