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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 그러나 다시 기적처럼 오는 것
정애리 지음 / 포북(for book)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겉모습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연기자 정애리를 보면 느끼게 된다. 1980년대, 주말 연속극 <사랑과 진실>에서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희미하게 떠오른다. 당당하고 똑부러지는 인물을 잘 소화해 낸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후에도 드라마 속의 정애리는 차갑고 쌀쌀맞은 그런 역할을 많이 했었다. 또박또박 쏟아내는 당찬 대사에서도 그녀는 푸근한 이미지보다는 차가운 이미지에 어울리는 연기자라는 생각을 하곤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밥퍼 목사' 김일도의 책이었는지, TV 출연 당시 이야기내용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김일도 목사의 말을 통해서 정애리의 사회 봉사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후에도 방송을 통해서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여러 번 접할 기회도 있었기에, 연기자로서의 그녀의 모습과 달리,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임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그녀는 <축복>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동안 바쁜 스케줄 중에도 틈틈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것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시처럼 운율이 담긴 글도 있고, 어떤 날의 단상을 담은 글도 있고, 자신의 성장기의 이야기나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글도 있고, 자신과 인연을 맺은 소외된 아이들과의 이야기도 있다.


아주 소소하고 사소한 단상들을 담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녀의 글을 읽게 되면 어느새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책 속에 담긴 사진들은 감상적인 마음에 촉촉한 비를 내리기도 한다.
비 !
아마도 그녀는 비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떨어진 낙엽 몇 장에 비가 스며든 사진도, 우산을 쓰고 있는 사진도, 자동차 보닛에 촉촉히 내린 빗방울의 모습도 그녀에게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기에 한 컷의 사진으로 남겨지게 된다.

" 비가 내립니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습니다 / 바람이 붑니다/ 멈추지 않는 바람은 없습니다/ 꽃이 피어 있습니다/ 지지 않는 꽃도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친구도 젊음도 / 심지어 내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던 / 고통의 시간들조차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 다만 바람이 있다면 / 매 순간 열정을 다해 살다가 / 나의 시간이 다하는 어느날/ 내가 애써 온 모든 날들이 / 참 귀하고 값진 것이었다고 / 따뜻하게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역할을 다하고/ 온몸 가득 꽃을 안고 있는 / 낡은 배 하나가 오늘 제게 던져준 묵상입니다 (...)" (p.p. 164~165)

정애리의 나눔과 사회봉사는 어린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성로원'봉사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약 25년이란 긴 세월을 소외된 아이들과 함께 한 것이다.
이후에는 해외봉사활동으로 아프리카를 찾게 되는데, 그곳에 있는 모두는 그녀의 마음에는 아픔으로 다다왔다.
찢어진 옷에 신발이 없는 아이, 어린 나이에 곰 발바닥같은 맨발로 돌아 다니는 아이, 배를 곯는 아이, 질병과 싸우는 아이....
그녀에게 연기자로서의 삶이 숙명이었듯이, 이런 아이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숙명이었던 것이리라.


그래도 그녀는 말한다. 자신이 그 아이들과 인연을 맺고, 자신의 아이들로 받아들인 것은 오히려 자신이 행복을 선물받은 것이라고.

" 생각해 보면 삶의 마디를지나고 견뎌낼 때마다 / 스스로 성장했음을 느낍니다 / 아프면서 다른 시야가 열리기도 하고 / 이미 경험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심이 생기며/ 바로 내 눈앞의 일들이 아닌 큰 그림을 보게 됩니다 / 그렇게 한 걸음씩, 대나무 담처럼 / 아름다워지고 있었던 거지요 / 그 작은 순간들, 마디와 마디들이 모여서 / 내 인생의 대나무 담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 (p. 194)

이 책은 정애리가 자신의 삶을 조용히 털어놓는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자, 독자들에게 살며시 건네주는 희망편지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의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쓰겠다고 하니, 이 한 권의 책은 잔잔한 감동과 함께 나눔의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