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일용이 - 30년 동안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만난 아이들 이야기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엮음 / 양철북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반 일용이>는 1983년에서 2011년까지 한글글쓰기 교육연구회에서 펴낸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회보에서 뽑은 글들이다. 말하자면 선생님들의 교단일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구성은 1부와 2부로 되어 있는데, 1부 '지금도 나를 가르치는 아이'는 중고등학생들의 이야기이고, 2부 '달팽이'는 초등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아무래도 초등학교는 담임 선생님 위주로 수업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중고등학생들보다는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에 2부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더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야기들이 많다.

선생님들은 1년을 주기로 새로운 학생들을 만낙 된다. 그렇기에 자신이 담임을 맡게 되는 학급의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서 학생들과의 눈높이를 맞추어 나가야 한다.

요즘에 공교육을 이야기할 때에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하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그것처럼 선생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간혹은 학생들이 교사가 하는 행동을 경찰에 고발하기도 하고, 과격하고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들을 하는 학생들도 있기에 우려의 말들을 많이ㅣ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과 학생은 학습 활동을 떠나서는 정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지식만을 전달해 준다면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처럼 아름답고,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들은 책으로 만들어 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선생님들의 글이기에 작가들의 글처럼 뛰어난 문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선생님들의 마음으로 쓴 글들이기에 읽는내내 선생님들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할 수 있다.

나의 삶 속에서 교사로 지냈던 몇 년간의 사건들과 그때의 내 감정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또렷하게 되살아나기에 그 누구보다도 더 감명깊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부임한 중학교에서 만났던 까까머리 남학생들과 단발머리 여학생들은 나에게도 웃음과 눈물을 나누어 주었던 아이들이다.

기억 속에 떠오르는 일 중에, 어느해 3월 신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살고 있던 집의 방문앞에 까만 봉지가 놓여 있었다. 궁금증에 열어 보니, 그 속에는 뿌리를 깨끗하게 다듬어서 삶은 냉이가 한 웅큼 담겨 있었다. '누가 놓고 갔을까? ' 알 수는 없었지만, 어떤 여학생이 들에서 캐어서 다듬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후에야 우리반 여학생이 가져다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는데, 몇 달후에 그 여학생의 아버지가 농약을 먹고 자살을 한 것이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이어서 그 아이는 힘들어 하였다. 그래서 그 학생의 어머니 허락을 받고 며칠간 우리 집에서 함께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학생이 집에 돌아가는 날에는 미장원에 가서 예쁘게 머리를 잘라서 보냈었는데, 그 아이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

또, 어느해인가는 학급초부터 도난사건이 일어났는데, 잊을만하면 도난사건이 터지곤 했다. 의심이 가는 학생이 있기는 했지만, 돈을 훔쳤다는 증거가 없어서 넘어갈 수 밖에 없었는데, 어느날 한 학생이 하복을 맞추려고 가지고 온 돈을 도난당한 것이다. 돈을 잃어버린 학생은 울면서 부모님에게 말씀 드릴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학생에게 교복을 맞출 수 있는 돈을 준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 학교를 그만 둔 후에 한 통의 편지와 함께 그 돈이 돌아 온 것이다. 몇 년후에 돈을 잃어버렸던 학생이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게 되자, 엄마가 돈을 보내 준 것이었다.

흔히, 우리네 어른들이 '내가 살아온 날들을 책으로 쓰면 책으로 몇 권이 될거야' 라든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면 몇 편이 될거야'라고 하시는데, 교사들이야말로 자신의 교단일기를 책으로 묶는다면 몇 권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교탁 위에 빠알간 사과를 한 알 올려놓고 도망치던 학생도 생각나고, 등록금이 없어서, 수학 여행비가 없어서 눈물 짓던 학생들이 생각난다.

책 속에는 너무도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가정의 불화로 인하여, 가난으로 인하여 어린 학생들이 받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느끼게 해 준다.

장애인 엄마를 둔 상영이가 쓴 글 중에.

