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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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서간>의 저자인 '미나토 가나에'를 떠 올리게 되면 그의 데뷔작인 <고백/ 미나토 가나에ㅣ 비채 ㅣ 2009>을 읽을 때의 충격이 되살아 난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싱글맘이 유코 선생님의 4살짜리 딸의 죽음이 수영장에서 추락한 것이 아닌 자신이 가르치던 반 학생에 의한 범행임을 밝히는 이야기이다.

13살 중학생인 그녀의 제자가 범인임을 알고 있지만, 미성년자이기에 살인자라고 해도 무죄방면이나 보호관찰 처분 밖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그들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이다.

<고백>은 이야기의 형식부터가 특이하다. 옴니버스 스타일의 독백 형식을 갖춘 작품이어서 각 장에 나오는 인물들에 따라서 똑같은 상황을 대하는 각각의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미세하게 표현되면서 같은 상황이 각자의 상황판단과 시각에 따라서 얼마나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가를 알게 해 준다.

소설은 한 눈을 팔 수 없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해서 책을 손에 잡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속에 빠져 들게 된다.

그런데, 이 소설이 충격적인 것은 주인공인 유코 선생님의 딸을 죽게 만든 두 제자에게 가하는 복수의 수위가 문제인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결말, 교사가 자신의 제자인 가해자에게 가하는 복수는 "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독하다.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머리가 '멍'할 정도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일본에서 뿐만아리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지만, 소설의 내용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으로 나뉘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의 가독성은 자타가 인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의 작품인 <소녀>,<야행관람차>도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다.

<소녀/ 미나토 가나에ㅣ 은행나무 ㅣ2010>은 여름방학 직전부터 여름방학동안의 소녀들의 경험의 이야기들로 꾸며진다. 그들이 방학동안에 자원봉사를 가게 되는 노인요양센터와 소아병원 난치병 환우들의 이야기와 함께 전개된다.

그리고, 소설속에는 또다른 소설. '요루의 외줄타기'가 또 하나의 소재로 등장한다. 성장소설과 추리소설의 형태가 접목되기는 했으나, 추리의 성격이 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탄탄한 구성에 드라마틱한 소재와 설정들, 그것이 초반부터 거의 다 드러나 있는 상태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중간 중간에 복선이 깔려 있어서 그 복선이 이야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리고, 후반에 또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역시 결말부분은 깜짝 놀랄만한 장면이 연출되어서 '아니 !! 역시, '미나토 가나에' 다운 설정 ?' 하면서 놀라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백'에서 워낙 큰 충격을 받았기에 '소녀'의 반전은 약한 충격이라고 해야 할까.

죽음을 보고 싶다는 설정이 한 가닥을 이루고는 있지만, 이 소설은 일본의 여고생들의 생활, 치매노인 문제, 난치병 환우의 우정, 그리고 아쓰코와 유키의 우정과 가족애 등을 함께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청춘소설, 또는 성장소설인 것이다.

이번에 읽게 된 <왕복서간>은 장편소설이 아닌 한 편이 약 90 페이지 정도 되는 3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제목이 말해주듯이 편지 형식을 빌린 것이다.

지금은 이메일, 카톡, 메일 등으로 사라져 가는 손편지.

손편지를 쓰던 시절로 돌아가 본다면 옛 추억이 되살아 날 듯한데,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가듯이 10년 전, 20년 전, 15년 전의 이야기를 되살아 나는 것이다.

추억~~ 아름답기만 할까? 추억 속에는 잊혀졌으면 하는 것들도 있고,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를 느끼게 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미나토 가나에'라면 추억 속의 한 장면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역시 소설의 첫 부분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이 퍼즐처럼 맞추어져야만 그 시절의 숨겨진 비밀들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첫 번 째 이야기인 < 십 년 뒤의 졸업문집>은 고교시절 방송반 동아리였던 친구들이 고이치와 시즈키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고이치는 고교시절에 지아키와 사귀는 사이였는데, 결혼은 시즈키와 하게 된다. 그 이유는 5년전에 방송반 동아리였던 친구들끼리 학창시절을 떠올리면서 <월희의 전설>이 전해져 오는 송월산에 올라가게 되는데, 내려오는 중에 지아키가 사고를 당하게 된다.

지아키는 모델이었는데, 사고로 얼굴을 다치게 되고, 고이치와 결별을 하고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결혼식장에 와서 알게 된 에쓰코는 방송반 동아리 친구들에게 그 진상을 알기 위한 편지를 보내는 일을 하게 되면서 숨겨졌던 비밀들이 밝혀진다는 내용이다.

