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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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신달자의 삶은 여유롭고 평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ㅣ 민음사ㅣ 2008>를 읽고는 질곡많은 세월을 견디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삶의 이야기는 <여자를 위한 인생 10강 / 신달자 ㅣ 민음사 ㅣ2011>에서도 또다시 읽을 수 있었다.

시인이 전해주는 10가지 메시지는 자신의 힘겨웠던 경험담과 많은 사례들을 통해서 여성들에게 외로움과 실패에 두려워하지 말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 나가라는 희망을 주었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 중의 하나는 사랑을 읊조리고, 인생을 읊조리던 시인이 지나온 삶의이야기를 여과없이 속속들이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산문집을 통해서 그들의 아팠던 가족사들을 털어 보일 적에 그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용기있는 글들에 혹시라도 상처받는 가족들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은 해 보았는데, 시인의 글들도 그런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이번에 시인은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책 뒷표지의 글 중에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 !", "딱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 봐라!"

많이 들어온 말이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그만큼 엄마와 딸은 애증관계로 맺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시인은 '딸의 이름으로 70년, 엄마의 이름으로 45년 을 살았다. 그 세월 속에서 딸의 역할을 하면서 엄마와의 관계, 엄마에 대한 추억들,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 딸과의 관계, 그리고 딸과의 추억들.

간단하게 말한다면, 엄마에게는 고마움을, 딸에게는 미안함을 느끼는 딸이자 엄마였던 것이다.

시인은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담과 '엄마와 딸'이란 주제로 학생들과 수업을 하였던 당시의 학생들의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시인의 이야기는 거침없다. 누군가에게는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까지도 적나라하게 써나간다. 자신의 '엄마를 말하는 것이 수치였고, 부끄러움이었다'고 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에게서 느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풀어 놓는다.

그리고 딸에 대하여 엄마로서 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이쯤에서 독자들은 누구나 자신의 엄마를 생각하게 될 것이고, 자신이 딸로서 엄마에게 어떤 존재였던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자신이 딸에게 어떤 엄마인지도.

엄마는 딸이, 딸은 엄마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니, 때론 가장 편안하고 가까운 상대방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과 행동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그런 사례들은 이 책 속에 가득 담겨 있다.

그러나 나의 엄마를 생각했을 때에, 엄마에게 있어서 나를 생각했을 때에 우린 그런 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편안하기는 했지만 단 둘이 있으면 엄마와 딸이지만 때론 어색하기도 했던 관계였다. 서로가 마음 속 깊이있는 찌꺼기까지 다 뺃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마음을 모두 거침없이 표현하기 보다는 때론 가슴에 그대로 남겨 놓는 그런 모녀관계였던 것 같다.

엄마와 딸이지만 격은 있었고,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학창시절 등교할 때에 뭔가 마음에 거슬리는 일이 있을 때에 엄마가 차려준 아침상을 손도 안대고 대문을 꽝 닫고 학교를 갔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대문을 나서는 순간 머릿속은 후회로 가득 찼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의 그 발걸음을 무거웠고, 집에 들어선다는 것이 쑥스러웠지만, 그때의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그 모습 그대로 였으니, 엄마와 딸이 부딪힐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홀로 남으신 엄마가 아버지의 묘소를 일주일이 멀다하고 다니시던 모습은 아직도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힘드실 때에는 목놓아 꺼이꺼이 우시던 모습을 여러번 뵐 수 있었으니, 엄마는 내 마음 속에 아픔으로 남아 있다.

결혼 후에 내가 아들을 낳으니, 그 기뻐하시던 모습. 그리곤 그렇게도 열심히 다니시던 교회를 4주간이나 안 나가시고, 산후 뒷바라지를 해 주셨다. 딸만 낳았던 엄마의 설움이, 그리고 출가한 딸들이 손녀만 안겨주니 주변 사람들에게 '아들', '손자'라는 단어 앞에서 기가 죽으셨던 그 마음이 눈녹듯 사라지셨던 것 같다. 엄마 돌아가시고, 교회에서 장례식을 할 때에 교인들은 '아들 낳은 딸이냐?'고 물었었다.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후기 대학을 갈 때에 단 한마디의 꾸지람도 안 하시던 엄마, 직장생활 초기에 자취하던 딸에게 반찬을 싸들고 오셔서는 함께 연탄가스를 마셨는데, 딸을 살리겠다고 그 와중에 방문을 열고 나갈 수 있도록 해주셨던 엄마, 새벽 6시 30분 고속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딸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지어 주시던 엄마. 나에게 엄마는 가슴에 박히는 유리조각처럼 아픔으로 다가온다.

좀더 오래 사셨다면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드리고, 여행도 함께 하고, 아버지 산소도 함께 가고, 성장한 손자 자랑할 수 있게 해 드렸을텐데.... 그래서 나는 또 눈물이 주르룩 흘러 내린다.

책 속에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을 본 시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도 그 연극을 몇 년 전에 보았다. 그때 연극 도중에 여기 저기에서 훌쩍거리던 울음 소리, 안 울려고 참고 참았지만 목이 콱 메이면서 어느순간 하염없이 쏟아지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 빠알간 토끼 눈이 되어서 공연장을 나오던 사람들의 모습.

책 속에 담겨 있는 엄마와 갈등을 빚는 딸들의 이야기는 나에겐 사치스러운 응석이나 복에 겨운 앙탈로 다가온다.

그러나, 실제로 엄마와의 사이가 좋지 않은 딸의 이야기는 우리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들이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와 딸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된다.

" 엄마와 딸, 기본적인 사랑이 있으니 서로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삶의 기후를 보다 맑게 만드는 일, 엄마와 딸 모두 공부해야 할 일이다. " (p. 169)

" 엄마는 결코 영원히 딸의 인생 코치로 있을 수 없다. 엄마가 바라는 그 성공에 닿지 않더라도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가 먼저 깨닫고, 스스로 맨 사슬과 매듭을 완전히 풀 수 있을 때, 엄마도 딸도 행복할 것이다. 엄마가 행복하기 위해서도, 딸이 행복하기 위해서도, 강압적인 모든 행위는 금지다. " (p. 178)

나는 엄마의 딸로는 살아 왔지만, 딸의 엄마로는 살아 오지 않았으니, 그 관계의 반쪽 밖에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엄마와 딸들에게 이 책은 서로가 어떻게 아픔을 주고, 어떻게 화해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서로는 너무도 소중한 관계임을 일깨워준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나의 엄마를, 나의 딸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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