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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조선 프린스 - 조선왕실 적장자 수난기
이준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비운의 조선 프린스>의 '들어가는 글'에 써 있는 저자의 글에 공감이 간다. " 이책을 집필하게 된 데에는 (....) '일반인을 대상으로 출판한 역사책을 읽어보면 너무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내용 일색이라 전혀 와 닿지 않는다' (....) " (p. 8)
역사책에서도 이러하니, 역사를 소재로 한 역사 드라마나 역사 영화는 더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이 연출된다. 그래서 역사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 중에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가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때론 그 장면이나 상황이 뇌리에 박혀서 그것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에 오류가 있음을 여러 군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저자도 어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이라는 단서를 달아 놓은 부분들도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조선의 왕자들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많다. 2번의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왕위에 오르는 이방원, 세종에게 세자 자리를 내 주어야 했던 양녕대군, 광해군에 의해서 증살된 영창대군, 아버지에 의해서 뒤주 속에 갇혀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 인조의 견제 때문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되는 소현세자 등.
그런데, 이렇게 잘 알려진 왕자들의 이야기들 마저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잘못된 지식을 그대로 알고 있을 뻔한 사실들도 책 속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조선 왕실의 왕위 계승자 결정은 적서차별, 적장자 계승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독자들은 적장자 우선이라는 것 조차도 일반적인 왕위계승 원칙이라고 생각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조선 특유의 권력 세습 방법이고 이로 인하여 조선의 왕자들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거나, 있는 듯 없는 듯이 살아야만 하는 가엾은 신세이기도 했다.
세자가 되지 못한 왕자들은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가지고 있는 재물로 방탕한 생활을 하는 한량 신세였다. 왕이 된 왕자는 자신의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넘 볼 것 같은 왕자나. 서자 왕자들을 경계해야만 했다. 그래서 왕자들 중에는 유배길에 오르거나, 반역이란 죄목으로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정종은 이방원으로부터 자신의 입지를 보장받기 위해서 불노와 지운을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내치기도 했다. 한량으로 알려진 양녕대군도 세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은 하나, 워낙 불미스러운 일이 많다 보니 세자의 자리를 충녕대군(세종)에게 내 놓아야만 했다.
월산대군과 제안대군은 왕이 된 성종보다는 왕의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왕이 될 수 없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적장자는 영창대군이 아닐까 생각된다. 선조의 적장자였지만 이미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어 있었기에, 선조의 죽음은 영창대군의 앞날을 어둡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증살이라는 방법으로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니, 조선시대의 적장자 중에 단종과 더불어 가장 참혹하게 생을 마감한 왕자이다.
인조때 청나라 볼모로 잡혀 갔던 소현세자에 대한 내용은 다른 사학자가 쓴 책을 통해 소현세자에 대해서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분석을 한다.
인조가 자신의 아들인 소현세자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가 심양주재 조선대사로 조선 국왕의 업무까지 활동영역을 넓히는 모습은 인조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강력한 정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왕자는 동화 속의 백마탄 왕자만은 아니었다. 왕은 항상 형제들을 자신의 왕좌를 위협하는 존재로 생각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까지도 의심의 눈으로 보아야 했으니...
조선에는 27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중의 적장자는 7명 뿐이었다. 조선초기에 세워진 적장자 계승 원칙은 이로 인해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왕자들의 기록이 담긴 사료을 통해 왕자들의 삶을 추적해 보았다. 그리고 기록으로는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의 전후 상황들 예리하게 분석하여 비극적인 왕자들의 기록을 유추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의 집필기간이 5년이나 걸렸다고 하니, 쉽게 써진 책은 결코 아니다. 그만큼 역사 속의 왕자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결과물이다.
독자들은 흥미위주의 역사책, 역사 드라마, 역사 영화만을 접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는 <비운의 조선 프린스>같은 책들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