"어머니는 쟁애인이시다/ 어머니는 집에서 앉았다가 누웠다가 계속 반복하신다/ (...) 나는 어머니가 왜 장애인지를 모르겠다 / 나는 어머니를 매일매일 학교 갔다 오면 도와드리겠다/ 어머니가 오래 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 / " (상영이의 글 중에서)

'장애인'이란 단어도 그 지방의 사투리인 '쟁애인'으로 쓸 정도로 학습 능력이 부족한 아이지만, 엄마를 생각하는 그 마음은 어느 우등생 못지 않다.상영이의 글을 본 선생님은 "내가 누리는 행복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고 말하니, 이것이 바로 학생들의 삶 속에서 선생님들이 느끼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소돌보는 일을 하던 기철이는 새끼 송아지가 태어난지 사흘만에 죽게 되는데, 어른들은 새끼 송아지가 죽은 것이 기철이가 새끼 송아지가 먹을 물을 청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하자, " 다음 생에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건강하게 태어나라" 는 글을 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책감을 이렇게 글로 쓴 아이의 마음이 너무도 예뻐 보인다.

또, 어떤 아이는 아빠가 어디선가 어렵게 일을 해서 급식비를 마련해 온 날, 무심결에 아버지의 낡은 신발과 옷을 보게 된다.

" 한참을 걸어가다가 아버지를 그냥 슬쩍 보았다. 아버지의 모습은 초라했다. 나는 좋은 옷에 좋은 신발을 밖에 나간다고 옷을 잘 입고 나갔는데 아버지는 허들허들한 옷에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나는 아버지께 미안했다. " (p. 106)

이처럼 철없는 아이들 같지만 아이들의 마음 속은 꽉 차 있는 것이다.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한 것이다.

가정적 결함때문에 (아버지는 술주정뱅이, 엄마는 도망가고) 매사에 소극적인 아이 성준이. 선생님은 그 아이가 안스러우면서도 항상 눈에 거슬린다. 그래도 이것 저것 챙겨 주기는 하지만, 성준이만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비가 오는 어느날, 긴 비닐을 뒤집어 쓰고 학교에 등교하는 성준이를 본 선생님은 속으로 생각한다. '아이고 쟤는 왜 저렇게 하고 와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나' 그런데, 성준이의 집에는 우산이 한 개 뿐이고, 그래서 형이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가면 성준이는 학교를 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선생님이 자신에게 베푸는 마음을 알기에 그날은 비닐을 뒤집어 쓰고 학교에 온 것이다. 선생님의 마음이 불편한 것은 성준이가 미워서가 아니라 그런 성준이가 한없이 안스럽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책 속에 담겨진 이야기들은 학교에서 학생들과 생활을 하는 선생님들이 체험한 30년간의 이야기들을 모아 놓았으니, 그 이야기들은 다양하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기쁨 보다는 선생님의 눈물이 큰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선생님은 한 아이, 한 아이의 가정환경을 알기에 학생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를 파악하고 있으며, 그래서 더 가슴에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또한 선생님들은 자신의 많은 부분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들을 선도하고 돌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그대로 글로 씌여진 것이다.

특히, 선생님들은 글을 통해서 소개하는 자신의 학생들 이야기 속에 그 학생의 글을 함께 올려 놓은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글은 아이들의 서툰 글솜씨지만 진심이 담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쓴 글들이기에 더 감동적으로 마음 속에 다가온다.

어른들, 특히 부모들이 자녀들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를 이 책의 표제작인 '우리반 일용이'에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엄마의 재혼으로 인하여 새 아버지의 본가에는 그의 존재를 숨겨야 했던 일용이는 시설에 2년동안이나 맡겨지기도 했던 아이이다. 그러니, 일용이가 집을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이 자칫 일용이를 나쁜 길로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선생님에게까지 욕을 퍼붓는 호민이의 이야기. 거칠대로 거칠어서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 버릴 것같은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이런 호민이의 행동은 비단 호민이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부모의 잘못된 행동이 아이들을 외롭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런 삐뚤어진 학생들을 설득하고 선도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청소년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선생님들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선생님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그리고 힘겹게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도 용기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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