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하버드대 종신교수 석지영의 예술.인생.법
석지영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버드대학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그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더 클 것이다. 그러니, 하버드 법대에서 '최초의 아시아 여성 종신교수'라는 타이틀은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부모들에게는 큰 관심의 대상이 된다.

"나는 하버드 법대 첫 동아시아계 교수이자, 첫 아시아 여성 교수, 첫 번째 한인교수가 되었다. " (p. 217)

그래서인지 그녀는 지금까지의 성장과정과 그녀가 택한 길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 받아 왔기에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얼마전에 그녀가 TV에 출연했는데, 나는 그 프로그램 중의 끝부분만 잠깐 보았기에 그녀에 대한 궁금증도 있고 해서 이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그러나, 책의 중간부분까지는 많이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읽지 않았다면 더 산뜻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TV프로그램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그녀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현대레알사전에게 묻는다면(개콘버전으로),그녀에게 한국은? 그녀의 엄마에게는? 이 책을 읽는다면, 그런 물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녀가 지금의 위치에 올라 가기까지의 많은 부분들은 특권층인듯이 살아가는 엘리트 한국인들의 극성스러운 치맛바람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서 이 책을 읽는 마음이 좀 씁쓸했다.

그녀에게 따라 다니는 '엄친딸 종결자'라는 말이 딱 맞는 말임은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느끼게 될 것이다. 과연 이 책을 읽게 되는 학생들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지금도 매스컴을 통해서 떠들어 대는 특권층만이 갈 수 있는 학교들이 있으니...그들의 자녀들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바탕에는 재력과 권력, 사회적 지위 등이 한 몫을 하는 것이다.

그녀의 친가는 지주출신으로 6.25때 피난을 와서 재산과 지위를 잃었다고 하지만, 외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를 습득하였기에 외국인 상대의 무역사업과 버스 사업으로 성공한 대단한 재력가였던 것같다.

아버지는 서울의대 출신의 내과의사, 어머니는 이대 약학과 출신(집안에서 남녀공학을 보내지 않던 그런 시절에)의 제약회사 독일인 사장 비서였는데, 이런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1970년대에 미국 이민을 많이 갔었다. 부모들이 이민을 간 이유를 군사 독재하의 냉혹한 현실에서 가족의 희망찬 미래을 위해서였다고 쓰고 있지만, 그것은 나라를 걱정하고 그 힘이 되어 주어야 할 지식인들이 자녀 교육을 위한 방편으로 그 시절에 택했던 하나의 방법이었기에 그 시대를 살아 왔던 나는 어렴풋이나마 그 시대의 엘리트 집단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6살 어린이의 미국 생활은 시작되는데, 학창시절 그녀는 하버드대학하면 생각나는 공부벌레는 아니었다. 다재다능하여 어떤 분야을 전공했다고 해도 성공을 거두었을 것 같은 그런 학생이었다.

미국에서의 초등학교 시절에 그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한 마디를 남겨 주었던 슈타이너 선생님은,

"지니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어. 하지만 너는 제일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니?" (p. 52)

그녀가 6살에 미국으로 간지 5년 만에 가족들은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된다. 중학교에서는 영재학생들을 위한 특수 실험학교인 헌터스쿨을 다녔고, 방과후에는 전문 무용가가 될 학생들이 가는 SAB 발레 학교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면서 발레를 배우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그 꿈은 접게 된다.

" 뮤지컬 경험을 통해 나는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협동작업의 핵심은 내가 세운 기준에 정확하게 맞춰 일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과 어울려 창조성을 발휘하고 의미있는 작품을 함께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바로 그 점이 협동작업의 묘미였다." (p. 124)

청소년기에는 피아노를 전공하였고, 예일대에서는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대학에서는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발레, 피아노, 문학 등을 공부하면서 전혀 법을 전공하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는데, 하버드 법대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 법대에 진학하기 전에 법적인 사고방식을 접해 본 적도 거의 없었다. 다만, 예술과 문학에 깊이 빠져 있었던 나는 법의 복잡한 자료분석적이고 수행적인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고 즐길 뿐 아니라, 법의 언어에 존재하는 다양한 제약과 규칙을 즐길 수 있는 밑바탕을 갖추고 있었다. " (p. 165)

이렇게 해서 그녀가 하버드 법대의 종신교수가 되지만, 그녀는 아직도 춤을 추지 못한 것을 슬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녀가 찾은 법학자의 길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찾은 것이기에 그녀에게 찾아온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녀의 가정환경의 배경이 되어 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부모들의 만남, 미국 이민을 결정하게 된 배경, 미국에서의 유치원, 초등학교시절에서부터 현재의 그녀가 있게 되기까지의 삶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 놓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가 한국인들에게 공명되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그녀가 홀로 자신의 길을 가기까지, 즉, 자유를 찾기까지의 삶의 많은 부분은 엄마의 뜻이 상당히 많이 반영된 삶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의 쉴새 없이 내쏟는 딸에 대한 비평(잔소리와 간섭), 그리고 무슨 일을 해서라도 딸을 돕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하겠다는 절대적인 의지에서 나온 행동들은 딸의 삶을 좌지우지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이민간 한국인들이 자녀들을 사회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 자녀에게 지나친 교육열을 쏟아내는 것을 그녀의 엄마의 행동을 통해서 엿 볼 수 있다.

그녀의 엄마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라면, 그녀가 지금과 같은 성공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분명히 그것은 맞는 말이다. 미국 교육시스템이 가져다 준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의 성공의 바탕에는 재력이 있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사실인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이 한국 학생들에게 멘토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우리 학생들의 입장과는 너무도 큰 괴리감만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생각이 더 든다.

다만, 그녀가 결국에는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찾았다는 것에 박수를 쳐 주어야 할 것이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상을 주는 의미는 그녀가 쌓아 올린 하버드법대 종신교수가 되었다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녀를 성공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보기 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읽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