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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임지선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2년 10월
평점 :
현시창 ?
도무지 알 수 없는 단어인 '현시창' - 그것은 '현실은 시궁창'이란 말의 줄임말이다. 흔히들 더럽고 보잘 것 없는 것을 지칭할 때에 '쓰레기'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시궁창'이라니...

'쓰레기'보다도 몇 갑절 더럽고 깜깜하고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 같은 단어인 '시궁창'이 그 누군가의 현실을 이야기한다고 하니, 책제목만으로도 가슴은 먹먹해진다.
그런데, 책장을 펼치는 순간 과연 왜 현실을 시궁창이라고 표현하였는가를 깨닫게 되면서 가슴은 시리도록 아파온다.
얼마전에 읽은 <벼랑에 선 사람들 / 제정임, 단비뉴스취재팀 ㅣ 오월의 봄 ㅣ 2012>을 다시 떠올리게 되니 '세상은 왜 이다지도 춥고 쓸쓸하고 힘겨운가'하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벼랑에 선 사람들>이 폭넓은 연령대의 소외받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현시창>은 청춘들, 아니 청춘이기는 하지만 청춘과 같을 삶을 살지 못하는 2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연령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책의 저자인 '임지선' 기자의 나이와 엇비슷한 청춘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김난도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했지만, 이 책 속의 청춘들에겐 그 문장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화려한 문장이던가...
아플 틈 조차 없는 청춘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는 저자가 한겨레 신문의 기자로서 취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노동, 돈, 경쟁, 여성 등의 키워드로 나누어져서 24건의 사연이 소개된다.
첫 번째 이야기부터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마주칠 수 있는 같은 연령대의 대학생 이야기이지만, 그의 싸늘한 죽음은 빈부의 격차가 가져온 결과라고 아니 말할 수 있을까?
독학으로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세종대 호텔 경영학과에 입학하지만 등록금이 없어서 학자금 대출을 받게 되고, 그 빚은 1,000 만원 가량이 되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서울시립대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에게는 대학생으로서 누려야 할 것들을 즐길 시간적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군대에 갔다와서 복학할 때까지 학비를 벌기 위해서 냉방제작 업체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이마트 냉동장치를 보수하러 갔다가 질식사를 하게 된다. 군복무 중에도 봉급을 아껴 동생에게 5만원씩 부쳐주던 그였건만.
이 학생의 사망도 안타깝지만, 사건 발생후에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그 사실이 더 가슴이 아픈 것이다.
당진 제철소에서 섭씨 1,600 도에 달하는 펄펄 끓는 용광로에 빠져 죽은 청춘의 이야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추운 겨울 점거 농성을 벌이던 이야기.
스물 셋 꽃다운 나이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난 노동자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삼성 기흥공장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그녀는 '디퓨전 및 세척 공정'을 맡았었는데, 이 일은 손으로 반도체 웨이퍼를 약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 작업이다. 여기에 쓰이는 화학약품은 불산, 이온화수, 과산화수소, 황산암모늄 등 화학물질이 혼합된 액체인데, 이것이 백혈병의 발병요인이었다.
그런데도, 삼성측에서는 처음에 그녀의 죽음을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지만, 동료 중에도 백혈병 사망 사고가 있고, 산재 투쟁이 거세지자, 회사는, " 10억을 줄테니 삼성을 비판하지 말아 달라"는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2011년 3월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온양 공장에서 일어난 백혈병 피해자는 74명, 그중에 26명이 사망했다. 그래도 이것이 우연의 일치이고, 산업재해가 아니란 말인가?
한때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자살사건, 부모가 세살짜리 아이를 살해한 사건, 의사가 자신의 임신한 부인을 살해한 사건, 대출 사기단에 가짜 결혼, 캄보디아 신부 폭행 사건 및 살해 사건 등, 매스컴을 오르내리던 이야기들이 이 책에 소개되는 24편의 이야기들이다.

한 번은 들어 보았던 이야기이기에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기사를 대할 때에는 사건 사고라고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이처럼 한 권의 책으로 묶이니, 그 전후 이야기들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기사를 이야기 르포르타주로 재구성을 하였기에 살아 있는 현실로 독자들의 가슴 속에 들어오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현시창'으로 다가오는데는 사건은 일어났고, 그 피해자들이 있음에도 그 사건을 책임지고, 보상해 주고, 개선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약자들이기에 피해를 보고도 묵묵히 입다물고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더 시궁창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고는 이런 가슴 아픈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더 안타까운 일이다.