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료되었습니다>의 시작은 참으로 황당하다. 허무맹랑하다.
어느날, 죽은 사람이 생전의 모습 그대로 우리 앞에 일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어떨까?
7년전에 기울여져가는 아들의 사업자금을 마련해서 아들을 만나러 가던 어머니가 강도의 칼에 찌려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어머니의 살해 당하는 모습을 목격했지만, 정신적인 충격으로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 속의 아픔으로 간직되었던 그 어머니가 살아 돌아 온 것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2017년이라면?
차라리, UFO에서 인간을 닮은 우주인이 내려왔다고 하던가, 2012년 마야인의 예언이 실현된다고 하는 것이 더 실감이 나지 않을까.
소설 속으로,
이처럼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돌아오는 일은 몇 년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게 되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7번째의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죽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그 누군가에 의해서 억울하게 살해당한 사람들이고, 그 사건의 범인이 밝혀 지지 않았거나, 범인이 잡혔어도 온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을 경우에, 그 사건의 피해자가 살아 돌아 오게 되고, 살아 온 자들은 범인을 찾아서 복수를 하는데, 복수가 이루어지는 순간 살아 돌아왔던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소멸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RVP(살인 피해자 환세 현상)이라고 한다. 물론, 책 속에서의 정의이다.
이런 이야기가 어린이들의 만화 영화라면 모를까 너무 사실성이 결여된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든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점점 책 속으로 빠져 들게 되고,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궁금증은 가중된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과 SF 소설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래서 추리소설이란 장르로 본다면, 진홍이 어머니의 살해범을 찾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묘미이기도 하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런데, 어머니가 살아 오셨다는 사실에 진홍의 마음은 뭔지 모를 불안감과 두려움, 기쁨이 교차하게 된다.
아들을 본 어머니는 아들에게 달려 든다. 죽이기 위해서....
초능력에 가까운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어머니.
RV (환세자. 다시 살아온 사람들)는 복수를 위해서 살아 돌아 온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어머니을 살해한 자는 아들이란 말인가?
아들이 사주한 중국인 폭력배의 소행인가.
아들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수 억원의 보험금을 챙겨 사업을 일으겼으니, 사건이 일어난 날의 날치기범이자 살행범은 아들의 사주를 받은 자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러 저러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가면서 소설 속으로 다시 빠져든다.
사건의 해결을 위한 형사들의 활약. 그리고 RV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국정원과 CIA의 활동.
아들은 생각한다. 어머니가 범인을 죽인다면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질테니, 어머니와 함께 있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범인을 죽이는 것만은 막아야 되겠다고.
그런데, 이 책의 등장인물들에 얽힌 또다른 사건들이 밝혀진다.
" 서진홍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그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평범한 정상적인 정서를 가진 살인자? 아니면 자신이 살인을 했을 지도 모르는 과실 치사범" (P. 58)
" 서진홍은 어떤 인간일까? 잔혹한 범죄자? 아니면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참회자?" (P. 134)
책 속의 글처럼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간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라면, 처음에 범인의 의혹을 받는 인물은 범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역발상으로 그런 생각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서 처음에 의심을 받는 인물이 범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책장을 덮기 전까지는 결말을 속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야기가 절정을 넘어서는 순간, 이 소설은 범인을 찾기 위한 추리소설의 성격만을 지니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이처럼 사실성이 결여되는 설정인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왜 죽음 속에서 살아 나게 하였으며, 왜 피해자가 범인에 대한 복수를 하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풀리게 된다.
" 인간만 영혼을 가진게 아니야. '이야기'도 인간처럼 각기 영혼과 생명력으 지니고 있지. 아무리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도 일단 뼈대가 서고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럴 듯하게 진행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괴상한 이야기도 천연덕스럽게, 마치 꿈결처럼 말이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고, 어린아이라도 얼마든지 어른처럼 말을 할 수 있게 되지 ." (p. 226)
그동안, 우리들은 현실 속에서 사회면을 장식했던 흉악범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해 왔다.
차마 그 기사를 보는 것조차 섬뜩하여서 시선을 돌려야 했던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저지를 수 없는 행동을 하고도 태연한 모습으로 사건 현장에서 범행을 재연하는 모습의 살인자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 뒷편에서 들려오는 피해자 가족들의 절규.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가지는 마음은 범인들이 받는 처벌의 수위가 그들의 마음에는 턱도 없이 못 미칠 것이다.
그러나, 범인들은 피해자의 가족에 의해서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가족은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감옥 속에서 생활하는 범인을 용납할 수 없는 마음으로 평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가족은 황망하게, 처참하게 이 세상을 떠났지만, 범인은 잘 도 살아 있는 것이다.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도 가책이 없는 인간.
그 인간의 사고방식에 절망감을 느끼는 피해자의 가족들의 마음.
그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
그들에게는 범인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소양도 획득하지 못한 야수로 보일 것이며, 피해자가 범인에 대한 심판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범인들을 구태여 나눈다면, 인간인 범죄자, 인간의 탈을 쓴 범죄자, 갱생의 삶이 불가능한 자로 구분하고 있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범죄자들의 이름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과연 감옥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죄값을 치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삶의 본질을 모르는 짐승으로 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의 백미는 반전, 그리고 또 반전.
생각하지도 못했던 인물의 사이코패스 행각.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았는가 하면, 또 다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데,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남기고 싶은 말은 인간의 죄를 어떻게 심판하는가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가 범인에게 가할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은 무엇일까?
과연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나서 복수를 하고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피해자가 아니면 피해자의 가족이 내뱉는 폭언, 폭행.
그것은 범죄자들에게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게 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나 그의 가족들이 베푸는 무한한 사랑이 범죄자들을 번민에 빠트리게 할 것이다.
범죄자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것, 그로 인하여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
자신의 행동에 가슴이 아파서 잠 못 이루고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날들.
그 보다 더 큰 형벌은 없을 것이다.
범죄자에게 가하는 최고의 형벌은 사랑인 것이다.
문득,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사형수 정윤수가 생각난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그가 가지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보듬어 주던 사람들의 사랑의 마음들이 아니었을까~~
<종료되었습니다>의 작가는 " (...) 사회문제를 현실적으로 드러내면서 대중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추리소설에 매료되(...)(작가 소개 글 중에서) 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인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협하는 사이코패스들에 대한 생각, 인간의 마음 속의 선과 악의 존재, 인간의 죄를 어떻게 심판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추리소설 겸 SF 소설인데, 읽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