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자의 꿈, 실크로드 - 봉인된 과거와 열린 미래로의 황홀한 시간 여행
문윤정 글.사진 / 바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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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Silk Road) !!

지금도 이렇게 힘든 여정인데, 이 길이 처음 열리던 전한(前漢)시대에는 얼마나 힘든 길이었을까?

중국 장안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고원, 터키의 이스탄불을 지나서 로마에 이르던 길을 실크로드라 말하는데, 이 길은 교역로였다. 중국의 비단이 이 길을 통해서 서역으로 들어갔기에 이렇게 불리지만, 비단 이외에도 각종 무역품들이 왕래를 하던 길이다.

중국에서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급스러운 옷감인 비단의 생산과정을 함구했기에 로마인들은 비단에 더 매료되었을 지도 모른다. 칠기, 도자기, 화약기술, 제지술 등이 중국에서 서방으로, 기린, 사지와 같은 동물에서부터 호두, 후추, 유리만드는 기술이 서방에서 중국으로 들어 갔던 길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많은 문화를 만나게 된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헬레니즘 문화, 간다라 문화, 이슬람문화, 불교문화를 만날 수 있고, 알렉산드로스, 칭기즈칸, 쿠빌라이 칸, 마르코 폴로, 혜초, 현장, 고선지, 향비,진시황제, 양귀비 등도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쓴 '문윤정'은 이 길을 따라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한다. 장안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고, 파키스탄의 라호르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니, 실크로드의 일부 구간은 건너 뛰었다고 볼 수 있다.

파키스탄의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탁실라, 카라코람 하이웨이, 길기트, 훈자마을, 소스트.

여기에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가서 탁스쿠르칸, 카슈가르, 우루무치, 타클라마칸 사막, 투르칸, 둔황, 란주, 천수, 시안까지 긴 여행을 한다.

지명만 들어도 여행길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되는데, 여행자는 가는 곳마다 그곳의 역사, 문화, 인물, 전설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타지마할을 건축한 샤자한의 아버지인 살림왕자(자한기르 황제)와 아나르칼리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애닳기만 하다.

첫 여행지인 라호르에서 박물관에 전시된 <단식하는 붓다>를 보면서 간다라 불상의 특징을 설명해 준다.

간다라 미술은 박트리아인들이 불교 신앙과 인도 문화와 접촉하면서 자신들의 그리스 문화를 가미하여 만들어낸 것인데, <단식하는 붓다>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불상과는 사뭇 다르다.

아폴론의 얼굴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토가의 주름을 그대로 드러낸 의상과 어깨까지 물결치며 내려오는 머리카락, 캬름한 두 눈은 낯설기만 하다.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길에 있는 파키스탄의 몇 몇 도시는 탈레반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길이기에 발길을 들여 놓을 수도 없이 다음을 기약해야만 한다.

훈자마을은 소설 속에서, 또는 여행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곳이기에 살구꽃이 아름답게 피는 마을이라는 것 정도는 잘 알려져 있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마을인지 '배낭여행자의 블랙홀'이라고 한단다.

" 훈자는 배낭여행자의 블랙홀이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곳이다. 굳이 아름다운 풍광도, 푸근한 사람들의 인심을 손꼽지 않더라도 빠르지도 급하지도 않게 느리게 흐르는 이곳의 시간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다. " (p. 129)

" 시간은 우리의 기억을 점점 더 두껍게 덮어 버리는 눈과 같다고 했던가. 추억과 기억 위로 한겹씩 차곡차곡 내려 쌓이는 눈, 혹은 추억과 기억을 한꺼풀씩 지워 나가는 눈은 어딘지 시간과 닿아 있다." (p. 177)

카슈가르에서는 푸른 대문과 푸른 늑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위구르인들은 푸른 대문을 통해 그들의 수호신인 푸른 늑대가 그들을 지켜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루무치는 위루르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인데, 바로 유목민족의 터전이자 칭기즈칸 제국의 중심무대였던 곳이다. 남으로는 인더스강 유역에서 서쪽 카스피해를 넘어 남 러시아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전역을 차지했던 몽골인들. 작년 이맘때 읽었던 '김형수'의 <조드>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저자는 여기쯤에서 유르트에서 하룻밤을 지내본다.

돈황은 석굴로 잘 알려진 곳인데, 수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석굴이 292개, 108개의 비천상이 그려져 있으니, '비천의 고향'이라 말할 만하다.

실크로드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시안에서는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했던 진시황제를 만날 수 있다. 무슨 욕망이 그리도 컸을까?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아는 것이 많으면 보이는 것도 많을 수 밖에 없고, 보이는 것이 많으면 느끼는 것도 많은 것이다.

실크로드 길 위에서 만나는 저자는 역사를 비롯하여, 가는 곳마다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내용이 꽉 찬 알짜배기 실크로드 기행문이다.

실크로드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길인 듯하지만, 결국에는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길이기에, 이 길을 걷는 여행자는 " 봉인된 과거와 열린 미래로의 황홀한 시간여행 !" ( 책 속의 글 중에서)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실크로드를 걸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에도 벅찬 곳이기에, 마음 속에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에 담아 두지는 못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 길 위에 서 있었던 저자의 글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독서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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