" 송월산에서 있었던 사고는 정말 사고였을까?" 아니면 " 고이치와 지아키의 사이를 시기한 시즈키의 계획된 범행이었을까?"

두 번 째 이야기인 < 이십 년 뒤의 숙제>는 초등학교 교사인 '다케자와 마치코'는 38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이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에 마음에 걸리는 6명의 학생들이 있다.

그녀는 병원에 입원 중이기에 자신을 대신해서 제자인 오바가 찾아 보도록 한다.

오바는 6명의 제자를 찾아 다니면서 그들을 만난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편지로 전달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선생님이 정말로 알고 싶었던 것은 20 년 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것이다.

흔히 우리가 농담처럼 말하는, "엄마하고 아내하고 같이 물에 빠졌다면 누구를 구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선생님은 6명의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가까운 산에 갔다가 근처 강에 남편과 제자가 빠지게 된다.

" 제자와 남편, 둘 중 누구를 구할 것인가?" (p. 128)

6명의 제자들이 20년전의 같은 사건을 자신의 상황에 따라서 각기 다른 시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마치 <고백>의 학생들처럼.

그러나, 그것만이 선생님이 알고 싶었던 진실일까? '미나토 가나에'이기에 또다른 복선이 깔려 있고 치밀한 구성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이다.

세 번 째 이야기인 < 십오 년 뒤의 보충 수업>은 앞의 2 편의 소설보다 더 기막힌 트릭이 숨겨져 있다.

중학교 때부터 사귀어 온 준이치와 마리코.

작은 다툼이 있은 얼마 후에 준이치는 국제자원봉사대로 P국으로 떠난다. 마리코는 준이치가 떠나기 직전에 자신이 영화를 같이 보러 가기로 한 것을 잊었던 것이 친구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도움을 청했기 때문인데, 오히려 그 친구는 그 일로 이혼을 하게 된 것이 마리코 때문이라고 원망을 한다.

그 일로 마리코는 자신이 불의를 보지 못하는 성격에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15 년전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마리코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면서 그 사건의 진실을 조금씩 알아 가게 되고, 결국에는 잊혀졌던 모든 사건의 전말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 편지에는 이렇게 아무 거리낌 없이 쓸 수 있으면서, 어째서 당신에게 의논하지 않았을까? " (p. 196)

이 단 한 문장만으로도 우리는 편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게서 거의 사라져 간 손편지.

편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본다. 편지는 말보다는 더 진심이 담겨 있어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 속에서도 편지가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준이치가 마르코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속의 문장, 그것은 마르코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준이치를 위한 것이었을까?

진실을 밝힐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황들.

영원히 묻혀질 수 있었던 진실이지만, 그 진실은 편지에 의해서 밝혀지는 것이다.

" 진실을 고백해야 할까? 거짓말을 해야 할까? 진실을 고백할 용기는 정말 없었어. 그렇다면 거짓말을 해야지. 하지만, 100 퍼센트 거짓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50 퍼센트 진실과 50 퍼센트 거짓말을 해야 할까? 90 퍼센트 진실과 10 퍼센트 거짓말을 해야 할까? (p. 248)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이 가지는 특색인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인물의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하는 구성은 <왕복서간>의 3편의 소설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편지글들이 안부 편지처럼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내용은 오랜 세월동안 숨겨졌던 진실을 밝히는 매개체가 됨을 알게 된다.

저자의 소설 <고백>이 너무도 충격적인 결말이었기에 <왕복서간>의 소설들에서는 '독'하기 보다는 편지를 통해서 그동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되도록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편지가 가지는 감성적이고 세밀한 감정 표현이 소설들을 좀더 부드럽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노래 가사 중에서)

깊어가는 가을 !!

눈이 내릴 겨울도 멀지 않았는데,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날려 보내면 어떨까?

그동안 모아 놓았던 편지들이 꽤 많았는데,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퇴색한 편지들을 없애 버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편지가 여러 통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연이'라는 학생이 한 권의 노트에 자신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을 때마다 편지지에 곱게 써서 간직하던 편지를 노트에 붙여서 보내준 것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용익'이란 남학생이 내가 보낸 편지를 원본은 자기가 간직하고, 복사본을 2권으로 엮어서 보낸 편지 모음이다.

그땐 문구점에 들려서 예쁜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한 아름 사가지고 나오던 일이 그리도 행복한 일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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